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욕과 나이의 상관관계
고 박완서 님이 64세에 야멸차게 낸 1995년 현대문학 수상작품으로 60을 바라보는 두 남녀의 사랑의 이유와 사랑의 조건을 생각하게 하는 심리소설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여주인공은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우연히 대구 조카 결혼식장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옆자리에 앉게 된 아콰마린 반지를 낀 품위 있게 늙어가는 조 박사를 만나는데 아픈 강아지를 병원에 옮기는 사건이 계기가 되어 차도 마시고 산책도 하고 드라이브도 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이 남자는 재혼을 하기에는 모든 조건을 갖춘 남자다. 재력, 인품, 잘생김까지..
그러나 이 둘의 연애 감정에는, 젊었을 때와는 달리 정욕이 비어있다. 상대에게 육체적인 소유욕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이미 늙어버린 것이다. 제목에서와 같이 생화가 마른 꽃이 되어버림을 스스로 느낀다. 거울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쳐진 몸 더더욱 남자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또한 남자의 늙어가는 추레한 모습도 보아주며 살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만남을 눈치챈 딸은 채근하기도 하지만 마른 꽃이 되어버린 여주인공 할머니는 상황을 즉각 판단하고 현실을 직시한다.
그리고 살아온 나날들을 거룩하게 생각하며 미국에 사는 아들에게 간다는 핑계를 대고 남자를 떠난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나는 비슷한 나이가 되어감에 이 소설을 빠져서 읽게 되었다. 젊었을 때는
그 나이쯤 되면 어떤 말을 가슴에 담고 살까? 살고 싶은 생각이 들까? 했는데 세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렇게 흘러버렸다.
정욕도 지나가고 세월도 지나가고 풀은 말라서 시들하고 이쁜 꽃도 떨어진다.
젊음이 항상 있는 건 아니었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시간을 허비한 느낌이다.
소설에 나오는 임팩트 있는 문장 몇 구절을 적어보았다.
정욕이라는 단어를 사전 풀이를 보니'이성의 육체에 대한 성적 욕망'이라고 한다.
정욕이란 젊고 싱싱할 때 생기는 감정이라는 건대 두 번째 만난 사랑이 서로의 추함의 속성까지 봐줘야 하려면 긴 세월을 같이 보내지 않음 안된다는 것을 여자는 깨달았다는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늙음의 속성이란
"내복을 갈아입을 때마다 우수수 떨굴 비듬, 태산준령을 넘는 것처럼 버겁고 자지러지는 코 곪, 아무 데나 함부로 터는 담뱃재, 카악 기를 쓰듯이 목을 빼고 끌어올린 진한 가래, 일부러 엉덩이를 들고 뀌는 줄방귀, 제아무리 거드름을 피워봤댔자 위액 냄새만 나는 트림, 제 입 밖의 모르는 게걸스러운 식욕, 의처증과 건망증이 범벅이 된 끝없는 잔소리, 백 살도 넘어 살 것 같은 인색함, 그런 것들이 너무도 빤히 보였다."
읽으면서 '노인들의 습성을 잘 구사하셨다. 나도 나이가 더 들면 저런 속성들이 스멀스멀 나오겠지? 지금도 가끔 코골이를 한다고 아이들이 말해주는데... 나이 들면서 구차한 욕심은 부리지 말아야겠구나 '라는 반성이 들었다.
또한 여주인공의 세월의 흔적을 묘사한 글도 나에겐 남일 같지 않았다.
시집올 때 해 온 거울에 하반신만이 적나라하게 비쳤다.... 쌍둥이를 낳은 배꼽 아래는 참담했다. 볼록 나온 아랫배가 치골을 향해 급경사를 이루면서 비틀어 짜말 린 명주 빨래 같은 주름살이 늘쩍지근하게 처져있었다..... (중략) 그때 나는 급히 바닥에 깔고 있던 타월로 추한 부분을 가리면서 죽는 날까지 그곳만은, 거울 너에게도 보이나 봐라, 하고 다짐했다.
"정욕이 이는 짐승 같은 젊은 시절을 같이 보내지 않은 사람은 노화가 되는 신체에서 서로에게 새어 나오는 짐승 같은 속성을 견디기 힘들 거"
주인공 여사는 사랑이란 정욕이 있음으로 맹목적이 되고 또 아름다운 것이 된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함께 젊은 시절 짐승같이 부부로 지낸 사람만이 늙음의 속성을 견뎌줄 수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그럼 노후에 호호백발이 되어 만나 하는 멋진 로맨스그레이의 남자는 그 속성을 어떻게 보아주어야 하는 거지?"
나이와 현실에서 정욕이 없다고 사랑을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는 여주인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독자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엄마가 청혼 안 받아주면 그 집 며느리가 배고픈 할머니 아무나 데리고 온다던데 ~~" 하며
말을 전하는 며느리의 말에 "나는 너의 아버지 옆에 묻히고 싶다"라며 주인공은 그 교수를 남기고 미국으로 떠나는데 아무 미련이 안 남았을까? "
'한 번 과부 된 것도 억울한데 두 번씩 과부 될지도 모르는 일은 저지르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며 완곡하게 말한다는 게 심하게 들리지나 않았을까 눈치를 살폈지만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95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마른 꽃)
특히 두 사람의 인연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루어지는 사랑이 아니라 조금 아쉬웠지만 어쩌면 여주인공에게는 해피엔딩이었을까? 세월의 깊이와 무게가 주는 농익은 성숙미로 지혜롭게 마무리 짓는다. 박완서의 글은 고발의 느낌보다는 바라지 않는 기대 속에서 나긋나긋한 독백 같은 느낌의 진실이 느껴져 마음이 더 감동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