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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Jun 28. 2023

비가 내리고

앙(仰) 이목구심서Ⅱ-5

비가 내리고


이틀 전부터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쏴아아, 쏴아아---'

쉴 새 없이 내리는 장맛비는 촘촘하게 쏟아져내리는 구름의 조각들입니다.

하늘의 구름은 깊이를 알 수 없이 두껍고, 낱장씩 무너지며 쪼개어집니다.

나무와 도로와 마을이 구름의 파편흠뻑 젖어갑니다.


나무는 잔치집입니다.

초록의 이파리들이 춤을 춥니다.

손님인 비를 맞이하는 환영의 몸짓이지요.

나뭇잎은 허리를 곧게 펴고 몸엔 윤기가 흘러 번들거립니다.

비트의 홍수 속에 몸을 맡기는 청춘들처럼 반복된 동작으로 잎을 흔듭니다.

흥얼거리는 노랫가락이 금방이라도 나무 사이에서 새어 나올 것 같습니다.

가지 끝의 연둣빛 우듬지가 방울을 머금어 갓 샤워하고 나온 막둥이처럼 싱그럽습니다.


비가 내리면 나무와 은 활기를 되찾습니다.

비는 나무의 음식입니다.

나무의 혈관을 타고 흐르던 붉은 피입니다.

내리는 비는 모두 나무 안에 머물던 한 이었지요.

나무의 중심에서 다시 뜨겁게 흐르고자 멀리서 찾아온 것입니다.

바다는 또 어떤가요.

바닷물 또한 한때 나무의 피였습니다.

나무가 그러모은 물방울이 한 군데로 모여들어 호수가 되고 바다가 되었습니다.


비는 나무의 어머니입니다.

비의 젖을 빨아 근육을 만들고 살을 찌운 나무입니다.

그렇기에 나무는 몸을 흔들며 크게 반깁니다.

얼굴에 웃음이 피고 환해집니다.

지금 들리지 않나요.

"쏴아아, 쏴아아---"

비가 나무를 만나 내는 소리입니다.

나무가 온몸의 문열고 비를 환영하는 몸짓입니다.

빗소리는 사실 웃음입니다.

나무와 비가 만나 함께 지어내는 웃음소리입니다.


가만히 빗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그들의 웃음에 끼어들지 않고 차분히 앉아 들어봅니다.

소리에 깃든 깨끗한 다독임에 편안해집니다.

웃음 속에서 경쾌한 발걸음이 보입니다.

비가 연주하는 리듬에 마음을 실어봅니다.

하늘아래 만물이 소리에 젖듯 마음도 촉촉하게 젖어들기를 바랍니다.

물기 어린 마음으로 당신과 그를 바라보고 싶습니다.


잠시 비가 그쳤습니다.

검은 구름사이로 밝은 하늘이 얼굴을 내밀자 주위가 환해집니다.

비가 먹이를 주어 살리는 것은 나무만이 아닙니다.

어느새 살찐 강이 배밀이를 하는 거대한 용처럼 꾸부렁거리며 남쪽 바다로 가고 있습니다.

나무밑 이끼도 일제히 푸른 함성을 지르고 있고요.

2층 건물의 커피색 지붕이 선명해 몸집이 더 커 보입니다.

나는 비가 던져주는 소리들을 받아먹느라 두근두근 부풀어오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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