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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Dec 13. 2024

사랑하는 대한민국

앙(仰) 이목구심서Ⅲ -10


어젯밤 대한민국이 크나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당신은 군홧발에 짓밟히고 깨지고 더럽혀졌습니다.

아아, 대한민국이여!

나는 그런 당신을 화면으로 그저 바라봅니다.

당신은 입을 열지 않습니다.

모든 수모와 공포와 아픔을 참으며 다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발길질하는 이들이, 침을 뱉는 이들이 당신의 아들들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치솟는 분노와 치욕으로 어찌할 바 몰라 화면에 대고 욕을 했습니다.

이곳 지리산 자락은 당신의 굴욕을 막아보기엔 지리적으로 멀기만 합니다.


전국의 산하가 비상계엄령에 감금당했습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허공이 갇혀버렸기에 가슴이 갑갑해져 옵니다.

숨쉬기가 어려워 의식적으로 심호흡을 하곤 합니다.


아- 사랑하는 대한민국이여,

누구입니까?

누가 이토록 당신을 부끄럽게 하나요?

어느 누가 이토록 당신을 위험한 벼랑 끝으로 밀어대는지요?

당신을 어느 누가 마음대로 흔들고 할퀴고 쓰러뜨리라 했습니까?

도대체 왜 그래야 합니까?

누가 허락이나 했다는 말인가요?

그런데 왜 당신은 바보처럼 침묵하십니까?


12월 3일 밤,

대통령은 내게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그날 이후 제 마음은 혼란과 불안에 빠졌습니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확실함으로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급류에 휩쓸려버린 평정심의 수위는 급속도로 기울어지고 저의 심장은 거칠게 뛰었습니다.

입 밖으로는 흙탕물이 넘쳐흐르듯 육두문자가 뛰쳐나옵니다.

이런 나를 억누르고 다스리느라 이를 악물고 입을 꾹 닫아야 했습니다.


대통령은 메마른 들판에 불을 질렀습니다.

열흘이 지난 지금도 불은 꺼질 줄 모르고 타고 있습니다.

겨울 들판에 작은 싹을 어렵게 밀어 올리던, 감성의 푸른 잎들이 말라가고 있습니다.

평범, 일상이라는 열매가 연기에 휩싸여 보이지 않습니다.

불의 속성이 일면 폭력적이며 호전적이어서 흔적도 없이 주위를 삼켜버리듯 계엄의 불길은 나를 태우고 있습니다.

속에선 꺼지지 않는 장작불이 끓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외부의 자극에도 훅훅, 불기운이 사나운 얼굴을 드러내곤 합니다.

온 정신이 여기에 집중되어 있어 대부분의 시간을 비하고 있습니다.


텃밭에 올라오는 어린 시금치와 마늘 이파리를 순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마당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한낮의 햇볕에 차마 행복하다 말하지 못합니다.

이들 소중한 존재에 주목할 여유가 사라지고 답답한 무언가에 한숨만 뱉어내며 먼 허공만을 바라봅니다.


계엄의 시간 동안 공기는 탁해졌고 사각의 나의 방이 갑갑해져 왔습니다.

올무에 걸린 자유는 숨이 막힙니다.

어둠에 잠긴 세상은 그대로 멈춰 섰고 얼어붙었습니다.


12월 14일, 이 불길이 일거에 거되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삶을 태우고 갉아먹는 계엄의 망령이 사라지길 기도합니다.


다시 사랑하는 대한민국이여,

지금 아픕니다.

우리  모두 아픕니다.

부디 아프지 마시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당신과 이 아픔을 함께 합니다.


병상에서 일어선 당신은 더욱 강건하게 우뚝 설 것입니다.

당신과 우리, 서로를 보며 미소 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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