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유한성과 살아가야 하는 방향
가장 힘든 날.
하고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날이 있다. 순례길을 걸은지 일주일이 지나 여덟번째 걷는 날이었다. 이미 물집과의 전쟁 중이었지만, 이 날은 하필 양쪽 발 뒤꿈치 가운데에 물집이 생겨서 걸을 때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뒤꿈치가 바닥에 닿을 때마다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자꾸 앞꿈치로만 걷게 되었는데, 이게 하이힐 신고 자갈길을 7시간 걷는 격이었다. (공감되는 여성분들은 비명을 지르셔도 된다. ‘미친’하고 욕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처음으로 심각하게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도 여태껏 힘들긴 하지만 그 와중에 감사함을 느끼며 걸었는데, 뒤꿈치 물집은 온 신경을 통증에만 집중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나는 어떠한 아름다움과 기쁨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쉴만한 곳이 빨리 나타나기만을 빌고 빌었다.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발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기 때문에 엘리나에게는 다음 숙소에서 만나자고, 천천히 뒤따라갈테니 먼저 가라고 미리 얘기를 해두었다. 그래서 혼자 아픔을 견디며 도대체 이 아픔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속으로 심한 욕을 끊임 없이 했다. 내가 순례길에 오기 전, 걸으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위해서 ‘나 자신에게 물어볼 질문리스트’(순례길 끝나고, 여기 있는 질문의 수행률은 7%였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걸을 때에는 오늘은 뭘 먹을지만 생각한다.)도 만들어왔는데 자아탐구는 커녕 물집에 대한 증오심만 가득했다. 마음이 등산화 밑창만큼 딱딱해졌다.
여지껏 내가 긍정적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살만해서였다. 결코 내가 잘나서가 아니었다. 여유는 상황이 받쳐줘야 나오는 것이었다. 순례길에서 즐겁게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긍정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었다. 나는 발뒤꿈치에 물집이 생기자 온갖 짜증은 다 내며 나에게 인사해오는 순례자들에게 ‘부엔까미노’라고 대답해주지도 않았다. 그만큼 상황은 나를 옹졸하게 만들었다. 악으로 똘똥 뭉쳐 모든 상황을 저주했다. 그 순간 나는 부정적인 사람의 끝판왕이었다.
평소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나름 만족하면서 생활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냥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진 성격과 얻은 직업과 성취한 모든 것들은 단순히 내가 잘나서 얻은 것이 아니었다. 내가 노력해서 내가 선택한 결과로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애초에 주어진 상황이 좋았다. 나의 성장과정에서 부모님은 경제적으로 안정되게 지원해주실 수 있었고, 정서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킬만한 모난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 입원한 적 한번 없이, 몸에 불편함 하나 없이 건강하게 자랐다. 그저 상황이 받쳐주었기 때문이었다. 고통은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을 했다. 발을 앞으로 옮기는 것. 그렇게 걷다가 한낮이 되었다. 저만치 멀리서 길 옆의 나무 밑에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순례자들이 왜 길을 멈추고 저렇게 무리지어 모여있는 걸까 궁금해하며 걸어가는 중에, 앰뷸런스가 경적을 울리며 달려와 길 위에 멈추었다. 내가 가까이 도착했을 때, 구조대원들은 나무 밑에서 한 남자에게 흉부압박을 하며 제세동기로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눈이 감기지 않은 채 초점 없이 누워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죽었구나.
태어나서 시체를 처음 보았다. 처음에는 무서웠고, 시간이 어느정도 지난 다음에는 죽음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알 수가 없다. 순례길을 걷다가 심장마비에 걸려서 죽을 줄 어떻게 알겠는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 당연한 사실을 왜 외면하고 모르는척 살아가는걸까. 이렇게 살다가 언젠가 죽게 되면 그땐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죽기 직전에 후회하지 않을 인생을 살아야하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죽기 직전에 후회할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나조차도 소중한 사람들에게 날을 세운 말을 하고, 하고 싶었던 도전을 다음으로 미루면서 평생을 살 것처럼 행동을 하고 있다.
책과 영화를 포함한 모든 매체에서 말하는 바는 한 곳으로 이어져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죽음이다. 모든 사람은 죽게 되어 있고,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 그렇기에 시간은 소중하고, 죽을 때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인생을 살아야 한다. 이 단순하지만 명확한 메시지가 죽음을 직접 목격하고 나서야 비로소 소름끼치게 와닿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정말 하고 싶은 거 다하면서, 내 쪼대로 살아야 되겠구나! 소중한 사람들한테 다정하게 대하면서, 하고 싶은 건 미루지 않으면서 살아야겠구나! 언젠가 해야지 생각하면서 막연히 지내는 것은, 나한테 시간이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방만한 태도였구나!
그날 머무르려고 했던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엘리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내 얘기를 들은 엘리나는 화들짝 놀라며 그 사람을 자기도 만났다고 했다. 내가 나무 밑을 지나기 얼마 전에 엘리나가 그 곳을 지나가면서 그 남자가 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안색이 너무 안좋길래 괜찮냐고 물었더니 별로 좋지 않다고 남자가 대답했다. 엘리나는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하고 그 남자는 알겠다, 쉬엄쉬엄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엘리나는 그남자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엘리나 뿐만 아니라 순례길의 많은 순례자들이 그 소식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 그날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인생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당신이 믿으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지금으로부터 50년 뒤의 2063년에서 왔습니다. 그때 저는 죽음의 문턱에 서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한 천사가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녀는 제가 전 우주를 통틀어 가장 지루한 인생을 살았다면서 저를 2013년으로 돌려보내 주었습니다. 스물 네살로 말이죠.... (중략) 또 뭘할까 생각하던 중 문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 살면서 본 여자 중에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그녀는 마치 천사 같았어요. 그런데 저는 겁쟁이처럼 그녀에게 고백 한번 못해보고 멀리서 그녀를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정말 바보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제게 드디어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번엔 꼭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사랑해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 영화 <족구왕>
시간은 원래 불가역적이라서 절대 과거로 돌아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기적은 영화 속에서나 등장한다. 영화 <족구왕>에서는 그런 기적이 일어났다는 태도로 사는 주인공이 있다. 인용한 대사는 내가 본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로맨틱하다고 생각하는 고백 장면에 등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가 심심하게 대충대충 살다가 죽을 때가 되었는데, 너무 후회스러워서 신에게 빌었던 것이다. ‘제발, 다시 제게 기회를 한번만 더 주세요!’ 너그러운 신이 내 소원을 들어주었는데, 순례길에서 죽음을 보았을 때로 시간을 돌려준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며, 주어진 시간에 감사해하고, 이번엔 네가 원하는 인생을 살라고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