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곧 추석이다.
부모님께 안부를 묻는 전화가 왔다.
회사는 잘 다니냐는 아무것도 아닌 물음에, 망설이다가 퇴사했다고 말씀드렸다.
내가 퇴사한 지 약 한 달쯤 지난 날이었다.
역시 내 퇴사 소식에 아버지께선 한숨만 푹 쉬셨다.
“그 들어가기 힘든 곳을, 왜 그렇게 쉽게 그만뒀냐?”
쉽게 그만두다니.
10년을 넘게 다니며 매일 퇴사만을 고민했거늘.
“어떻게 들어간 곳인데. 다른 데 가면, 너한테 그 연봉 주는 회사가 있을 거 같아?”
아버지는 답답해하셨고, 날 한심하게 여기셨다.
전화기로도 그 매캐한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지금 여기서 내 상황을 구구절절하게 이야기해도, 어차피 바뀌는 건 없다는 걸 안다.
늘 그렇듯 가부장적인 우리 집은
나만 성격 나쁘다고 몰아가며 비난하겠지.
그래도 변명이랍시고 이야기를 꺼냈다.
“다른 일 찾아서 하고 있어. 그리고 거기 다니면서 선배들 갑질로 얼마나 힘들었는데. 병원 다니면서 몸이 더 안 좋아지기 전에 그만둔 거야.”
그래도 부모인데.
이런 내게 자그마한 위로라도 해주시길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다.
“야. 나 직장 다닐 때는 더 힘들었어!”
이어지는 잔소리. 잔소리.
애초에 나와 부모는 결이 달라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나도 나쁜 딸이 될 수밖에.
“바쁘니까 끊어요.”
백수가 뭐가 바쁘냐는 호통이 이어졌지만, 끝내 난 전화를 끊었다.
중학교 땐가.
미술을 배워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내 꿈을 제일 먼저 거부하셨던 분들이 부모님이셨다.
딱 한 달만 미술학원에 보내주지.
그랬으면 나도 그림은 내 적성이 안 맞는 거구나 바로 깨닫고 다른 꿈을 찾았을 텐데.
부모님은 내가 백수로 놀고먹는 걸 가장 끔찍하다고 여기셨고 또 두려워하셨다.
이 소리는 딱지 내려앉게 자라면서 내내 들어야만 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말이다.
그리고 반항기 많은 나는
제일 싫어하는 직업이 교사, 공무원이 되었다.
나는 절대 내 부모가 바라는 대로 살지 않겠다고. 그리 결심했다.
하지만, 뭐 해 먹고 살지?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살고 싶은데.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 흥미 있는 것을 배우려고 시도하면, 여지없이 부모님이 화를 내며 방해하셨으니까.
결국 취업이 가장 잘된다는 공대에 입학하고, 그렇게 무의미한 교육을 받으며 평생 이 전공이 내게 맞는 건가 고민했다.
어찌어찌 방송국에 힘들게 취업했다.
그래. 인정한다. 방송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일은 내게 재밌었다. 입사 후 약 일 년간은 여기서 최초 여자 국장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고.
하지만 직장은 일이 재밌다고 다 좋은 곳이 아니다. 사람이 문제였지.
똥 군기 서열 문화, 나이 어린 사람에게만 희생을 강요하고 정치질만 해대는 선배들.
그런 회사에 미련이 남을 리가.
회사에 마음이 떠나니까.
노사 화합을 한다는 모임도, 부서 회식도.
다 귀찮아졌다.
아무리 돈 벌기 위해 다닌다고 하지만, 회사에서 단 한 번도 웃지 못하는 내가 스스로도 이상하게 보이더라.
물론 100% 마음에 드는 회사가 어디 있겠나.
돈 벌기는 원래 힘든 거다.
그래도 10년 이상 한 분야에서 일하고,
이제야 이건 내 일이 아니다 판단 짓고 박차고 나온 내 행동에 지금은 만족한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나서 찝찝한 기분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정말 힘겹게 돌아 돌아서 무언가 해보고 싶은 걸 찾은 날, 있는 그대로 그냥 응원해주면 안 될까?
적어도 나는 그런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싶었다.
물론 걱정되시겠지.
혹 내가 자신들에게 돈으로 손 벌리는 게 두려우실 거야.
(남은 재산 남동생 다 몰아줘야 하는데 말이지.)
퇴사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용기가 부족해 마음먹기까지 10년 이상이 걸렸다.
아무 일도 안 하고 2년은 모은 저축으로 버틸 만하겠다는 계산 후 사표를 쓰고 나와 백수가 되었다.
2년 후에는….
나도 잘 모르겠다. 뭘 하고 살고 있을지.
인생에서 확신할 수 있는 건 없다.
당장 내일 사고사로 죽을 수도 있는 인생.
나는 이제 어른이고 내 행동에 책임질 줄 아는 나이다.
직장에 계속 다녔다면 1년 뒤, 5년 뒤 내 모습이 그려본다. 거기엔 내 웃음과 행복이 없었다.
그래서 퇴사했다. 다른 일을 해보려고.
아마 이런 내 모습이 부모님의 머리에는 끝까지 이해되지 않으실 거다.
이럴 때 보면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는 시어머니란 존재가 내겐 더 부모라는 존재에 가까우신 분 같기도 하다.
적어도 시어머니께서는 내 퇴사를 응원이라도 해 주셨거든.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응원이 참 감사했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두렵다. 그냥 이번 추석은 친정 방문을 패스할까.
오늘도 고민한다.
뭐가 더 내게 좋은 선택이었는지.
2년 뒤 난 어떤 생각을 하고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