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a Moon - The Scarlatti Book
글쎼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퓨전이니 융합이니, 결합이라고 부르는 것들 말입니다. 어제 텔레비전에서 자크 루시에에 대한 다큐를 방영하더군요. 저는 2004년에 자크 루시에를 1열에서 들었었기 때문에 아주 관심 있게 봤습니다. 그는 거의 일평생 바흐를 재즈로 연주했지요. 자크 루시에를 기리는 젊은 연주자들이 클래식과 재즈의 경계에 대해서 인터뷰했습니다. 그는 연주자의 마음이 중요하지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크 루시에 음악을 들었냐고요? 아니요. 못돼 처먹은 나는 그를 금세 잊고 아카 문 트리오의 스칼레티북을 들었습니다.
Aka Moon - The Scarlatti Book
자크 루시에 음악이 클래식과 재즈의 결합인가요? 창작곡이 거의 없이 평생 바흐를 연주했기 때문에 어떤 재즈 마니아들은 자크 루시에를 그다지 인정하지 않더군요. 클래식계에서도 가끔 재즈로 편곡한 연주들을 자랑스럽게 선보입니다. 솔직히, 좀 우스웠습니다. 대체 재즈는 무엇이고 클래식은 무엇인지 본인들만의 정의 없이 아주 편파적인 해석으로 열심히 연주하는 클래식적 재즈와 재즈적 클래식은 좀, 많이 웃깁니다.
바흐는, 아무래도 지상을 거쳐간 모든 음악인들의 로망인 듯합니다. 헤비메탈, 팝, 재즈, 클래식, 국악, 중동 음악 등, 모든 음악 장르에서 꼭 한 번씩 바흐를 어쩌고 싶어 합니다. 음악의 아버지 어쩌고를 어쩌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사실 어쩌고 한 결과가 늘 좋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혹평을 받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바흐를 어쩌기엔 지금의 음악은 너무 난잡하게 쪼개져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퓨전이니 융합, 결합이니 하는 것들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예술은 아주 큰 덩어리였다는 걸, 간과하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분야와 장르를 쪼개고, 나누고 해체해 놓고 이제 와서 그걸 다시 섞는 것을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하다니, 좀 웃깁니다. 그냥 원상태로 돌려놓으려는 것뿐, 그것은 더하기도 믹스도 아닌데 말입니다.
어제와 오늘은 가을과 겨울의 경계선이라고 부를만한 날씨였습니다. 갑자기 내리는 비, 급하게 내려오는 쌀쌀함, 이런 기온의 변화를 가지고 흘러가는 날들을 일컬어 간절기를 조심하라, 고 경고하더군요. 계절을 나누는 하늘은 늘 똑같고 비도 하늘에서 내리는 물방울인 것은 변함없는데 자꾸 뭘 나누고 경계를 나눠놓고 이번엔 그 사이를 이으려고 괜한 노동을 합니다. 이게 인간이 하는 짓입니다. 갈기갈기 찢었다가 다시 붙이면서 올레! 환호하는 치사함.
나는 호들갑 떠는 간절기 인사말에 괜히 심사가 뒤틀려 우산을 들고 가지 않았습니다. 비를 좀 맞았고 추웠습니다. 어제 나는 또 엠비티아이 뭐시기로 분류되고 성격과 직업군과 입은 옷과 자주 가는 곳, 식성과 성과 그 밖의 것으로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그리고 나와 몇 번 더 만난 이들이 나를 이것에서 저것의 성질을 섞어 멋대로 새로운 복합적인 인간으로 만듭니다. 나는 내향인이었다가 드물게 외향인이 되고 경우에 따라 둘 다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초록색이었다가 빨간색이었다가 두 개를 섞어 거무튀튀한 노랑을 만듭니다. 어라, 낙엽 색깔이잖아. 역시 가을이야! 이런 두서없는 섞임의 말도 듣습니다. 솔직히 좀, 황당합니다.
세상은 참 갈기갈기 찢어 분류하기를 좋아합니다. 클래식과 재즈를, 팝과 오페라를, 바로크와 고전을, 빨강과 초록을, 네모와 동그라미를, 봄과 가을을, 더위와 추위를, 나와 당신을, 내적인 나의 자아와 사회적인 나를, 연애할 때의 나와 혼자 있을 때의 나를, 일할 때의 나와 놀 때의 나를, 당신을 만날 때의 나와 당신이 아닌 자를 만날 때의 나를.
