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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달래 Oct 29. 2024

누가 너를 괴물로 만든 거니?

땅투기가 뭔 말이여 이러구러 살자 제발!!

"1학년 때 집에 불났던 거 맞?"


여고 1년 짝꿍이던 미정이가 밴드를 통해 알았다며 연락을 해왔다. 입학을 하자마자 집에 불이 났었고 학교에 책가방도 없이 터벅터벅 운동복 바람으로 와서 너무 안쓰러웠지.

짝꿍이 그러고 오니 더 놀랐고 반 친구들이 돈을 얼마씩 걷어서 책도 사주고 교복도 새로 해줬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그땐 그런 애틋한 정이 있었다.


40여 년이 흘렀는데 이제야 연락이 되다니 참 반갑기도 하고 살아있으니 만나는구나 했다.

전주에서 영어 학원을 한다며 담에 전주 오면 함 보자고 하고 가끔 카톡을 주고받았다.

작달막한 키에 머리가 약간 곱슬이었고 보조개가 들어가는 너는 영어발음이 나보다 좋아서 네가 읽을 때 옆에서 듣기를 좋아했었는데...

'결국은 영어 선생님이 되었구나!'


연락이 된 지 한 보름쯤 되었을까?

카톡으로 청첩장을 보내왔바로 전화벨이 울린다.

"달래야, 담달에 우리 큰 딸 여읜다. 올 거지? "

"그럼 가야지, 이렇게 만나게 되었는데 너도 볼 겸 친구들도 꽤 오겠네? 꼭 갈게."

"근데 부탁이 하나 있어. 내가 지금 딸아이 결혼준비하는데 돈이 조금 부족한데 여유가 되면 며칠만 빌려줄래?. 수강료가 안 들어와서 그래."

"............ 그러게 큰 일 치르려니 돈이 많이 들어가겠지. 그런데 난 여유가 없어. 얼마나 필요한데?"

"한 1000 정도.. 아니면 있는 대로도 괜찮아 내가 급해서 그래."

"나는 빌려줄 현금이 그리 없어.... 월급쟁이가 그렇지~"

"내가 전주에서 누구한테 돈 빌리기가 좀 그래서 그래. 일주일 내로 바로 줄게.

청첩장에 있는 계좌로 보내줘~."

"알았어... 통장에 얼마 있는지 보고 다시 연락할게."


전화를 끊고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면서 다시 한번 세일러복 입고 해맑게 웃던 미정이를 떠올려보았다.

40여 년 만에 연락이 닿은 여고 친구.

어떻게 변한 건지 잘 모르겠고 어떻게 살았던 건지 갑자기 돈을 빌려달라니 참 난감했다. 카톡 사진을 보니 해외여행도 다니며 잘 사는 것 같긴 한데...

통장을 보니 빌려 줄 돈이 약간 있기는 했지만 찜찜했다.


우리 아빠 철학이 "돈은 꿔주지 말고 여유가 있으면 주어라."였다.

그런데 나도 여유가 있는 형편이 못되었다.

그래서 줄 상황이 아니었다. 아빠 말씀대로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면 친구의 의까지 잃게 된다 하셨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오죽했으면 어렵게 연락이 된 나에게 돈얘기를 했을까 싶기도 해서 500만 원을 청첩장에 적혀있는 보내준 계좌로 넣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통화 중이었다.

바로 문자가 날아왔다.

"고마워, 달래야 바로 들어오는 대로 갚을게."

다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답을 보냈고 결혼 준비 잘하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갔다.

일주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

'결혼식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많이 바쁜가 보다.'

어차피 담달이면 결혼식장에서 볼 텐데 재촉하지 말아야겠다고 맘을 편하게 먹었다.


그리고 결혼식날 설레는 맘으로 전주에 내려갔다.

40년 만에 식장에서 반갑게 맞이하는 핑크빛 한복을 곱게 입은 미정이를 보니 세월 진짜 빠르구나를 실감했다. 변한 건 외모에서 풍기는 나이뿐 목소리나 말하는 폼은 예전과 거의 같아서 금방 알아봤다.


내손을 꼭 잡으며 미정이 하는 말.

"먼 길 와줘서 고마워. 끝나고 식사 꼭 하고 가."

다른 동창들도 눈에 띄어서 미정이 덕분에 다른 친구들도 만나게 되니 여고시절 선생님의 이야기들도 나누고 좋은 시간을 선물 받았다.

거기까지 참 좋았다.


식당 한 테이블에서 미니 동창회가 열렸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아이들은 출가를 했는지 남편은 어떤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미정이 잘 됐잖아. 복부인이여 복부인! 땅에 투자해서 돈을 많이 벌었어. 선생님 해서는 저렇게 학원건물 통째로 세내서 운영학기 힘들지. 남편하고 헤어지면서 위자료도 받고 그걸로 땅에 눈독을 들였다지 아마! "

가까이 미정이와 만나던 친구들이 입을 모아 미정이 근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수십억 재산가지~ 얼만지 가늠이 안돼. 아마 우리들 중에 젤 재산이 많을 걸?"

