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귤, <애욕의 한국소설>
스무살 때 한국소설에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했고 얼마 후 철회했다.
이 소설들을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풀어서 <<애욕의 한국소설>>을 그렸다. - 책날개 중에서.
한 페이지에 만화 두 컷이 들어가는 작은 판형에 300페이지 남짓.
이 작은 책에 스물다섯 편의 한국소설을 소개하면서도 한편씩 제각기 다른 연출인걸 보며 정말 고생했겠다 싶었다. 스물다섯 권 중 아는 제목들은 많은데 완독한 책은 없고 십년 전 국어 교과서에서, 수능 문학 지문에서 조각난 부분을 읽어봤던 정도다. 다행인 건 그래도 최은영 <밝은 밤>은 읽고 있으니 한권 정도는 다 읽을 수 있을지도.
요새 한국 소설이 좀 좋다. 뒤늦게 최은영과 정세랑을 좋아하게 되었다. 살아가는 삶도 이렇게 복잡한데 소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한참동안 소설을 멀리했었다. 어쩌다 다시 집어든 소설에는 내가 알지 못하던 세대의 사람들이 살고, 소설 속 이야기는 현실과 닮은듯 묘하게 희망적이어서 안심이 됐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라일리 마음에 섬이 연결되고 세워지는 것처럼, 소설 한 권을 집어들면 마음에 섬이 생기고 내가 붙인 얼굴들이 그 안에 살고 있었다. 현생을 로그오프하고 싶은 날 소설을 집어들게 되었다.
서귤이 소개하는 한국소설은 그보다는 어둡고 막장이고 난장판이지만, 그랬기에 서귤은 소설과 다른듯 다르지 않은 현생을 견딜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제목에 있는 ‘애욕’은 첫 번째 사전 풀이로 ‘애정과 욕심을 아울러 이르는 말’. 소개된 소설 속 인물들은 애정으로든 욕심으로든 불타오르고, 짧게 편집된 서사가 전부 화끈하다. 한편 서귤에게 한국소설은 한때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했을 만큼 애정하고 욕심냈던 존재였으니 자신에게 한국소설이 애욕의 대상이었음을 말한 것일지도… 하여간 독자들은 반쯤은 제목에 속았지만 거짓말은 아닌 책이었던 거다.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소개하는 책들을 그다지 읽고 싶어지지는 않았다. 너무…괴상하다. 그런데도 이 책은 좋았다. 진심으로 한국소설을 좋아하는 마음이 묻어 있어서였던 것 같고, 반면 소개된 책을 읽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서귤이 말해서 이정도지… 가장 흥미로운 부분만 발췌한게 이정도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귤 작가님께 존경을 표하며, 언젠가 옛날 소설도 같이 읽을 기회가 있다면 기꺼이 읽고 이야기 나눠보고 싶다.
서귤 지음, 『 애욕의 한국소설』, 이후진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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