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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스포인트 Jul 13. 2022

사직서를 던진 뒤 출근하면 좋은 점

내 마음속 깊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다.


어차피 10년이 넘게 회사생활 하면서

수없이 ‘싸가지 없다.’고 뒷담화를 들었던 나였다.


사직서를 던졌으나 회사 사정을 봐주느라 2달이 넘게 일을 하는 건 고역이었다.


지금도 내 뒤에서,

내가 사직 후 무슨 일을 하는지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이직을 한다더라.”

“치킨집을 차린다더라.”라는 둥 말을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 전에는 기자 선배께서 내게 “그만두고 펜션 사업한다며?”라고 물어보셨다.


‘궁금해 죽으라고 끝까지 내가 뭘 하는지 말 안 하고 떠나야지.’


어차피 그만둘 거.

귀를 닫고 나는 나만의 길을 가련다,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부장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새로 온 애, 혼자서 일 맡겨도 되겠냐?”

“네. 열심히 하려고 하는 거 같던데요.”

“내가 불안해서 그래. 네가 볼 땐 어때?”


그걸 왜 나한테 묻나.


“솔직하게 말씀드려요?”

“어. 말해봐.”

“열심히 하든 안 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전 그만둘 사람인데. 하하.”


내 장난 섞인 말에 부장님 역시 웃으며 버럭하셨다.


“야 씨. 넌 선배가 되어서, 그게 할 소리냐.”

“어차피 부조정실에는 다른 선배들도 계시잖아요. 무슨 일 생기더라도 그분들이 도와주실 거예요.”


우리 회사는 선배들 연령대가 참 높은 편이다.

해서 신입이 맡을 업무를 잘 모르는 분들도 꽤 많다.


“야, 이 노인네들이 뭘 알겠냐. 너 그만둔다니까 요새 내가 자꾸 불안하고 그렇다.”

“에이, 지금에 와서 그러면 뭐 해요. 여기 있을 때 차장 진급 한번 안 시켜줘 놓고. 이제 와서.”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 깊이 감춰두었던 속내를 꺼내놓고 깜짝 놀랐다.


아. 나 작년에 차장 진급 못 한 거 은근히 신경 쓰고 있었구나.

같이 입사한 동기들은 입사 당시 방송 경력이 전혀 없었는데도 부서에서 밀어줘서 승진했는데.

승진 순서에 사람 나이를 세워놓고 차례를 따지는 우리 부서에서는 당연하게도 내가 밀렸다.


게다가 나보다 훨씬도 전에 입사하셨던 여자 선배들의 전례에 따르면.

동기가 부장을 달 때쯤에야 겨우 차장을 다셨으니.

여기서 더 버텼어도 내 신세는 다른 여자 선배들과 비슷했겠지.

물론 그것 말고도 내 승진이 밀리는 것엔 여러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윗분들을 두둔해주고 싶기도 하지만.

  

이제 회사 때려치우는 마당에 무슨 상관이야!

너희끼리 다 해 먹고 확 망해버려라.


이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내가 남은 사람들 걱정이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지난번 일부 여자 선배들을 만났을 때.

그분들이 내게 하신 말씀이 있었다.


“00아. 너 어차피 그만두는 거,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 너한테 함부로 대했던 사람들한테 막 지르고 가버려.”

“그래. 그동안 없는 말 지어내면서 사람 얼마나 괴롭혔어. 당했던 거 다 풀고 가.”


아니. 제가 왜요?

굳이 그만두는 마당에 똥물 튀길 일 있나.


역시 그만두는 회사에 아군은 없었다.

나는 오늘도 출근해서 마냥 달력만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린다.

‘하아. 이 지겨운 회사 언제까지 다녀야 하나.’ 하고 말이다.


사직서를 던진 뒤,

회사에 출근하면 좋은 점은 뒤끝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다는 것.


싫은 점은.

다른 일에 집중해도 모자란 시간에 여기에 매여 있다는 거다.


미안하다, 신입아.

나는 이 회사에 대해 좋은 말은 못해주겠다.


그래도 넌 담배도 피우고 남자니까.

여기 선배들이 잘 챙겨줄 거야.

아마 같이 술이라도 마셔주면 그다음 날은 인생 최고의 인연처럼 챙겨줄걸?


그러니 알아서 잘 헤쳐가길 바란다.

책임감 없이 할 말 못 할 말 다 하면서 회사 다니니.

참 시간 아깝고 좋구먼.

그래도 스트레스는 예전보다 덜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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