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해야 하는 것과 용서받아야 하는 것
노란 화살표
800km에 이르는 긴 길임에도 불구하고 구글맵 등의 지도를 거의 찾아보지 않아도 될만큼, 순례길 위에는 바른 방향을 알려주는 노란 화살표가 많다. 처음에는 길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걷다보면 항상 노란 화살표가 보였다. 아니면 조개표식이 보였다. 아니면 다른 순례자가 보였다. 셋 다 내가 바르게 가고 있구나 생각이 들게끔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딱히 지도가 없어도 어찌어찌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앞서가면서 표시를 만들어준 덕분이었다. 때로는 돌을 모아서 큰 화살표를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스프레이로 그려놓기도 하면서. 한동안 화살표가 안보이다가 ‘어라? 왜이리 안보이지? 이 길이 아닌가?’ 생각할 때 등장하는 화살표는 얼음 넣은 환타오렌지보다 조금 더 반갑다.
팜플로냐에 도착해서 공립 알베르게에 침대를 배정받았다. 2층침대의 아랫층에는 기타를 메고 다니는 순례자가 자리를 잡았다. 어떻게든 100g이라도 무게를 줄여보려고 아둥바둥하는 이 길에서 기타를 들고 걷는다니 아주 낭만적인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악기를 들고 와서 도시에서 버스킹을 하며 여행을 하는 순례자가 있다더니 내 밑층의 기타맨이 그런 것 같았다. 빨래를 널기 위해 알베르게의 마당에 나왔는데 기타맨이 기타를 조율하고 수줍게 띵가띵가 줄을 퉁기고 있었다. 연주하고 싶은데 조금은 쑥쓰러웠나보다. 언젠가 그의 연주를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마트에서 산 자두 2알을 건네주었다.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빨래가 마르길 기다리며 자두를 베어먹었다. 무지 달다. 순례길에서 먹은 모든 과일이 하나같이 무지 맛있었다. 심지어 값도 저렴해서 매일매일 먹을 수 있었다. 슈퍼에 가서 과일을 고를 때는 설레는 기분으로 한참을 행복하게 고민한다. 언제나 배낭 한켠의 간식봉지에 과일을 두둑히 챙겨두었다. 멜론, 납작복숭아, 귤, 블루베리, 애플망고.... 그 중에서도 가장 맛있었던 것은 바로 자두다. 말랑말랑하게 잘 익은 자두는 황홀함 그 자체였다. 세상에서 이보다 완벽한 과일이 어디있을까 생각하며 줄줄 새어나오는 과즙을 입안가득 품었다.
다음날, 팜플로냐에서 푸엔테 라 레이나로 가는 길에는 순례길의 상징적인 장소가 있다. 바로 용서의 언덕이다. 용서의 언덕은 말이 언덕이지, 산 위에 있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를 때는 이렇게 힘든 상황을 자초해서 만든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꼭대기의 탁 트인 풍경과 사진 속에서 보던 용서의 언덕 조형물을 보니 나 자신을 저절로 용서하게 되었다. 조형물은 옛 순례자 무리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었다.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용서의 언덕(이라고 말하고 산을 뜻한다)에서 내가 왔던 길, 그리고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아득하다. 끝나려면 한참이 남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매일을 성실하게 묵묵히 걷고 있다. 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용서의 언덕은 왜 이름에 ‘용서’가 들어있는 걸까? 용서의 언덕에 온김에 영감을 받아 용서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나는 무엇을 용서해야 하는걸까.... 그리고 무엇을 용서 받아야 하는걸까.... 먼저, 용서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모호했다. 무난하게 살면서 여태껏 사기나 폭행을 당한 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워낙 무심한 성격 탓에, 상처받은 언행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고 항상 그러려니 넘겼다. 덕분에 극단적으로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 처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아무리 용서할 것을 생각해봐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딱히 용서할 만한 상처가 없는 사람이었다. 새삼스레 내가 참으로 평탄한 인생을 살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내가 용서받아야 할 것에 대해서 떠올려보았다. 아까와는 다르게 무지하게 많은 것이 생각났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역시나 부모님이다. 까탈스러운 딸래미 키우느라 고생하셨는데, 자꾸 잘해드리기는 커녕 이기적으로 굴었다. 항상 나한테 맞춰주길 바랬고, 철저히 내것만 챙겼다. 나의 모난 성격을 부모님의 양육방식 탓으로 돌리기도 했고, 은근히 부모님을 무시하는 발언도 했다. 부모님도 사람인데 당연히 완벽할 수 없는데.... 당연히 상처도 있고 단점도 있을진대, 그것이 자식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 줄 아냐며 비난하는 무기로 삼았다. 죄송하다고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 엄마아빠,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어. 미안해.