사람은 점점 잘게 쪼개지고 찢어지다 갑자기 다시 섞입니다. 그리고 섞고 엮이면서 새로운 이름을 붙입니다. 하지만 나는 쪼개지고 찢어지기 전의 나로 불리고 싶습니다. 나는 나이고, 검정이거나 흰색이고 또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바흐 말고 스칼레티는 드물게 연주됩니다. 특히 재즈주자들에게 스칼레티는 쉬운 곡이 아닙니다. 하긴, 바흐가 쉬워서 연주되는 건 아닙니다. 쉽고 어렵고의 문제는 아니고, 스칼레티의 애매모호함, 바흐나 헨델처럼 명료하지 않은 짙고 질겨서 분해되기 어려운 음악의 특성 때문입니다. 엔리코 피에라눈찌가 피아노 솔로로 낸 스칼레티는 황금색 바로크체의 앨범입니다. 그러나 아카 문은 유별나게 굽니다. 늘 락이나 팝, 갖가지 장르를 섞어 쓰는 벨기에 친구들은 좀 다릅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프랄린 초콜릿을 만들 줄 아는 트리오랄까요. 벨기에 초콜릿이 유명해서 이런 비유를 대는 것 맞습니다. 또 프랑스와 독일과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 틈새에 끼여서 이것저것 다 섞였나 싶으면 플랑드르라던지, 그 당시의 정치상황으로 보면 딱히 일관되게 분류되기도 어려운 환경인 것도 한 몫합니다. 초콜릿은 속재료로 여러 가지를 잘 섞어 넣고 그냥 '초콜릿'입니다. 벨기에는 '초콜릿'을 많이 갖고 있어서 대부분 많은 문화예술들도 그렇습니다. 속재료가 다양한 '초콜릿'맛의 재즈.
아카 문의 음악은 짓궂은 데가 있습니다. 그들은 약간의 조롱조의 웃음으로 리듬을 연주한다는 기분이 들게 합니다. 나는 그게 퍽 맘에 듭니다. 지금의 음악으로 스칼레티를 재해석한다느니, 재즈로 편곡하고 변주한다느니, 그런 시건방진 말을 하기보다 스칼레티에게 드럼과 일렉 베이스가 없었을 뿐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진 것처럼 연주합니다. 스칼레티에게 일렉 베이스와 피아노와 드럼과 색소폰이 있으면 이렇게 연주하겠지.
동의합니다. 섞는 게 아니라 스칼레티 자체에게 지금을 주는 겁니다. 찢지 말고 통째로 가져다주고 가져오는 겁니다. 그는 꽤 천재적이고 재미나고 유별난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마 익살스럽거나 다소 폭력적인 리듬도 구사했을 겁니다. 스칼레티는 재즈를 좋아했을 겁니다. 또 락도 좋아했을 겁니다.
나도 락과 재즈와 클래식을 동시에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각각의 장르 마니아들과 오래 이야기를 나눌 순 없습니다. 쪼개진 것은 아무래도 소화가 쉽겠죠? 나를 좀 더 수월하고 쉽게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은 나를 장르별로 쪼개고 세상도 분류하겠죠? 그런데 어쩝니까. 나는 그렇게 쉽게 해석되고 풀이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해될만하면 이해되기를 거부하는 못된 심성을 가졌습니다.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만사가 그렇습니다. 한 가지 속성만 가진 존재는 없습니다. 그런 환상 따위 꿈꾸지 말고 그냥 제발 쪼갰다 찢었다 다시 이어 붙이면서 나 대단해! 자화자찬하는 유치한 짓도 하지 말고 복합적인 존재인 것을 인정하세요.
원래는 말이야, 이 말은 좀 싫은데 해야겠습니다. 이것저것 다 포함되었던 원래의 시대를 공부하세요. 찢어진 걸 결합하는 건 새로운 게 아니라 되돌아가는 겁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겁니다. 그러나 현대의 존재임을 잊지 마세요. 우리는 참 치사하고 시건방진 현대인이고 제법 멍청합니다.
아카 문의 스칼레티를 들으세요. 꽤 청명하고 고전적이고 재즈적이고 색소폰과 드럼과 베이스가 돋보입니다. 그건 재즈와 클래식을 결합한 퓨우전이나 융합이 아니라 그냥 음악입니다. 감자튀김 말고 감자입니다. 페루나 중남미의 고대의 감자입니다. 오늘의 맛을 가지고 굴러가 뜨거운 김에 쪄진 감자 요리 말고 감자 드세요.
참, 자크 루시에 말입니다. 자크 루시에는 자크 루시에입니다. 바흐도 아니고 재즈 바흐도 아닙니다. 그들 트리오는 처음에 한 시간 정도 연습하고 바로 바흐를 재즈로 연주하는 공연을 했다고 합니다. 바흐를 잘 알지도 못했대요. 그들은 그냥, 재즈를 연주한겁니다. 단지 그 곡이 바흐였을 뿐. 만약 그들이 스칼레티를 연주했다면 자크 루시에 스칼레티였을까요? 그냥 자크 루시에겠죠.
아카 문은 아카 문 트리오고 "The Scalatti BooK"을 연주한 겁니다. 뭐, RealBook같은 거죠. 저는 뭐냐구요? 나는 나입니다. 내 글은 내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이고 여러분은 여러분입니다. 갖가지 종류의 분류에 자기를 갈기갈기 찢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