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월급도
추석 주간이다.
이번 추석은 나에게 굉장한 각오가 필요했다.
왜 퇴사했냐는 부모님 잔소리 쓰나미에 내 정신건강이 휩쓸려 가지 않도록 붙잡을 수 있는 용기.
그래, 그것이 필요하다.
방송국에서 일할 때.
부조정실 제작 기술 파트에서 일했던 나는
10년을 내리 설, 추석에 일했다.
주6일 근무로 토, 일요일에도 일했으니 당연히 명절에도 못 쉴 수밖에.
솔직히 말하면 그땐 직장 핑계를 대고 친인척, 본가를 방문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오랜만에 본 조카에게 조금 더 건설적이고 좋은 이야기는 해줄 수 없었던 걸까.
다들 결혼은 언제 할래, 너 그렇게 일해서 연봉은 얼마나 되냐 등의 날이 곤두선 말로 날 찌르셨다.
친척들의 걱정 어린 조언은 들을 때마다 날 헷갈리게 했다.
그나마 근무를 핑계로 모임에 빠질 땐 안 들어서 좋았는데.
그리고 이번 추석.
일이 없는 나는 모임에 빠질 수 없게 되었다.
‘원고 밀렸다는 핑계를 대고 가지 말아 버릴까.’
정말 진심으로 고민했다.
원고가 살짝 밀려있는 건 사실이기도 했고.
(이 글을 나와 계약한 담당자님이 보시면 안 될 터인데.)
과거의 나는 무슨 자신감으로 180화 완결 분량을 10월 중순까지 드린다고 장담했었나.
안 그래도 불안 불안한 상태인데.
여기에 부모님과 친인척의 타박까지 더해진다면.
한동안 슬럼프가 오는 것은 아닐지.
얼마 전, 결혼한다는 후배의 말에 오랜만에 외출했다.
퇴근 시간이라 거리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손엔 벌써 양손 가득 추석 선물 세트가 있었다.
명절이라고 통장으로 쏘아지는 상여금보다,
고작 몇만 원짜리 스팸 선물 세트나 식용유, 치약 등의 물건이 더 기분 좋았다.
선물 세트를 받을 때야 비로소 명절이 다가왔구나! 체감했다고나 할까.
‘이제는 직장을 관뒀으니 저런 건 못 받겠네.’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 한구석이 조금 텅 빈 느낌이 들었다.
나만 어딘가 소속되지 못했다는 패배감. 아니 이질감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필요 없는 선물 세트를 내 돈 주고 사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내가 빠져도 여전히 잘 굴러가는 전 직장과 이 세상에 느끼는 묘한 배신감.
그 기분이 낯설었다.
사과도 밤도 배도.
각자 익는 시간이 다르고 수확할 시기도 다른 품종들이다.
그런 작물을 이기적인 인간들은 추석이 다가온다는 이유로 서둘러 수확해버리곤 한다.
굳이 남들 사는 것에 맞춰 따라갈 필요가 있을까?
내 행동을 정당화하려 하는 자기 위안이라 치부해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라도 나는 표현하고 싶었다.
“내가 어떤 오답을 선택했든, 내가 택한 것이 그때의 나에겐 정답이었다고.”
그러니 내 퇴사로 아쉬운 건 고작 명절 선물 세트뿐이라고 생각해버리자.
자기 위안 좀 하면 어때?
그걸로 내 마음이 편안해지면 된 것을.
이렇게 생각한 게 바로 엊그제였는데.
내 생각을 비웃듯 출판사 분들께서 내게 추석 선물을 보내주셨다.
출판사 직원분들은 선물 고르는 센스도 다르구나.
흔하디흔한 식용유, 스팸 선물 세트가 아니었다.
‘이 선물만큼 내 작품이 팔리지 못하면 어쩌나.’
선물을 보자마자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각오도 했다.
앞으로 난, 출판사에서 계속 설 선물, 추석 선물을 받는 작가가 될 테야.
그러려면 꾸준히 계약하고 작품을 집필해야만 한다.
미래의 나, 놀지 말고 키보드를 두들겨라!
명절 선물 세트를 목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