모든 직장인이 그렇겠지만 애 키우는 집은 퇴근 이후 시간도 매우 바쁘다. 저녁 먹이고 씻기고 잠깐 같이 놀고 자려면 저녁의 몇 시간이 근무할 때보다 더 분주하다. 애들이 다 자고 나야 한두시간 늘어져 있을 수 있다.
오늘은 우리 부부에게 저녁 아이디어도 마땅히 없고 냉장고를 뒤져도 별 게 없는 데다가 자극적인 맛도 당겨서 라면을 끓이기로 했다. 메뉴를 집에 공표하자 첫째가 좋아한다. 얘는 왜 라면을 이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평소에 반찬을 안 해주는 것도 아닌데.
나야 먹어도 되지만 애한테 이 밥 같지도 않은 걸 먹이는 게 맞나 해서 끓이기 전에 잠깐 갈등했다. 아침은 서로 바빠 몇 술이나 떠먹고 가는지 모르겠고, 점심은 서로 급식을 먹으니 제대로 같이 먹는 건 저녁뿐인데 간편식으로 때우다니. 이런 생각이 무색하게 걱정의 대상은 안성탕면 하나를 싹 비우고 식탁을 떠나버렸다. 맛있다고 하니 됐지 뭐.
그러고 보면 우리 반 아이들도 학교에서 생라면도 깨먹고 과자도 사서 먹고 선생님한테 얻어 먹고 어쨌든 뭘 많이 먹는다. 교실에는 늘 단짠 냄새가 폴폴 난다. 너희 그런 거 많이 먹으면 나중에 많이 아프다고 해도 별로 안 듣는다. 나도 저 나이 때는 어른들 말 안 듣고 맥주사탕 많이 먹었으니 그러려니 한다.
다만 건강이 걱정될 정도로 몸무게가 많이 나가 보이는 아이한테는 어떻게 간식 먹는 걸 말리나 고민할 때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무슨 말을 하든 상처를 받을 것 같아서다. 대신 눈에 띌 때마다 심부름도 시키고 말도 붙인다. 그러면 가방 안에 있는 걸 꺼내 먹을 시간이 없으니까.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라면 하나 끓여 먹으면서 별 생각을 다 한다 싶다. 어쨌든 잡생각의 끝은 라면은 참 좋은 음식이라는 거다. 설거지할 그릇도 줄여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