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가족여행을 다녀오다
아주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얼마 전 남편이 가평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출장 겸 여행겸 다 같이 가면 어떠냐는 말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을 갑자기 실현하게 된 것이다. 갑자기 준비하게 된 것도 있고 1박 2일에 짧은 평일 여행이라 숙소만 정해두고 이동 거리 안에서 갈만한 곳 몇 군데를 가보자는 계획으로 집을 나섰다. “우리 얼마 만에 가는 가족 여행이지?” 가평으로 가는 차 안에서 문득 질문을 던져 보았는데 다들 명확하게 답하지 못했다. 지난겨울 갔던 강원도는 엄마랑만 갔고, 그전에는 친구네, 그전에는 가족 모임, 그전에는 엄마랑 아빠만, 그전에는 이음이 우리만, 그전에 갔던 것도 (또)엄마랑만 갔던 거 같은데, 다섯 식구기 모두 함께 여행을 떠났던 것은 몇 해 전 강원도에 갔던 거 아닌가 기억이 가물가물 했다.
그러나 저러나 아이들은 달리는 차 안에서 지금 학교에서 친구들은 뭘 하고 있을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며 모두가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러 가는 시간에 우리는 놀러 가는 이 상황에 신나 했다. 출발과 동시에 막내 ‘우리’는 얼마 전 마을에서 율동할 때 들었던 주제가 ‘질풍가도’를 오늘도 수십 번 이어 부르고, 오늘로 누적 100번 이상 부른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은 이제 개사까지 해가며(가장 기억에 남는 가사는 ‘엄마는 축구 잘해, 아빠는 너무 바빠’) 흥을 돋구었다.
아이들이 흥을 돋구는 사이 나는 조수석에 앉아 점심으로 먹을 식당과 가평에서 남편이 일을 보는 사이 우리가 있을 곳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야심 차게 찾아 두었던 두부집(티비 프로그램 콩콩팥팥에 나왔던 맛집)을 가는 계획이 언제나 그랬듯 출발 시간을 지키지 못해 불발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언제나 무리하지 않고 힘 빼는 여행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재빨리 포기하고 다음을 준비했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두부집 전에 포기한 것이 한 가지 더 있었는데 그것은 멋진 건물의 카페였다. 우선 카페에는 한 번쯤 가게 될 것 같은데 이왕이면 집 짓기에 도움이 될법한 멋진 건물을 보고 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가평에 대해 잘 몰랐지만 그저 눈을 흘기며 봐왔던 것들로 상상했을 때, ‘가평은 엠티의 성지이며 도시 사람들이 자주 가는 관광지. 그러므로 엄청나게 멋진 건물의 카페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찾아보니 역시나 으리으리한 건물과 멋진 뷰를 가진 카페들이 더러 있었으나 대부분 아이들과 오래 머물기에 편한 구조가 아니거나, 남편이 일하는 장소와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우리는 남편의 출장 장소 근처 국밥집에서 밥을 먹고 멋진 카페 대신 네 평 남짓한 작은 독립 서점과 이름이 귀여운 가평 군립 ‘한석봉도서관’, 그리고 도서관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거기서 나는 오랜만에 아이들과 나란히 거리를 걷고, 막내 ‘우리’가 사고 싶어 한 ‘백수의 권’이라는 독립출판물을 샀다. 한석봉도서관에 가서 아이들은 우리 동네 도서관에는 없는 who 시리즈 인물을 찾았다며 기뻐하고, 어린이 도서관에 있던 두더지 굴 같은 공간을 보며 ‘나중에 우리 집에도 이런 공간 있었으면 좋겠다’며 즐거워했다. 비록 처음 계획했던 화려한 건물은 아니었지만 어린이와 동물의 출입이 자유로운 카페에서 아이스크림 와플을 먹으며 극찬했고 카페에서 삼 형제가 머리를 맞대고 스파이더맨 점 잇기를 한 시간 넘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만하면 어디든 가볼 만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철저한 준비도, 명확한 주제나 목적도 없는 여행이었지만 소소한 다름에 감탄하며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이런 게 여행의 맛이었지 하는 생각을 오랜만에 했다.
