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 합격과 사직원 통과가 동시에 났다.
인생이 참 아이러니한 일들의 연속이다.
브런치 작가 합격 메일이 찾아옴과 동시에, 오래간 다녔던 방송국에서도 사직원 결재가 났다.
덕분에 나는 뭔가 홀가분하면서도 설렜다.
합격 메일은 세상이 내게 그리 살아도 된다고, 허락받은 기분이 들게 했다.
약 2년 전, 회사에서 사람에게 데어 죽겠다고 앓아누웠을 때.
생각해보면 그때도 글은 내가 숨이라도 쉴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열어주었다.
터무니없는 자신감일지라도.
나라도 나의 가능성을 믿어주고 싶었다.
내가 직장을 그만둔다고 당장 회사가 휘청하거나, 세상이 무너지는 일은 없다.
방에서 웅크리고 앉아 창밖을 보고 있으면 계절은 잘도 굴러간다.
그게 38년 살며 깨달은 인생 진리다.
청년 농사꾼 지원사업도 고작 만으로 39살까지.
정부가 지원하는 각종 청년 사업엔 나이 상한선이 만으로 39.
나는 아직도 젊은 거 같은데.
고작 청년의 세월이 1년 남은 거 같아 조급해졌다.
내가 이루고 싶은 미래의 모습은 방송국 내에 없었다.
정년퇴직으로 떠나가는 선배들의 뒷모습은 작고 씁쓸해 보이셨다.
내가 뭐라고 그들을 평가하겠느냐만.
그리고 내가 뭐라고 그들이 내게 자신의 은퇴 후 계획을 공유하겠느냐만.
30년간 방송국에 충성하여 연로한 엔지니어로 은퇴할 내 모습은, 안 봐도 눈에 훤히 그려졌다. 틀림없이 허탈한 마음뿐이겠지.
그래서 회사에 사직원을 제출했다.
퇴사를 말했을 때.
다른 일을 찾은 것을 축하해주시는 선배도 있었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며 설득을 하시는 분도 계셨다.
국장님께서는 내 퇴사를 말리시며, 그래도 연말까지는 일해야 한다고 설득하셨다.
뭔가 훈훈한 분위기가 오갔기에 내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나 하는 착각에 잠시 흔들렸었다.
그리고.
“분위기 흐리고 다니지 마. 뭐하러 너 퇴사하는 걸 동네방네 소문내냐?”
라는 말을 하는 분도 계셨다.
‘그럼 그렇지.’
국장님 앞에서, 회사 일정에 맞춰 6개월이나 남은 연말까지는 일하고 마무리를 지어야 할까 잠시 흔들렸던 날 반성했다.
사람들은 다 자기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법이다.
내가 아무리 다른 사람을 배려해 내 퇴사 날짜를 맞춰주더라도.
그들은 내게 고맙다는 감정보다는 회사 분위기 흐리고 다닌다는 뒷말만 하겠지.
다행이다.
회사에 남은 정마저 모두 미련 없이 떨어져서.
이제 퇴사까지 남은 기간에 설렁설렁 일하며 글에만 집중해야겠다.
다행스럽게도 당장 10월까지 넘겨줘야 하는 웹소설 원고가 있다.
내 이번 연도 목표가 카카오페이지에 입성하기였는데.
올해 초 계약한 출판사에서 다행히도 내 원고를 그곳에 심사 넣어주셨다.
(물론 통과해야 내 목표가 이뤄지는 거고. 안되면 다른 곳에 심사를…. )
이제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무 통과가 되기를 기다리며.
열심히 웹소설에 집중해야 할 때.
내 20대의 꿈은 방송국 입사하기였는데.
30대를 지나 곧 40대가 될 문턱 앞에서 나는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인생이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사람 일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혹시 모르지.
50대쯤엔 귀농하여 농사를 짓고 있을지도.
뭐가 되었든 꿈만은 포기하지 않고 뭐라도 성과를 낸 내가 되었으면 한다.
거친 폭풍우야 불어라.
내가 쉽사리 꺾일까 보냐.
들판에 자라나는 강아지풀처럼 흔들릴지언정 꺾이지는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