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해원
계획에 없던 시즌제를 도입하게 된 것에 대한 정리를 해보려 한다.
1. 변수
가장 큰 변수는 처음 계획 했던 건축 방식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땅을 샀을 때, 집을 짓는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발 벋고 나서 준 친구 부부가 있다. 의심에 여지없이 우리 삶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친구들이었고, 그 친구들이 우리 집을 같이 짓고 싶다고 했을 때 고민할 필요 없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같이 땅을 보러 가고 앞으로 함께 지을 집에 대해 상상하고 기록하고 그렇게 주고받는 모든 것이 그저 행복했고, 자주 벅찼다. 그러나 집을 짓는다는 것은 단순히 관계로만 해결될 수 없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뒤늦게 이웃들의 집을 둘러보며 알게 되었다. 집을 짓는 사람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집을 지은 후 함께 살게 될 이웃들과의 관계, 앞으로의 환경 변화를 생각했을 때 집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 주는 장점, 그것을 해 줄 수 있는 전문가가 지역에 있다는 점, 그리고 재정 지원을 해주시게 된 부모님의 바람 같은 것들. 결국 우리는 처음의 약속을 깨고 지역의 전문가와 새로운 공법의 집을 짓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 실질적으로 진행된 것은 없어서 변화 과정이 복잡하지는 않았지만, 근 몇 달간 쌓아 온 마음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는 것은 몹시 복잡하고 슬펐다. 곧바로 달려갈 수 없어 전화로 소식을 전할 때에는 눈물이 조금 났고, 미루어지는 만남에는 미안함이 쌓여갔다.
집을 만들어 가는 과정도, 관계도 바뀌게 되면서 여러모로 혼란스러웠다. 집 완공 날짜도 반년 가까이 미뤄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연재를 하는 것에 있어서도 당면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매번 새롭게 기획해야 해서 자주 버거웠다. 그로 인한 지각과 마음의 부채감, 나태, 권태, 이상한 형태의 배짱(...) 같은 것들로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축구로 치자면 훈련도 연습도 없이 매번 알 수 없는 상대와의 매치를 준비하는 기분. 이러다간 축구, 아니 글쓰기를 더 이상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서 잠시 멈추어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 그럼에도
계획과 달라지고,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집은 완성될 것이다. 지금도 느리지만 하나 둘 진행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길 내는 것 등의 허가를 받아 정식으로 집을 짓는 것을 승인받았고, 집을 지었을 때 시아를 가릴 계획이던 전봇대를 옮겼다. 남편이 허가를 받고 얼마 안 되어 전봇대 위치를 파악하러 우리 땅에 갔는데 그때는 기분이 확실히 달랐다고 한다. 우리 집이 지어질 땅 한가운데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그제야 마음이 조금 벅찼다고 한다. '우리가 정말 집을 짓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동안 여기까지 오기 위해 열심히 살아온 것 같아서 마음이 울컥했던 모양이다. 내가 처음 '집짓기'로 연재를 시작하게 된 것 역시 비슷한 마음에서였다. 집을 짓는 일은 나와 남편이 연애를 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고, 그것이 하나씩 실현되는 과정을 소중한 사진을 모아 앨범을 만들듯 차곡차곡 쌓아가고 싶다. 그 마음은 처음 그때와 같이 여전히 유효하고,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끝이 아니라 잠시 멈추고 두는 거라 말하고 싶다.
3. 다음에 대해
힘겹게 짜내던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앞으로 있을 일을 상상하며 다음 계획을 하는 것은 즐겁다. 나는 ‘자주 계획하고 자주 좌절하지만 조금씩 나아가는 사람'이라고 브런치 작가 소개란에 써 놓은 자기소개를 좋아한다. 사실 나에게 '계획'이라는 것은 당장 해야 하는 일보다는 '상상하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잦은 계획으로 자주 실패 하고 좌절도 자주 하지만 언제나 다시 다음을 계획하며 히죽댄다. 같은 의미에서 이번 연재도 시즌 1을 마무리하고 시즌 2에는 무엇을 쓰면 좋을까 생각하다 보면 다시 웃음이 난다. 우리가 짓게 될 '패시브 하우스' 공법에 대한 소개도 하고 싶고, 마을 이웃이자 친구이자 아들 친구 아빠인 집짓기 팀에 대한 소개도 하고 싶다. 무엇보다 그때는 눈앞에서 집이 지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을 테니 하고 싶은 말, 남기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4. 다시 돌아가야 할 곳
지난여름 판교에서 브런치북 릴레이 북토크를 할 때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가요?" 그때 나는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지도 얼마 안 됐고,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지만 큰 고민 없이 이런 답을 했다. "계속 쓰는 사람이요." 이 마음 역시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자연스레 다음 연재에 대해 계획한다. 시험공부할 때 평소 잘 읽지도 않던 소설책에 자꾸 눈이 가는 것과 비슷한 청개구리 심보 일지는 모르겠으나 집 짓기에 대한 글을 쓸 때 묘하게 자꾸 다른 주제로 글을 쓰고 싶은 갈증이 있었다. 아침부터 싸우고 학교 가는 차 안에서 다시 낄낄 대는 아이들과 나의 모습, 새로운 축구팀을 만나 힘껏 맞붙고 실컷 얻어맞은 지난 축구 경기, 자꾸만 울게 되는 아이들의 발표회, 소멸해 가는 농촌에 대한 걱정, 그럼에도 이어지는 만남, 결국엔 살아내고 있는 매일의 이야기들. 어떤 주제나 의미보다 매일을 꼬박 살아가고, 살아내기 위해 쓰는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이름을 붙여 보자면 꼬박일기 시즌 2 (작명센스 없음)가 될라나.
5. 계속 쓰기 위해
언젠가 한 친구가 내가 준비 중인 투고 원고를 함께 읽다가 문득 이런 얘기를 했다. “힘들었던 이야기를 써줘.” 정확한 단어가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삶이라는 게 행복하고 즐거운 일 보다 힘들고 팍팍할 때가 많은데, 행복하기만 한 이야기만 보면 어쩐지 마음에 잘 와닿지가 않는다는 그런 의미였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언젠가 또 다른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결론이 해피엔딩이기만 하면 재미없어요.” 그 말에도 깊이 공감했다. 나는 조금 어설프고, 왔다 갔다 하고, 자주 망하면서도 또 낄낄 웃고, 뜬금없이 진지 했다가, 다시 어딘가 허술해지는 그런 사람들의 빈틈 많은 삶을 사랑한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고, 그런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사랑하게 된 삶의 이야기를 계속 써나가고 싶다. 그러니까 꼬박일기 시즌 2 개봉 박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