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뱉는 일 감사하자!
"뭔 약? "
"관장약! 1시간째 앉아 있어..."
어느 정도 위급인지 짐작이 가길래 일단 끊고 약부터 사다가 들이밀어 볼 요량으로 근처 약국으로 내달았다.
'엊그제는 장염으로 응급실을 다녀오더니 이제는 변비라! 뭔가가 탈이 나도 한참 난 거군!'
안쓰러운 마음에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있을 그녀를 떠올리며 100미터를 달리기 선수처럼 뛰었다.
약봉지를 들고 알고 있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보니 애가 얼굴이 사색이 되어 걸터앉아서 피식 웃는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으리라.
"관장할 줄은 아니? 넣어주랴?"
우스개 소리라도 해야 분위기가 나아질 듯해서 말을 던져보았다.
"아니 내가 해야지.. 까주기나 해 봐."
문을 닫고 좋은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다시 문이 열리며
"한 개 더 까줘,,"
"왜? 안돼?"
"그게 다 흘렸어. "
"누워서 넣고 기다리다가 들어가야지 앉아서 넣으면 그게 다 흐르지. 이그 "
"아무래도 내가 넣어줘야겠군. 나와서 여기에 누어!"
10대 때 중학교를 같이 다닌 50년 지기라 넣어달라면 넣어 줄 수도 있었다.
그녀는 아무래도 친구 앞에서 민망한지
나보고 안방에 들어가 있으라 하는데..
혼자서 이럴 땐 해결을 하는 게 편할 것 같아서 집으로 내뺐다.
"집으로 갈 테니 혼자 편하게 하길 바란다."
쿨하게 돌아서 나오는데 장으로 고생하는 친구가 안쓰러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약만 넣으면 해결이 될 줄 알고 맘 편하게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브런치 글을 읽는데 또 전화가 울린다. 아까보다 더 죽어가는 소리로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나 세브란스 응급실에 데려다줘."
"뭣이라고? 안된 거야?"
"아무래도 혼자는 어려울 것 같아"
데리고 가주는 건 어렵지 않은데 순간 응급실에 가서 벌리고 누워있어야 하는 그 친구의 자세가 떠오르며
"실어다 주는 건 어렵지 않은데~ 자 봐봐 봐 잘 들어봐! 나도 그럴 때가 있었어. 가래떡 주무르듯이 살살 달래듯 빼줘야 해."
라며 나는 하나에서 열까지 설명을 시작했다.
(읽으시는 독자님들 죄송합니다. 역거우실 수도 있으니 패스! 하셔도 좋아요.
관장도 급할 때 약을 써야 하지만 살살 요리조리 주물러서 성사를 시키는 방법도 있으니 꼭 실천해 보시길 바랍니다.)
친구는 내 설명을 듣는 듯 마는 듯하는 것 같다가 급한지
"엉... 해볼게 ~"
하며 전화가 끊겼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기다리던 톡이 왔다.
"나왔어. 숨 막혀 죽다 살았어."
"그래 다행이다 애썼다."
"이거 어마어마하게 감사한 일이구나!"
"우리가 모르고 살았지 감사할 일이지.."
톡으로 다시 감사함을 깨달았다고 득도한 듯 문자를 보낸 친구.. 혼자 한 시간 넘게 오죽 힘들었을까?
사는 게 그런 것 같다.
우리 곁에 늘 있어 주는 공기와 햇빛과 단비에 대한 감사를 잊고 살았다.
먹는 거 배출하는 거 일상에 묻혀서 모르고 살았던 나를 반성하는 일이 되었다.
먹지도 못하고 배출도 못하면 힘든 일이었다.
먹긴 먹는데 배출을 못하면 그것도 더 고되다.
감사하며 살자.
11월이 어느덧 와 있다.
장으로 고생하는 친구에게 변비완화에 도움이 되는 약간 숙성된 바나나와 달달한 키위를 사 들고 찾아갔다.
"정여사 고생했소, 얼굴이 핼쑥해졌네.."
"그러게 죽다 줄 알았어. 힘을 쓰니 머리가 아프더라고!... 내가 물을 잘 안 먹어서 그런가?"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 중요하지 아침에 따뜻한 물 한 컵 씩 마시는 습관 꼭 기억하고~~ "
변비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던데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먹는 거에 대해 쉽게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사는 건지 모르겠다
한참 수다를 떨고 결론은
구호를 외치며 서로의 장 건강을 위해 다짐했다.
오늘은 감사함을 모르며 살았음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관장 해프닝을 적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