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방인인가 시지프스인가?
그저 태양빛이 세서 살인을 했다는 정도로 어린 나이엔 피상적으로 읽은 책이었다.
이 책을 안 읽은 사람도 이 첫 문장은 알 정도로 유명한 글이다.
알제리에 사는 월급쟁이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에도 별 반응이 없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뫼르소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장례식의 뜨거운 태양은 그의 사고를 마비시킨다.
그는 어느 날 태양이 눈이 부셔서 사람을 죽인다.
무난하게 풀려나거나 가벼운 형벌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그는 자기는 과거에나 현재나 행복하다고 느끼게 된다.
기성의 가치와 습관에 무관심하게 되어 인생에는 어떠한 의미도 없다고 하며 어머니의 장례건과 불충분한 자기변호로 인해 계획 살해범과 무자비한 인간으로 부풀려지며 사형 선고를 받는다.
재판장에서 죄명은 살인이지만, 사람들은 그가 어머니의 죽음에 울지 않았기 때문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살인 자체보다도,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것이, 장례식 다음 날 여자친구와 사랑을 나눴다는 것이, 총을 여러 발 쐈다는 것이 뫼르소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된다.
교도소에서 항소도 포기한 채 집행일만을 기다리는 뫼르소는 자신의 삶을 거부한다. 이에 신부는 그의 비정상적인 면모를 보고 불쌍한 인간이라 말하며 떠나고, 혼자 남은 그는 마침내 어머니의 삶과 세상의 애정 어린 무심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자신이 가장 바라는 것은 처형되는 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증오를 퍼붓는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해서 자신의 이야기가 완벽하게 마무리되고, 자신이 혼자라는 느낌을 최대한 덜 받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뫼르소는 독방에서 죽기 전 자신이 이방인 같다고 떠올린다.
오늘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떻게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행복은 누가 주는 게 아니라 기쁨의 빈도와 평균값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염병과 전쟁으로 황폐해진 미래의 어느 세상.
네 명의 배우 언노운, 포엣, 클라운, 아스트로가 모였다. 이들은 폐허 속에서 해야 할 일을 제안한다.
시지프스처럼 돌을 굴려보자고.!
배우에게 돌은 STORY!
포엣이 바닥에서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주워 들고, 이들은 연기하기 시작한다. 어머니의 죽음에도 눈물 흘리지 않고,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인 뫼르소의 이야기를.
DIMF에서 수상한 작품으로 배우들의 열연도 인상적이다.
“끊임없이 돌을 굴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처럼 배우들은 끊임없이 무대를 갈구하며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끊임없이 인생에 치이며 살아오는 우리들처럼 모두 힘들게 살아가야 하지만 극에 등장하는 모습처럼 우리는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를 외치는 배우들의 목소리가 가슴에 파고든다.
소설이방인과 시지프스의 신화를 접목시킨 뮤지컬이다.
시지프스가 매일 돌을 밀어 올리는 산을 연상시키는 경사로를 오르내리며 시지프스의 고행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이를 통해 신화 속 시지프스와, 매일 자신의 캐릭터를 창조하지만 공연이 끝나는 순간 그 캐릭터가 사라져 버리는 배우로서의 삶이 얼마나 닮아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담아냈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 '엄마', '관리인', '재판관' 등 네 인물들을 배우 넷이 돌아가며 연기를 해내 그들이 느끼는 슬픔과 고독 등을 자유롭게 그려내 그들의 열연에 관객들 모두 기립하는 공연이었다.
재판장에서
검사는 어머니의 죽음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며 말하고,
처음 쏜 총알 외의 4번의 방아쇠에
의문을 제기한다.
총을 4번을 더 쏜 이유에 뫼르소는 이렇게 말한다.
결국 우발적인 범죄가 아닌 계획된 살인으로 낙인 되어
사형만을 기다리는 뫼르소.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온 뫼르소는
감정이 무엇인가,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요양원에 보내졌을 때
무슨 생각이었을지 어머니가 왜
애인을 왜 만들었는지
비로소 저절로 깨닫게 된다.
죽음이 다가오기 전까지 삶에 만족하고
초연히 죽음을 기다린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철학적인 내용의 뮤지컬이었다.
공연을 보면서 연말연초에
사람에게 정신적으로 당해서
화나고 수치스럽고 억울한데
아무 생각하기 싫어서
그동안 쏟아 온 감정 소모 때문에
현실이 믿기지 않아서
지우려고 회피만 했던 나 자신이 떠올랐다.
글도 써지지가 않았다.
회피형들은 알겠지만 회피하면 감정이 안 느껴져서
실제론 힘든데 힘든 지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못한다.
그저 정신이 혼미할 뿐이다.
나를 이기는 방법은 빨리 지우는 방법이다.
머리에서 떨쳐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글을 다시 쓰기로 했다.
시지프스가 돌을 다시 굴리는 이유처럼 나도 다시 쓰기로 했다.
쉬는 동안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감동도 나누고 함께 하였다. 그것만이 할 수 있는 기쁨이었다.
"글 안 써요? 작가님!?"
이라는 말에 정신이 들었다.
작가님들께서 관심과 위로를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부족하지만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올해도 소통하면서 배워가면서 자유롭게 쓰기로 하였으니 따스하게 보아주시면 감사하겠다.
올해 들어 첫 글은 뮤지컬 시지프스의 관람평으로 시작해 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방인과 시지프스에 대한 생각을 적어주시면 아직도 세상을 어렵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