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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Nov 04. 2023

호수에 잠긴 가을

앙(仰) 이목구심서Ⅱ-20

호수에 잠긴 가을


수선사에 들렀다가 내리 저수지를 찾았다.

지난 여름보다는 야윈 몸으로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다.

수선사 작은 경내에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불경을 염송 하는 오디오 소리가 이리저리 부딪혀 다소 소란스러웠다.

호수는 고요하다.

솜털을 간질이는 미풍에 호수는 아주 잠깐 미소 지을 뿐이다.

오히려 아늑하고 평화롭기로는 절간보다 더하다.

그래서 아름다운 절로 입소문 난 관광지보다는 인적 드문 이곳을 찾게 된 것이리라.


호수 뒤로는 호위무사처럼 산이 버티고 서있다.

웅석봉의 날 선 능선들이 머리빗처럼 양쪽으로 갈라졌다.

뻗어 나온 골 하나하나마다 상처 입어 피 흘리는 듯한 거대한 단풍 무리를 본다.

가을산은 한 묶음의 꽃다발이다.

 

호수 안에도 산이 있다.

물속에 우뚝 솟아 어가는 산이 있다.

똑같은 색깔과 질감으로 호수를 가득 채운다.

수중 산의 계곡을 잉어 하나가 한가로이 넘나 든다.

아마도 이웃인 토끼며 고라니를 찾아 나선 길이겠다.


가끔 일렁이는 물결에 산이 둥둥 떠 있다는 착각을 한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녹색 범선에 올라앉아 있다.

다행히 호숫가의 메타스퀘어가 송곳처럼 수면에 박혀 바람 따라 흘러갈 것만 같은 산을 붙잡는다.


호수는 말이 느리다.

가을을 앓고 있는가 보다.

구름 없는 하늘을 받아 안고 천천히 삼키는 중이다.

떨어지는 나뭇잎을 편지처럼 받아들고서 하나씩 읽어가는 중이다.

호수에 뛰어든 산이 더는 가라앉지 않도록 붙들고 있다.

가을을 해석하는 중이다.

가을을 해독하기 위해 호수는 누웠다.

나는 이 계절을 가만히 엿보거나 엿듣는 것이 전부인 게으름을 피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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