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손 안 잡고 신부입장 혼자 하기

결혼식에서 꼭 하고 싶었던 것 1

by 까만밤

“난 아빠 손 안 잡고 들어갈 거야.”


아직 결혼 준비를 시작하기 전이었는데, 고향 집에서 가족들끼리 둘러앉아 밥먹다 결혼 관련 얘기가 나왔고 불쑥 저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조금 놀라고 서운한 얼굴이 된 아빠는 왜, 왜냐고 묻는다. 글쎄… 나는 그 행동의 함의가 싫었다. 아버지의 관할 아래 있던 딸자식이 결혼함으로써 남편의 관할로 들어간다는 의미라고 한다면 너무 과장되게 해석한다고 말할까.


적어도 아빠는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게 어떻게 그런 의미가 되냐고. 부모가 되어서 딸 시집보내는 길을 같이 걷자는 걸 어떻게 그렇게 이해하냐며 서운해했다. 아빠, 그럼 난 엄마랑 아빠 손 다 잡고 들어갈게. 그건 좋아. 그리고 현상이도 엄마 아빠 손 다 잡고 들어오라고 할게. 그래야 의미가 맞지. 아니면 난 아빠 손 잡고 들어가고, 현상이는 엄마 손 잡고 들어오라고 하자. 아니면 이상하잖아. 나도 걔도 부모님 아래 있다가 성인으로서 독립된 가정을 이루는 건 똑같은데, 왜 딸만 아빠 손을 잡고 들어가? 정말 내가 생각한 의미가 전혀 없는 거야?


아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한참을 안 들어오셨다. 담배를 피우며 속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딸이라고 하나 애지중지 키워놓은 게 결혼할 때가 되서 아빠 손은 안 잡고 입장하고 싶다니 뭐에 얻어맞은 것 같았을 테다. 아빠는 한참 뒤에 담배 냄새를 풍기며 들어와서는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하고 싶은 대로 해. 하고 말했다. 머리로는 납득이 되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속상한 것 같아 보였다.


마음 한켠에선 ‘결혼식 입장하는게 뭐라고. 아빠랑 같이 입장하면 뭐 어때서. 사람들이 다 그렇게 가부장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닐테고 그저 당연한 식순이자 관례라 여길텐데, 어쩌면 나한테도 아빠한테도 추억일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다른 사람 결혼식에서 신부가 아빠 손을 잡고 입장하는 걸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그렇겠지 싶었다.


다만 결혼식 입장이 그렇게 별일 아닌 거라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해도 되는 것 아닌가? 의식은 의미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결혼식은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살아온 두 사람이 부부로서 함께 살기로 서약하는 예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입장할 때는 신부와 신랑이 각각 입장하고, 결혼식이 끝난 뒤에는 둘이 함께 “부부로서의 첫걸음”을 내딛는 게 맞다고 여겼다. 여기 아빠가 끼면… 미안하지만 의미가 사뭇 달라지는 거였다.


그 후로 결혼식을 진짜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도 아빠는 별말이 없었고, 마음 한켠에는 계속 신경이 쓰였지만 괜찮은지 다시 묻지는 않았다. 나는 바랐던 대로 혼자 방긋 웃으며 결혼식장에 입장했고, 양가 부모님께 인사 드리는 시간에는 아빠와 아주 긴 포옹을 했다. 성혼 선언을 마치고 우리가 부부가 되었음을 하객들 앞에서 공표한 뒤, 남편이 된 현상과 손을 맞잡고 행진함으로써 결혼식은 종료되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나서도 다른 이들의 결혼식에 많이 참석한다. 30분 남짓의 결혼식, 그 중에서도 신부 입장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신부는 그 순간을 위해 신중하게 입장 음악을 고르고, 어떤 타이밍에 걸음을 시작할지를, 어디에서 등장할지를, 무엇보다 누구와 함께 입장할지를 고민했겠지. 못 견디게 사랑스러운, 조금은 울컥한 눈으로 딸을 바라보는 아빠와 손을 잡고 입장하는 신부들을 보면 늘 마음이 뭉클하고 따뜻하다. 그리고 딸이 하나뿐이라 결혼식을 딸과 입장할 기회도 한 번 뿐이었을 우리아빠 생각도 난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혼자 입장할 생각이고, 아빠와 긴 포옹을 할 생각이다. 그때 나를 안아주던 아빠의 얼굴이 너무 따스해서 나는 그 사진을 인화해 액자에 걸어 두었다. 그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나갈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인 것만 같다. 그러니까 내가 혼자 입장한 섭섭한 딸이었더라도, 우리는 그 결혼식에서 함께였다. 내가 독립적인 사람으로 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걸음을 내딛는다는 것과 아빠가 지금껏 나를 사랑으로 키워왔다는 것은 둘다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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