고등학생 때 단짝친구 M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 M은 나랑 공통점이 아주 많은 친구였다. 특히 성적이 아주 비슷했다. 어느 날 M이 시험기간에 필기를 보여달라고 나한테 부탁했는데, 경쟁심에 눈이 멀어 보여주기 싫다고 말했다. 그때는 수업시간에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필기한건데 자기가 집중 안해놓고 왜 보여달라고 하는 거지? 오히려 M이 무리한 부탁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일만 생각하면 항상 이불킥을 한다. 그거 좀 보여준다고 등수가 달라지나? 등수가 달라질 정도면 내가 공부를 안 한 거였는데.... 꼴랑 등수 하나 밀릴까봐 그렇게 마음이 쪼그라들어선 단짝친구도 외면했던 그 시절의 내가 정말 부끄럽다. 내가 너무 유치했지? 미안해.
전남친에게도 용서를 구하고 싶다. 그 애랑은 동갑내기였고, 서로가 첫연애였다. 온화하고 감정기복이 없었던 그 애랑은 달리, 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아마 엄청 피곤했을 것이다. 미안한 점이 정말 많지만 가장 사과하고 싶은 부분은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20대 초반의 미성숙함으로 똘똘 뭉쳐서는, 내 사랑보다 그 애의 사랑이 더 크길 바랬다. 내가 더 사랑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내가 그닥 M을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아쉬우면서도 아쉽지 않은 척, 그리우면서도 그립지 않은 척, 궁금하면서도 궁금하지 않은 척. 이런 나때문에 아마 많이 힘들었을 거야. 미안해. 앞으로 행복하게 잘살아.
“나의 기사 엘사에게. 주글 수밖에 없어서 미안해. 주거서 미안해. 나이 먹어서 미안해. 너를 두고 떠나서, 이 빌어먹을 암에 걸려서 미안해..... 비정상이었던 거 미안해. 사랑한다. 우라지게 사랑한다.” - 소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암에 걸린 할머니가 사랑스러운 손녀에게 죽어서 미안하다며 편지를 남긴다. 동시에 여태껏 미안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며 안부를 전해달라고 손녀에게 미션을 준다. 그리고 손녀인 엘사가 그 미션을 훌륭하게 완수하며 전개되는 이 소설은, 나에게 미안함과 사과에 대한 울림을 주었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미안한 일을 많이 겪을까. 그리고 그 미안한 일에 대해서 제때 미안하다고 사과할 수 있을까. 아무리 조심해도 의도치않게 미안한 일을, 용서받을 일을 만들게 된다. 그때 머쓱해하며 어물쩡 넘어가지 말고, 제대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자. 더 늦어 버리기 전에. 유머와 사과의 공통점은 바로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곱 살짜리에겐 슈퍼히어로가 있어야 한다.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정신과에서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 소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하고 싶은 일에서 공통점을 찾는다면, 나의 소중한 사람에게 편들어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은 슈퍼히어로를 필요로 한다. 슈퍼히어로는 해리포터처럼 마법을 쓰거나 스파이더맨처럼 벽을 타지 않아도 된다. 그저 편들어주면 된다. 사람들은 가장 가깝고 친밀한 사람이 나를 전적으로 믿어주고 내가 맞다고, 멋지다고 말해주길 바란다. 내 가족과 친구와 연인이 슈퍼히어로처럼 나를 지지해주길 바란다. 필요할 때 소중한 사람들로부터 응원과 격려를 받지 못한다면 생기는 문제점은 너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자존감이 낮아지고 관계가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에게 그런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한다.
나는 부모님에게 ‘우리 엄마아빠, 나 훌륭하게 키우느라 너무 고생했어! 최고야!’라고 말하지 않았고, 친구 M에게 ‘필기? 그럼 보여주지! 우린 친구잖아! 더 필요한 거 없어?’라고 말하지 않았다. 전남친에게 ‘내 남자친구 멋져! 나는 너를 무지 많이 사랑해! 나는 항상 네 편이야’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내 편인 사람들에게 응원을 담은 말을 하지 않았다. 나의 무심함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나의 슈퍼히어로들에게 나도 슈퍼히어로가 되어주자. 너무 늦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