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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Jun 23. 2023

유월의 표정

앙(仰) 이목구심서Ⅱ-4

유월의 표정


  반도의 유월은 초록의 바다입니다.

유니폼을 맞춰 입은 것처럼 마당서부터 먼 산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물결니다.

산과 들과 강 경주하듯 푸르게, 푸르게 몸덧칠합니다.

초록은 공룡의 애벌레가 되어  몸을 불리고 키워가며 허공의 영토를 갉아먹습니다.

충만하던 허공의 허리는 가늘어지고 지워져 갑니다.

세상은 초록과 초록 아닌 것으로 구별됩니다.


  초록은 쏟아지는 햇볕의 식탁에서 왕성하게 음식을 하고 키를 키워갑니다.

태양이 뜨거울수록 그 열기를 붙잡아 푸른 그림자를 생산해 냅니다.

근육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며 잎사귀마다 왕(王) 자를 새깁니다.

 돌아보지 않고 거침없이 나아가는 초록은 막힘이 없습니다.

바위가 있거나 가시덤불이 앞을 막아도 타 넘어가면 그만입니다.

오히려 장애물을 뒤덮어 압도해 버립니다.


  초록은 성장해야 할 계절이 아직도 남아있는 미완상태입니다.

시간은 아직 여유롭지만 저돌적으로 휘몰아치는 초록의 폭풍은 곧 세상을 점령할 듯합니다.

그러나 얼마후면 알게 되겠지요.

거침없이 성장하던 초록은 '푸른 별'의 섭리를 알게 되고 열매에 집중할 것입니다.

몸의 성장을 멈추고 내면을 다지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한 양동이의 그림자를 마당에 엎질러 놓은 감나무 아래에 서 있습니다.

바닥에 쏟아진 나무의 그림자는 이파리를 닮아 푸르릅니다.

세상의 나무 아래가 시원한 것은 이 그림자 때문입니다.

초록 그늘은 나무 아래를 지나는 남풍잔잔하게 일렁입니다.

이 파도 위에 올라 잠시 리듬을 타봅니다.

유월의 마당에서 감나무 그늘은 유일한 피난처이자 놀이터입니다.


  그늘에서 벗어나 먼 곳에 시선을 던집니다.

초록, 초록, 초록, 초록, 사방이 하나의 동작입니다.

어느새 꿈틀거리는 초록의 등에 올라타 어디론가 가고 있습니다.

거대한 바다의 파도 위에 누워 느릿느릿 흐르고 있습니다.

일부러 발을 헛디뎌서라도 빠져들어 아예 초록이 되고 싶다 생각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풍광의 팔 할이 초록입니다.

인간의 흔적이라곤 몇 채의 집과 도로, 관리가 잘 정갈한 밭 정도입니다.

이곳에서는 초록을 입고 있는 나무와 풀이 주인입니다.

이들은 마을을 압도하여 사람은 주변이며 객체이며 소수에 불과합.

이 세상은 사람이 아닌 초록의 지구입니다.

나는 단지 거기에 기대어 살아가며 먹고 자고 입습니다.


   유월은 초록의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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