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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Jul 13. 2023

지휘는 누가하나

앙(仰) 이목구심서Ⅱ-6


대지에 스며들지 못하고 도망치듯 흘러내리는 강물이 등 뒤에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떠나는 강물의 길고 긴 행군이다.


바람이 숲의 광장에 들어가 일으키는 작은 소란에

나무의 가녀린 몸이 비틀거린다.

이 움직임은 리듬을 타는 춤처럼 규칙적이다.

가본 적 없던 허공을 한순간 차지했다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오기를 되풀이한다.

흔들림은 율동에 가깝다.

바람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본능처럼 원래의 자리를 잊지 않는다.


나무는 항상 그 자리에 있기에 듬직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기 자리를 알고  '우뚝' 서 있기란 쉽지 않다.

걸어가는 출퇴근 길에 항상 마주하는 상수리나무 한 그루가 있다.

하루가 시작되는 길목에서 나무에 눈길을 주고 인사를 한다. 서로의 아침이 밝아오고 있으니 우리 잘 버티며 살아보자고 다짐한다.

어둑어둑한 퇴근길에서도 그를 만난다.

오늘 하루를 지키느라 수고했다고 서로를 위로한다.

때때로 어디론가 떠나고 싶겠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주는 나무가 고맙다.

숱한 소외와 시련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보며 나는 걸어갈 힘을 얻는다.

말없이 위로를 받는다.

나무가 거기 있으니 나는 여기에 있다.

 고독을 보며 침묵하는 법을 알아간다.

때가 되어 잎이 나고 열매를 맺으니 인내와 기다림을 배운다.

흔들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흔들려야 이 유연해지고 건강해진다고 말한다.

죽은 가지는 흔들리지 않고 결국은 부러지고 만다.


정자나무 안에서 매미가 노래한다.

암컷을 부르는 소리다.

한 마리가 우는 데도 나무와 산이 떠들썩하다.

이렇게 큰 소리는 매미 혼자만의 울음이 분명 아니다. 나무가 함께 노래하는 것이다.

매미가 노래를 시작하면 나무도 가만히 있지 않고 무성한 잎사귀를 동원하여 거들어준다.

소리를 모으고 풍선처럼 부풀린다.

세레나데인 들의 노래는 멀리 계곡을 넘는다.

나무는 그래서 노련한 중매쟁이다.

대부분의 숫매미는 나무의 도움으로 짝을 만난다.


격정적으로 몸을 쓰던 장마가 잠시 가쁜 숨을 돌리는 사이에 강변에 섰다.

울울창창한 산이 앞에 있고, 나무를 희롱하는 가벼운 바람이 수시로 찾아들고, 풀벌레들은 눈을 감고 술래가 되어 서로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요즘 과한 식사로 몸이 붇고 배가 커진 경호강은 토하듯 강물을 쏟아내고, 이를 지켜보던 하늘은 얼굴을 찌푸리며 눈을 감아버린다.


대자연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거대하게 균형 잡힌 리듬 속에서 수레바퀴가 굴러가고 있음을 느낀다.

구르는 바퀴인 자연은 오케스트라 연주 중이다.

결코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악보를 보며 세대를 이어가면서 연주하는 음악이다.

선율의 고저가 있고 다양한 악기가 참여하여 연주하기에 지루하지 않다.

자연이 연주하는 음악은 모두에게 들리지만 리듬을 타고 흥을 아이는 많지 다.

고요함과 섬세함을 아는 이들이 누리는 풍요로움이다.

특별히 밤하늘 아래에서는 오케스트라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런 날의 하늘엔 온갖 별들이 모여들어 눈을 반짝이며 연주에 집중한다.

마다 지휘자가 궁금해진다.

수많은 연주자의 콜라보에도 전혀 귀에 거슬리지 않는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에 마에스트로의 위대한 팔을 생각한다.

일지도, 바람일지도, 별일지도ᆢ

아니면 당신인가?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자연의 음악을 보고 듣는 나는 산만하고 어리숙한 관객일 뿐이다.

제멋대로 느끼고 판단하며 오늘이라는 터널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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