우리 가족은 떠나는 것보다 머무르는 것을 좋아해서 여행을 가더라도 주로 만나고 싶은 사람이나 건물 안에서 구경할 수 있는 것을(주로 전시나 서점, 공연) 찾아다닌다. 그런데 집 짓기를 준비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집을 지을 때 도움이 될만한 장소를 꼭 하나씩 가보게 된다. 지난여름 결혼 후 십몇 년 만에 처음 단 둘이 부부 여행을 떠나게 되었을 때에는 2박 3일 동안 설계도면 그리기와 백화점에서 가구 둘러보기만 하고 왔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도 자연스레 집 짓기에 도움이 될만한 곳을 찾게 되었고, 지도에서 돌아오는 길목에 발견한 이케아를 보고 만세를 외쳤다.
난생처음 가본 이케아는 멀리서 보이는 새파란 외관부터 이목을 끌었다. 들어가서는 화장실부터 다르다며 감탄하고 끝없이 펼쳐지는 미로 같은 내부, 수십 개의 방과 수많은 디자인, 저렴한 가격, 은근슬쩍 장바구니에 넣게 되는 판매 수법 등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목표했던 바와 같이 앞으로 지을 집을 구상하는 것에 여러 가지 영감을 얻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기 방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을 할 수 있게끔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즐거웠다. 그러나 한두 시간 둘러보았더니 이제 하나 둘 이어지는 방들에 디자인이나 가구나 인테리어도 다 거기서 거기 같고 다리도 아프고 눈도 아프고 무엇보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공간에 조금씩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남편에게 “이제 거의 끝나 가는 것 같은데?”라는 말을 하며 붙잡아 둔 것도, 막내 ‘우리’가 들어오는 입구에서 본 인형을 사러 가자고 말하기 시작한 것도 30분이 넘어가는데 우리는 여전히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도 힘들다며 보채기 시작하여서 일단 둘러보는 것을 멈추고 무작정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출구는 아니었지만(나중에 알게 된 진짜 출구는 모든 구역을 지나쳐야만 나온다는 사실에 두 번째로 약이 올랐다) 다행히 중간 지점쯤에 식당과 휴게 공간이 있어서 우리는 녹초가 되어 자리를 잡고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더 둘러봤다가는 집이고 뭐고 짓기도 전에 질려버릴 것 같아서 나와 아이들은 생활품 코너에, 남편은 덜 보고 온 쇼룸을 둘러보기로 하며 부족했던 각자의 욕구를 마저 다 채운 후에야 그곳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은 차에서 모두 골아떨어지고, 이케아 방문은 역시나 무척 고된 여정이었지만 그래도 한 번쯤 필요했던 시간이라는 생각은 든다. 집의 규모나 톤을 어떻게 잡고 갈 것인지, 수많은 방을 보며 우리가 선호하는 취향은 무엇인지 조금은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달까.
그런데 사실 이번 이케아 방문에 가장 큰 수확은 막내 ‘우리’가 늘 부러워하던 ‘형아들처럼 조금 큰 인형’을 사게 된 것이다. ‘우리’ 몸에 반 만한 하얀색 사막여우인데 ‘우리’는 인형을 꼭 끌어안으며 “너무너무 좋아. 사길 잘했어!”라는 말을 출발할 때 불렀던 ‘질풍 가도’를 불렀던 만큼이나 반복해서 말했다. 그러다 집에 돌아와서는 내내 몸에 붙이고 있던 사막여우의 이름을 ‘이케아’라고 지어주고 매우 흡족해했고 거기에 남편은 옆에서 ‘이케아’의 성을 ‘스웨덴 이 씨’로 하자며 거들었다. 너무너무 신이 난 ‘우리’는 여행에서 돌아온 어제도 오늘도 이케아를 끌어안고 하루를 보낸다. 내년에 생길 ‘우리’ 방에는 이케아에서 산 가구들과 인형 이케아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와 이케아는 한 뼘 자랐거나 손때가 묻어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테지만 그때도 지금처럼 이케아를 꼭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이번 여행이의 기억이 모락모락 피어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