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때문이지, 뭐.
입사하고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외국으로 휴가를 갔다.
그것만이 힘든 직장 생활의 유일한 버팀목이었고, 젊었을 적 난 비행기를 타는 게 그리 좋았다.
몹쓸 유행병 때문에 하늘길이 끊긴 뒤.
놀랍게도 해외여행에 대한 내 갈망이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마지막 외국 여행이 최악이었기에, 그 후 여행을 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소풍날 비가 오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 20대에 운전면허 시험 당시, 도로 주행할 때도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쏟아졌었다.
국내에서만 그랬으면 다행이게.
대학 시절, 기업에서 보내주는 공모전에 합격하여 처음으로 미국에 갔던 날이었던가.
비행기를 타던 날 바로 유행하던 눈병이 걸려, 여행 내내 고생해야만 했다.
힘들게 휴가를 잡고 홍콩에 갔을 때는 일주일 내내 비가 왔다.
덕분에 360도 뷰 어쩌고 하는 곳은 예약한 걸 다 날려야만 했다.
내 여행에선 해당 사항 없는 말이 되었다.
그다음 연도엔 친구와 일본으로 온천 여행을 갔다.
오사카와 후쿠오카를 둘러보기로 했는데.
하필이면 값비싼 전통 온천 마을에 들어가려 한 날.
일본에 대폭설이 내려 온천 마을의 길이 끊겼단다. 눈을 헤치고 들어갈 수조차 없다고.
그 문제의 친구와 태국에 갔을 때는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태국 음식 맛을 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다.
내 운은 정말 쯧쯧.
그래. 여기까지는 뭐 그럴 수도 있다.
방송기술인 연합회에서 해외 연수 프로그램에 지원해 합격했는데.
세상에나.
꿈에서 그리던 프랑스에서 일주일간 교육을 받는 일정이었다. 그 일주일 중 단 이틀만이 자유롭게 여행이 가능한 날이었는데. 그날 어떤 일이 내게 일어났을까?
백 년 만에 폭우가 내렸단다. 하하하.
루브르 박물관의 천장에 물이 떨어져, 보수 공사로 당분간 문을 닫는다고 했다.
게다가 베르사유의 궁전?
거긴 근로자가 파업이란다.
(심지어 혼자 배낭을 매고 길거리를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다가, 웬 키 큰 커플이 내게 “흐아아앙!” 하고 소리를 질러 외국에서 쌍욕을 하고 싸우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해외로 나가지 않을 법한데.
일하면서 은근히 해외 연수라는 기회가 찾아왔다.
직원 전체가 팀을 나눠 가는 것이었기에 나만 혼자 빠질 수 없었다.
방송장비전시회 관람을 핑계로 도쿄에 갔을 때.
그래. 사실 여기선 별일 없을 줄 알았다.
피규어 뽑기 기계에 열중하다가 지갑을 잃어버리고,
도쿄돔 호텔까지 두 시간 걸었던 것만 빼면 뭐.
이 정도쯤은 그간 다른 나라에 비하면 양호하지.
해외여행 경험 중 제일 하이라이트는 네덜란드였다.
여기서도 유럽 방송 장비 전시회를 관람한다는 핑계로 회사 선배들과 뭉쳐 가게 되었다.
사실 하와이로 가는 코스도 있었건만.
선배들은 사장님이 가신다는 네덜란드를 모두 가기 싫어했다.
결국 만만한 날 네덜란드 팀에 집어넣으셨다.
당시 선배들 왈.
제기랄.
나도 이때는 그럴 수 있을 줄 알았지.
네덜란드는 식사 자리마다 사장님이 함께 계셨기에 즐거울 수 없었다.
다들 말을 조심조심했고, 눈치만 보다가 숙소로 사라졌다.
숙소에서 잠잘 준비를 하다 보면 술 좋아하는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지금 자기 방에서 술판이 벌어질 예정이니까 건너오라고.
몇 번은 자는 척 거절하다 결국 눈치가 보여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선배는 당연하다는 듯 자기 직속 후배인 나를 부려 먹었다.
“야, 술이랑 안주 좀 사 와. 그리고 아침에 해장할 한국 라면도 사 오고.”
연고도 없는 곳에서 마트를 찾아 헤맸다. 유럽 마트에 한국 라면을 파는 곳이 그때 당시는 많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장을 봐오면 안주까지 만들어 선배들 술상에 가져오기를 바라셨다.
차라리 이럴 거면 술집을 가지 왜?
유럽은 레스토랑과 술집이 일찍 문을 닫았고.
선배들은 한국에서도 새벽까지 술을 마시기로 유명했으니.
결국 한두 번 원하는 대로 따라주다가 결국 나도 폭발했다.
내가 폭발해봐야 전화를 안 받는 정도로 끝나는 수준이었지만.
하지만 사람은 여러 번 잘해주다 한 번 뜻대로 해주지 않으면 그걸 두고두고 뭐라 하는 법.
결국 한국에 돌아와서는 내게 진상 짓을 하던 선배에게 찍혔다.
워낙 목소리가 크고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기 좋아하시던 분이셨으니. 그 후의 마음고생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대망의 나의 결혼식.
코로나, 그 지긋지긋한 유행병 때문에.
잡아놓은 항공권과 호텔 예약은 취소가 되었다.
그랬다.
결혼한 지 이제 2년이 넘었는데 나는 아직도 신혼여행을 가지 못했다.
지금은 시간이 있지만 하와이에 가서 즐길만한 자금이나 심적 여유가 부족하다. 아직 마감해야하는 원고도 다 작성하지 못했고.
게다가 집에 있는 반려동물들도 다들 나이가 있어서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내가 없으면 스트레스받아 몸에 이상이 생길까 염려된다.
언젠가 내게 또 다른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긴 오겠지.
내 지긋지긋하게 끔찍한 여행 운도 언젠가는 좋아질 날이 올지도 모르고.
마지막 여행 기억이 그렇게 끔찍했던 네덜란드에 머물러있다는 건 좀 싫다.
그 진상 선배.
퇴사한 뒤에도 이렇게 이가 갈리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나는 해외여행이 싫어진 게 분명하다.
이제는 집순이로 성향이 바뀌어, 집에만 있는 게 더 좋아진 걸지도 모른다.
에라. 집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이렇게 좋은데. 해외여행 좀 안 간다고 뭐 어때?
자발적 집순이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