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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May 16. 2023

시간(詩間) 있으세요?

내 삶의 구조물

#내 의 구조물


1
 자 남짓 대지 위에 주춧돌을  뼈로 기둥을 세웠다
질기지도 강하지도 않은 의식의 피부를 벽돌처럼 허공에 쌓아 올렸다
위선과 나약함으로 버무린 신앙과 도덕을 얼기설기 지붕에 올렸고 자주 방종함과  일탈의 아궁이에 연기를 지피기도 하였다


2
나의 삶은 죽음의 대지 위에 서 있다
죽음은 태생적으로 삶을 먹고 산다
매일의 삶은 오늘을 번제물로 삼는다
무수히 죽어 묻힌 오늘이라는 묘지들
헤아릴 수 없이 많아 비문조차 지워진 과거를 본다

죽음으로만 죽음은 소멸한다


3
나란 존재는 내 것 아니다
거칠고 단단한 살들은 다른 이의
뼈는 다른 이의 뼈가 아닌가
삶은 철저히 죽음 위에 서 있다
저녁 식탁을 보라
어느 날은 닭, 어느 날은 고등어, 상추, 마늘
날마다 배추가 식탁 위에 있다
들이 내 살이요 뼈다
이들 희생으로 존재의 집이  있지 않은가
난 매일 죽음을 먹고
살아가기 위해 누군가의 죽음이 필요하다
존재하는 생명은 모두 먹이


4
나의 옷은 누구의 삶이던가
나의 의자는 누구의 뼈이던가
나의 머리카락은 누구의 털이던가
나의 의식은 누구의 말이던가
나의 심장의 박동은 누구의 호흡인가
나의 존재는 어느 누구의 현현인가
모두 타인의 것이다
타인이라는 조각들을 모아들여 맞추어가는 퍼즐처럼 나는 결합된 존재
나의 입은 블랙홀처럼 조각들을 빨아들인다

이 끝없는 식욕
만족을 잊은 끝없는 탐욕
이것이 내 삶의 역사
의 진보


5
삶이 타인의 죽음이므로
죽음으로 사는 삶이므로
목숨 값은 하며 살아야 하지
멸치와 돼지의 삶
그들보다, 그들만큼 만이라도
사랑하며 살아가야
죄 없이 살아가야
나를 만든 이들이여
나를 만들어갈 존재들이여
고맙고 고맙
지금은 나의 밖에 있는 모든 나여
부디 천천히 오시라

더디 더디 헤찰하며 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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