나는 어이가 없어 먹던 피자조각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런 재산가가 왜 나에게 소소한 돈을 빌려달래?'

참 허망하기도 하고 내가 당한 건가 싶기도 하고...

아빠의 말씀이 뇌리를 강타했다.



때마침 박수 소리가 나며 오늘의 주인공인 신랑신부가 옷을 갈아입고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며 식당을 돌고 있었다.

미정이도 헤어진 남편과 나란히 서서 인사를 하며 내 옆에까지 왔다. 가슴이 솜방망이질 하듯이 두근두근했으나 차마 사람들 앞에서 돈얘기 하기도 뭐해서 말도 못 꺼내고

'설마 아니지? 나쁜 의도로 접근한 거...'

맘속으로 제발 제발 간절히 바랐다.


친구들이 터미널까지 데려다줘서

버스를 기다리고 앉아있었다. 마음이 헛헛하고 알 수 없는 허망감이 몰려왔다.

'그래 다 좋아. 급해서 빌려갔으면 제대로 예의 갖춰 갚아야지. 이게 뭐야! 제발 의까지 상하지 않게 해 줘~'


버스에 앉아서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자를 보냈다.

"여전히 넌 새댁같이 곱더라 진심으로 축하한다. 바쁜 것 같아 인사 못하고 올라간다. 그리고 정리되는 대로 빌려준 거 보내주면 좋겠다"

그러고도 미정이는 열흘이 넘도록 답장이 없었고 내가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도 딸아이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서 조금 바쁘다 하며 문자를 보내왔다.


내 속은 속이 아니었다. 그저 기다려야 하는 건가?  돈을 못 받아서이기도 했지만 나를 대하는 태도에 그녀에게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이그! 빌려준 내가 미친 거지. 40년 만에 연락 와서 청첩장 보내고 돈 빌려달라고 한 동창에게 빌려준 내가 제정신이 아니지.'

그날 이후로 누구에게도 말도 못 하고 냉가슴만 콩콩 앓고 화가 나 잠을 못 자는 날들을 보냈다.


 달이 다 되어서 또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다. 다시 보지 않을 작정으로 말이다.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아 미안미안.. 아이 신혼집 인테리어 하느라 정신이 없었어. 미안하다. "

"바빴구나! 그래 바로 보내라. 어릴 때 추억으로 너를 좋게 생각했는데... 경우가 좀 그렇네!"

"뭔 말을 ~~ 그리하시나~ 애가 혼전 임신까지 해서 입덧에 정신이 없었어. 내가 네 돈 떼먹기야 하겠니?"

빌려갈 때와는 말투가 달랐다. 많이 뱉어 본 말뽐새다.

기가 막히는 변명에 머리가 하얘졌다.

"그래. 알았어. 그만 됐고 입금 바로 해라!"

그 아이의 변명도 듣기 싫고 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1분도 안 돼서 입금되는 소리가 들렸다.






또 한 번 인생을 배운다. 지인들과는 절대 돈거래는 안 하는 게 맞다.

빌려줄 때는 서서 빌려주고 받을 때는 엎드려서 무릎 조아리고  빌어가며 받는다 하더니 내 꼴이 지금 그 꼴이다.

남 사정 생각해서 빌려줬더니 이게 무슨 창피스러운 일인지... 전화를 안 했으면 언제까지 안 주려고 했던 걸까? 제 풀에 나가떨어지길 바랐던 건 아닐까?

셈이 흐린 아이였다.

누가 너를 그렇게 만든 거니?


돈을 받자마자 다시 결심했다,

누군가 만져만 보고 준다고 해도 NO~.라고 말하리라.


그 아이의 이름을 '땅투녀'라고 바꿔 저장을 했다.








황당한 일이 일어나고 머릿속에서 잊히고 있을 즈음

어느 날 안타까운 그녀의 소식이 들려왔다.

"미정이 걔 동남아에 땅 샀다가.................."

 동창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가 귓전을 맴돌며 나는 푸껫의 바다 멋진 풀빌라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녀는 동남아 어딘가 바닷가 근처 절벽 위에 초고급 호텔이 생긴다고 해서 전재산을 털어 땅을 샀다가 쫄딱 망했다는 것이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모르지만 결말은 좋지 않았다. 



전망 좋은 바닷가 위 절벽에 호텔이 생기면 상상이상의 수익이 날 거라고 기대가 컸겠지. 몇 년 전인가 한국에도 물들어오면 국가땅, 물 빠지면 내 땅이라는 기획부동산이 설쳤다던데 그런 사기극에 걸려들었던 모양이다.

요즘에도 이런 일들이 있다니 씁쓸함이 몰려왔다.






착하게 살자 동무야. 제바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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