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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Oct 22. 2023

다대포의 파도는

앙(仰) 이목구심서Ⅱ-19

부산 다대포에 왔다.

막내 대입 실기시험이 있어 인근 대학에 왔던 길이다.

네 시간 동안 시험이 치러지니 이 시간이 내게 온전히 주어졌다.

그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다대포에  것이다.

바닷가엔 꽤 많은 사람들이 요즘 유행을 따라 맨발로 거닌다.

남자아이들 몇은 바다에 무릎을 담그며 신나 있다.


해변에 첫발을 내딛는 데 가장 먼저 모래사장이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운동장의 육상트랙 같은 해변가에 은빛 미숫가루가 두껍게 쌓여 있다.

아니 그보다 더 가는 입자들이 발밑으로 부옇게 날리고 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느낌은 두부 위를 걷는 것처럼 부드러워 부서질까 조심스럽다.


해변 바닥을 기는 용의 비늘처럼 줄무늬가 나있다.

이는 파도가 남겨둔 지문이다.

고향집처럼 다음번에 찾아오려고 표시해 둔 바다의 발자국이다.

발아래에선 모래알갱이가 무리 지어 피어오르다가

파충류처럼 꼬리를 꿈틀거리며 해변을 서성거린다.

어느새 운동화 안에서 도마뱀처럼 서그럭서그럭 몸을 뒤척인다.


쉴 새 없이 거품을 일으키며 밀려오던 파도가 조금씩 물러나고 있다.

간조시간이다.

파도가 어쩌면 바다의 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충분히 먹어 배부른 바다가 이젠 입을 떼고 잠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바다는 그동안 어떻게 살아온 걸까.

바다는 대륙에서 뻗어 나온 한반도 앞에 엎드려 이 땅의 젖을 빨며 살아왔다.

바다가 푸르른 몸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맑은 호흡으로 마시고 뱉어내는 것도,

그 품 안에서 건강한 조개며 갈치며 고래를 키우는 것도,

기름진 우리의 땅이 있기 때문이다.

수천억 번을 지침 없이 반복해 온 파도의 저작은 내일도, 모래도 계속되어 언제까지나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그래서 파도는 바다의 연하작용이며 호흡이다.


또한 육지를 쓰다듬는 바다의 손길이다.

파헤쳐지고 짓밟혀도 말없이 순응해 온 땅에게 주는 다정한 위로다.

끊임없는 손짓이다.

그래서 대지 위에 더불어 사는 우리도 알 수 없는 위로를 파도로부터 받는 것이다.

파도는 우리의 굴곡진 마음을 고요히 다스려주는 성전이다.

흐린 얼굴을 깨끗이 닦아주는 가제수건이다.

풀어헤친 옷가지를 다소곳이 여미는, 소란함에 끼어든  고요다.

바다는 그래서 파도에 물결치지만 저 수평선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그 많던 구름은 다 어디로?

지금도 여전히 포말을 일으키며 파도가 다가온다.

뒤이어 어깨동무하며 달려오는 너울들.


다대포의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다.

한꺼번에 바다로 내려와 흰 포말되었나 보.

세상을 살맛 나게 하는 소금으로 고여 들고 있나 보다.

그리고는 다대포의 젖을 힘차게 빨아가며 제 몸을 키우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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