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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Feb 25. 2024

냉이를 캐다

앙(仰) 이목구심서Ⅱ-27

냉이*를 캐다



퇴근하자마자 텃밭에 간다.

발걸음에 묻어온 저녁이 따라왔으나 아직은

땅거미가 기어 다니기엔 이르다.


한쪽엔 시금치를 심었고 대부분은 노는 밭이다.

쉬거나 놀거나 빈 땅이라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빈 밭은 생명의 기운으로 더더욱 치열하다.

다양한 삶의 광장이다.

사람이 아닌 자연이 손수 경작하는 밭이다.

이곳에 냉이가 자라고 있다.


식탁메뉴에 며칠 전부터 냉이를 생각했다.

봄이 오기 전, 조석으로 서릿발이 서는 요즘이 가장 좋은 때이리라.


땅바닥에 바짝 엎드린 냉이를 본다.

이런 처세술로 한 겨울에도 살아남았다.

방사형 이파리가 단풍 마냥 붉다.

물론 이는 상처일 수도 다.

강바람의 매운 손엔 한 번의 스침에도 이 얼얼해진다.

기나긴 계절을 맨몸으로 부딪쳐 왔다.

삼한기가 그대로 몸에 각인되었다.

그래서 냉이의 몸은 붉다.

그리하여 모든 고독은 붉다.


한편, 붉음은 추위에 저항하는 적극적인 의지의 발현이다.

삶에 대한 애정이고 다짐이다.

안으로 고인 인내와 덕의 외투이리라.


겨울이면 나무와 풀은 몸 안에서 보일러를 가동한다.

빙점 아래로 내려가는 극한의 계절에는 체온을 사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쉬지 않고 온몸을 데운다.

더워진 몸은 붉은 혈색을 겨우내 유지한다.

언제나 초목은 따뜻하다.


호미로 냉이를 캔다.

두부모같은 땅은 냉이를 뿌리 끝까지 토해낸다.

흙냄새와 함께 냉이의 상큼한 향이 피어오른다.

기분이 좋아져 작업이 아닌 놀이가 된다.

직장에서도 업무가 이렇게 신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둠에 잠들었던 새하얀 뿌리가 공중에 들어 올려질 때마다 낚시처럼 손맛을 느낀다.

'야, 월척이다!'

재미는 시간을 빨아들인다.

금세 바구니에 한 가득이다.

캐고 싶은 냉이들이 눈에 들어와 마구 박혔으나 멈추었다.

게임기의 마우스 같던 호미를 내려놓는다.

어둠이 발목까지 차올라 밭을 모서리부터 지우고 있다.


맨몸으로 겨울을 나고 있는 냉이의 살림살이는 나보다 치열하다.

힘이 세다.

냉이에게 경의를 보낸다.






* 냉이는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한 알칼리성 식물이다. 비타민 A, B1, C가 풍부해 원기를 돋우고, 피로 회복 및 춘곤증에 좋다. 칼슘, 칼륨, 인, 철 등 무기질 성분도 다양한데, 지혈과 산후출혈 등에 처방하는 약재로 사용되며, 간과 눈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냉이를 ‘국을 끓여 먹으면 피를 간에 운반해 주고, 눈을 맑게 해 준다’고 기록하고 있다. 잎에는 베타카로틴이 다량 함유되어 있으며, 뿌리에는 알싸한 향의 콜린 성분이 들어있어서 간경화, 간염 등 간 질환 예방에 도움을 준다. 거칠어진 피부 개선과 여드름 예방에도 도움을 주며, 생리불순을 비롯한 각종 부인병 완화에 효과가 있다.(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발췌함)

냉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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