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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Sep 12. 2023

나무를 보며

앙(仰) 이목구심서Ⅱ-14

점심시간이 되어 직원식당에 왔다.

동그란 접시에 밥과 김치와 몇 가지 반찬을 올려놓았다.

국은 따로 떠 식탁에 앉는다.

네모난 창밖으로 리모델 중인 의료사협 건물이 보이고 벚나무가 여럿 서 있다.

바람에 나무 이파리가 이따금씩 손을 흔든다.

을 한 술 떠 입에 넣고 나무를 본다.

며칠 전에 입술 안쪽을 깨물어 상처가 생겼다.

음식이 들어갈 때마다 따끔거려 저작이 영 불편하다.

씹을 때마다 신경이 쓰여 일부러 창 밖의 나무를 바라본다.


영장류라는 우리 인간은 힘든 노동을 해야만 음식을 입에 넣을 수 있다.

곡식을 땅에 뿌려 가꾸고 수확을 한다.

덫을 만들고 활을 쏘아 고기를 얻는다.

강을 막고 땅을 파 집을 짓는다.

더구나 나름대로 살아가던 생명을 희생시켜 그것으로 우리 몸을 지탱하고 성장케 한다.

존재 자체가 생각할수록 폭력적이다.

밥 한 수저를 입에 넣기 위해, 빵 한 조각을 삼키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수고와 희생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러나 저 나무는 어떤가.

나무는 덫이나 칼을 만들지 않는다.

나무는 땀 흘려 뛰지 않는다.

나무는 고등어나 어린 소의 삶을 빼앗지 않는다.

나무는 햇볕과 물을 먹이로 삼는다.

나무는 본성상 폭력을 싫어하는 평화주의 자다.

봄여름가을겨울 내리쬐는 햇살을 몸 안에서 화시켜 스스로를 살찌운다.

수십 미터로 키를 키우고, 몇 아름드리로 허리를 늘린다.

꽃과 열매는 얼마나 탐스럽고 향기로운가.


공짜로 주어지는 햇볕을 인간은 직접 먹이로 삼지 못한다.

그러나 나무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다.

나무는 걸어 다니거나 힘들게 노동하지 않아도, 이웃의 생명을 빼앗지 않아도 되었다.


나무는 우리보다 차원이 높은 존재다.

먹이사슬의 정점에 인간이 자리 잡고 있지만, 나무는 부드럽게 뿌리내리고 세를 넓혀가 대부분의 땅을 점령하고 있다.

나무는 진화의 섭취 측면에서 영장류보다 더 발달하였다.

들여 가공하지 않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이용하여 먹고 살아가니 말이다.

이처럼 나무는 가장 자연적이며 친지구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땅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당연히 나무들이다.

개체수에서도 이미 월등히 앞서있다.

지구에게 나무는 꼭 필요한 존재 되었다.


우리가 광합성을 할 수는 없겠지만 나무처럼 서로에게 든든한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 끼 점심을 위해 말없밥과 반찬이 되어준 생명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는 없는가.


입 안의 통증이 물을 마시는 나를 여전히 꾸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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