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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스포인트 Jun 20. 2022

퇴사 통장

만기 채우고 퇴사합니다.

방송국 입사 10년하고도 4개월을 채우고서야. 나는 퇴사를 실행하는 중이다.     

입사한 이래 억울하고 분한 순간이 많았다.


나는 그때마다 퇴사 통장이란 것을 만들어 적어 내려갔다.

언젠가 내 퇴사 통장 속에 더는 적을 면적이 없을 때. (혹은 버틸 힘이 없어졌을 때. )


딱 그때까지만 버텨보자고.


그러다 동기 중 한 명이 휴직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언니. 나 6개월 정도 휴직하려고.”

“어떻게 승인받았어?”     


왜 휴직하느냐 물어본 게 아니라, 내 입에서 이런 소리가 먼저 나왔을 때.

그때 깨달았다.


아. 지금이 내가 퇴직할 순간이구나.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퇴사하라는 텔레파시를 쏘아주고 있는 거 같았다.


꼰대 상사들의 똥군기 문화에 동기나 나나 지쳐있긴 마찬가지였다.

동기에게는 병원 진단서가 있었고, 나는 그 문제의 진단서가 없었을 뿐.


     난 휴직말고 퇴사를 선택했다.


사실 2년 전 이맘때쯤.

나는 상사들에게 갑질을 당한 적 있었다.


내가 결혼한 순간 변했고 일에 소홀하다고 자기들끼리 쑥덕이더니, 그 후로 괴롭힘이 노골적으로 변했었다.

(딩펫족이라 애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평소대로 일했다. 심지어 코로나가 터졌을 때 결혼을 했던 터라 신혼여행도 가지 않은 상태였고. 업무에 그 어떤 지장도 주지 않았다 자신한다.)

 

문제는 부조정실에 영상업무를 보러 갔다가, 선배들의 뒷담화를 내가 다 들어버렸다는 거다.

그 후에 터덕거리며 일을 했다. 상처 많이 받았지만 겉으로는 괜찮은 척.

나는 부조정실로 갈 때마다 휴대전화 녹음 버튼을 켰다. 증거가 없으면 선배들 편을 들어주는 게 이 방송국의 생태계가 아니던가.


하나의 방송 녹화 후, 바로 스튜디오를 바꿔 다음 녹화가 또 있는 날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장비 근처에 올려두고 기계실로 가서 카메라 케이블을 바꾸는 작업을 하고 부조정실로 돌아왔었다.     

그때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선배의 목소리.


“쟤 근무 들어오지 말라고 해요! 내가 국장한테 말할 테니. 어린놈이 싸가지 없이-xdcq.”     


잡았다.

내 휴대전화는 여전히 녹음 기능이 켜진 상태였다.     

잠시 뒤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날 보고 선배는 흠칫 하셨지만. 그는 끝까지 내게 별다른 사과를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난 불편한 분위기에서 방송 녹화가 끝날 때까지 부조정실에 앉아 영상 업무를 봤다.     

다행히도 당시는 갑질 금지법이 나와 세상에 화두가 될 시기.


녹음된 파일을 들고 국장님을 찾아가 들려주며 말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갑질 금지로 신고하면 좋을지, 아니면 휴직이나 퇴사를 선택할까요.”     


이땐 열정을 가지고 일하던 회사에서, 사람들에게 질려 이런 말을 했다.

당시 국장님은 내게 못 간 경조 휴가를 다녀오라며 2주간의 휴가를 허락하셨다.     

나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기에 잘됐구나 싶어 냉큼 휴가를 갔는데.

사실 회사 경영진들의 대비할 시간을 벌 생각으로 내게 내어준 휴가가 아니었나 싶었다.

    

갑질로 인해 뉴스 기사가 한창 나올 시기에,

정작 방송국 갑질은 입 한마디 벙긋하지 않는 게 현실이니.


그때부터 고민했다.

방송국을 그만두고 내가 뭘 하며 먹고 살 수 있는지를.     


처음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상담사 선생님 앞에서 펑펑 울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어떻게 오셨어요?”

“아니, 별일은 아니고요.”     


그 말과 함께 펑펑 울며 뒷말을 잇지 못했다.     


아, 나 괜찮지 않구나. 그간 많이 힘들었구나.     

그렇게 약도 먹고 상담도 받으며.

만약을 대비해 상담을 받았다는 확인서? 진단서 같은 것도 떼어놨다.     


만약 방송국에서 벌어진 일로 내게 피해가 있다면.

이 문서와 녹음 파일을 증거로 나도 일을 크게 키울 거란 독기로 충만해져 있을 시기였다.     


“나, 여기 그만두면 뭐 하면서 먹고 살지?” 


당시 방송국 입사 8년 차.

(그 전에도 다른 소규모 방송국을 다니며 약 3년의 경력이 있었지만.)


여기보다 내게 월급을 많이 줄 회사는 없었다.

다달이 나가는 집 대출금과 내게 딸린 4마리의 어르신 고양이들과 1마리의 강아지. 게다가 백수 남편까지.


