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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달래 Dec 14. 2023

쌍 7년 머릿니 소탕작전



구구단을 못 외우던 77년도 시절 이야기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산 밑 집엔 해가 일찍 마당으로 기어와 앉는다. 어둠이 내리면 엄마는 호롱불과 등잔불을 준비하신다. 표주박만 한 속이 환한 등잔은 벽에 걸어 방안 가득 비추이게 했고 밤새 그을음이 올라와 아침에는 유리살이 까만 연탄빛 같아서 냇가에 들고나가 지푸라기에 재를 묻혀 속살을 닦아 흐르는 물에 씻으면 다시 뽀얀 속살을 드러낸다. 주먹만 한 하얀 호롱불 밑에서 구구단을 외웠다. 석유 냄새가 늘 코를 찌르고 심지에서는 까만 연기가 몽실몽실 피어났다. 아침에 일어나면 코밑이 까맸다.



호롱불


10살쯤 되었을 때로 기억한다.


선생님은 반아이들을 교실에 남으라 하시고 맨뒤에 조장 한 명씩과 팀을 짜주셨다.

나는 그나마 구구셈을 외웠던지 맨 뒷줄에 앉게 되었다.

가만히 앞 줄의 아이들이 중얼중얼 구구단을 외우고 있을 때

나는 앞줄에 앉은 미숙이의 목에 붙어있는 까만 점을 발견한다.

"점이다! 큰 점이다! 그런데 움직이네!"

'잠깐만!! 그건 움직일 수가 없는 거잖아'.  나는 의자를 밀어내고 목을 쭉 뺀 다음 그 점을 가까이 관찰하기로한다. 2.5mm 정도의 원추상의 머리가 작고 게모양의 벌레다.

'뭐가 움직여..........'

미숙에게 다가가 귀엣말로 슬그머니 말을 건넨다

"뭐가 네 목에 붙어있어!"

미숙이는 집중하다가 갑자기 다가온 나를 보고 흠칫 놀라다가 나의 말을 듣고는 아무렇지도 아닌 듯

왼손 검지손가락을 움직이는 물체를 바로 집은 다음 엄지 검지 손가락으로 사냥에 성공을 했고 포획한 사냥감을 지지직 비벼 없애버렸다.

겸연쩍은 듯 나를 보며

"이야..."

나는 처음 보는 이의 출현에

"이?"

다른 친구들이 흘낏 쳐다보는 게 느껴져서 일단 자리에 앉았고

'이'라는 아이를 머릿속에서 다시 상상하고 있었다. 머릿속을 기어 다니다가 심심해서 목 쪽으로 길을  잃은 이.

어디로 헤매다가 목숨을 잃은 이.


해가 어둑어둑 질 무렵 우리 팀은 셈을 완수하고 귀갓길에 올랐다.





집에 와서 엄마한테

"엄마 이를 봤어 이가 목을 타고 걸어다니던데...?"

"뭐라고 어디서?"

"내 앞에 앉아있는 친구 목"

그게 머리에서 기생하는 건데 목을 타고 내려왔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온몸이 근질거리는 일이긴 하다.

요즘은  '이'라는 아이를 잘 발견을 못하겠지만 그 당시 시골에서는 부지기수로 아이들 머리에 함께 비비고 살았던 것 같다.



이:동물계이며 절지동물문으로 곤충강의 분류이고 영어로는 Lice.
아종으로는 몸니와 머릿니로 나뉜다.



엄마는 앉아있던 나를 끌어당겨 머리를 뒤집어 방바닥에 기절시키듯 눕혔다.

"엄마 왜 그래? 아프다고요!!"

"가만있어봐 이거 옮는 건데 머릿속에 있으면 너도 우리도 다 이 천지 되는 거야!"

이의 전파력에 대해 엄마는 장황하게 설명하셨지만 어린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고 머리를 처박고 있어야만 했다.

엄마는 잠깐 나갔다 들어오시더니 옆집 순이네에서 뭘 빌려갖고 들어오셨다.

참빗이라는 거라는데 진한 밤색으로 비결이 촘촘하여 다른 하고는 다르게 빗질을 해도 머리가 잘 빗겨지지 않게 생긴 이상한 물건이었다. 이걸로 빗으면 머리카락에 붙어있던 이나 이의 알이 걸러져 쓸려 나오게 되어있는 희한한 빗이다. 옛날부터 조상들이 써왔던 물건인가 보다.

갑자기 신문지 한 장을 넓게 펴시더니 화장실폼으로 나를 앉히시고 머리를 방바닥으로 축 늘어뜨린 후 빗질을 하시기 시작했다.

어머나 그런데 이게 뭔 일이야 이 새끼(욕 아님)들이, 손톱에 박힌 때 같은 아이들이 두세 개 툭툭 신문지 위로 떨어진다.

"어머 이게 뭔 일이니... 시골로 와서 이를 다 보네"

나는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내 머리에 이것들이 주인허락도 없이 공생하고 있었다니

 '요놈들 봐라!!

엄마는 1차 2차 작업을 마치신 후에 다시 엄마무릎에 나를 눕혀 뒤집어 놓으시고 3차 작전을 수행하신다.


작전명은  서캐 캐내기!


하얀 이슬같이 달려서 머릿속에 그동안 살았던 1mm도 안 되는 서캐. 이 작업은 참빗의 효과만으로는 좋은 성과를 낼 수가 없다. 이는 모조리 잡았지만 알 하나를 놓쳐 다시 이 전쟁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서캐라는 알은 머리카락에 딱 붙어서 고정이 되어있기에 엄마가 하나하나 발견하는 즉시 한알씩 빼주어야 한다.

엄마는 한 시간가량 작업을 수행하셨고 마치신 후에 솥단지에서 끓고 있던 김이 펄펄 나는 물에 찬물을 섞어서 머리를 박박 문질러 감겨주셨다. 엄마의 눈에는 나의 머릿니를 눈여겨 관찰하시겠다는 의지가 활활 타보였다. 완전 박멸의 의지였다.


그날 이후로 엄마의 당부대로 친구들과 머리를 비비고 가까이 다가가 안고 그랬던 일은 줄였던 것 같고 그렇게 중학교에 가면서 아이들이 청결을 알게 되는 나이가 되자 주변에서의 이소동은 점점 사라지게 된 것 같다.


2007년에 나온 영화 스티븐 홉킨스의 제작으로 만들어진 리핑마을의 재앙[The Reaping]에서는 헤이븐마을에서 벌어지는 재앙 중 하나로 대량의 이가 온 마을을 덮자 아이들의 머리를 삭발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를 보다가 엄마도 어린 나의 머리에서 처음 발견한 이를 보시고 깜짝 놀라시며

 '이를 어째! 삭발을 할 수도 없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 나 머리를 이 잡듯 뒤지듯 캐셨던 엄마 생각(진짜 이를 잡으신 거지만)이 많이 난다.


엄마가 계셨더라면 그때 이야기 하며 한번 웃음바다를 만들었을 텐데 엄마가 안 계셔서 무척이나 그립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시대를 잘 타고나 머리에 이소동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또 언젠가 그런 영화 같은 재앙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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