내 어깨에 무거운 짐은 늘어났는데.

책임져줄 이는 나 말고 아무도 없다.


이것이 어른의 무게인가.

눈물을 흘리며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마냥 바라보다가.

웹소설 공모전 광고를 보게 되었다.

     

‘웹소설? 그게 뭔데.’     


글이라곤 초등학교 이후로 써 본 적 없던 내가.


"와. 상금 엄청 커."


공모전 상금이 탐나 웹소설이란 것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여러 작품을 빠르게 속독하고 내린 결론.

  

‘이거 나도 쓰겠는데?’     


새로운 기회가 내게 찾아온 순간이었다.     

웹소설에 대해 잘 모르던 내가 공모전에 참가한다고 좋은 결과가 있을 턱이 있겠는가.

제대로 된 플롯도 짜놓지 않고 그때그때 마구잡이로 쓴 소설.

퇴고가 뭔지, 오타는 어떻게 검수하는 것인지.

그리고 현대 판타지 분야는 여자 주인공을 쓰면 인기가 없다는 것도 몰랐던 애송이였다.     


그렇게 쉬고 있을 때,

회사에서는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당시 노조위원장님 왈.     


“같은 노조원들끼리의 싸움이라, 노조에서는 자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네.”     


응. 그렇게 나오실 줄 알았다.

근데 나 공모전 나갈 글 쓰느라 바쁜데, 괜히 전화해서 내 시간 좀 뺏지 않으면 안 되겠니?     


2주 뒤 회사로 복귀하고, 국장님은 내게 서약서 비슷한 걸 쓰라 강요하셨다.

추후 법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소송을 걸지 않겠다는 그런 종류의 내용 말이다.     


“이거 저만 쓰나요? 정작 제게 갑질하셨던 선배들은요?”     


그들은 기록을 남기고 나중에 인사 고과에 영향을 받기 싫다며 끝까지 거부하였다고 한다.     


“이거 안 쓰면 저는 어떻게 되는데요?”     


8년 전 날 뽑아주셨던, 지금도 내가 가장 존경하는 당시 국장님의 입장이 곤란해지시는 게 눈에 빤히 보였다.     

‘그래. 웹소설 작가로 성공할 때까지만 다니자.’     


그들이 원하는 대로 법적인 소송을 하지 않겠다고 한 장짜리 서약서를 내 마음대로 형식 없이 대충 쓴 뒤 드렸다.     


당시 나는 글 쓰는 게 너무 재미있어 회사를 이런 마음으로 다녔다.     


‘여긴 그냥 돈 벌러 나오는 곳. 내 주요 목표는 웹소설 작가 되기. 방송국은 그냥 아르바이트하러 나오는 곳.’

 

이렇게 자기 위안이라도 해야, 방송국에서 버틸 수 있었다.     

길고 긴 웹소설 공모전에서, 당연히 탈락했다.     

다만 신인 작가들을 지원해준다고 크리에이티브 펀딩 어쩌고 거기에 뽑힌 덕에.     


“아, 내게도 재능이란 게 있겠구나.”     


하고 포기하지 않고 여태 글을 썼다.


당연하게도 초보 웹소설 작가인 나는, 2021년은 무료 연재를 하다가 헛발질만 했다.     

그동안 시중에 나온 웹소설 작가님들의 작법서를 모두 다 읽었다.

내가 글을 쓸 때 참고할만한 서적은 모두 다 샀다.     


그러다 투고라는 것을 해보고 출판사와 계약에 성공해 쓴 글은 현재 리디북스에 심사를 넣어둔 상태다.

(젠장. 잘 되야 할 텐데.)


그리고 이번 2022년에는 무료 연재 중 좋은 출판사와 인연을 맺어 새로운 글을 쓰고 있는 중이고.

 

2년 전 썼던 글이 내게 가져다준 수익은 상금까지 포함해서 총 4NN만원.

플랫폼 높은 프로모션까지 받고도 작가인 내 능력이 부족해 이 정도 벌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높은 수익률에 무척 만족했다. 글 쓰는데 6개월정도 소요되었으니 최저 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지만. 


“내게도 가능성이 있다.”     


세상이 전해준 이 '희망'이란 것을 엿본 게 기뻤다.




현재 상황으로 웹소설로 번 금액은 이번에 받은 선인세까지 합쳐서 5NN만원 뿐.     

웹소설에 도전한 2년간 번 금액이 이것뿐인데도 나는 과감하게 회사에 사표를 내려 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내 통장에 있는 돈으로 숨만 쉬고 살아도 2년은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최악의 경우 길거리에 나앉겠다는 생각도 해봤는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


10년간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내 저장고에 저축해둔 돈만 믿고.

그렇게 나는 불안하게 새로운 직업을 시도해보려고 한다.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볼 계획이다.


그 첫 시작은 브런치 작가.

유튜브도 도전해보고 이것저것 다 해봐야지.     

물론 주력은 날 설레게 해주었던 웹소설 작가 도전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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