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연 선생님의 다큐 『디바 야누스』를 기려
보컬은 듣고 싶지 않다. 가사가 있는 음악은 나를 방해한다. 글과 문자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나에게 음악은 오로지 음악만의 언어로만 말해지는 것, 기악들의 언어로만 연주되는 것만을 허용한다. 가사는 내 상상력을 가로막고 감히 사람의 언어로 음악의 언어를 빼앗는 일이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가끔 어떤 목소리는 가사나 사람의 언어가 아닌 방법으로 음악이 된다.
디바, 라 불리는 이들의 보컬은 그런 가치를 가진다. 나는 가끔 니나 시몬Nina Simon을 듣고 자크 브렐 Jacques Romain Georges Brel의 목소리를 듣고, 가사를 모른 채 정서만을 귓바퀴로 굴려 파두fado와 콘차 부이카Conca Buika의 아프로 쿠반을 듣는다. 전부 글을 배제한, 음악으로서 듣는다.
박성연 선생님의 보컬은, 어린 내게 너무 무거웠다. 그 목소리는 음악이나 보컬, 언어가 아니었다. 고목을 두들겨 내는 소리다. 나무로 만드는 모든 악기의 소리를 품은 소리였다. 나는 오래 산 나무의 등껍질을 벗겨 불씨를 만들 때 내는 타닥이는 불꽃 소리 같은 목을 긁는 떨림을 들었다. 그것은 보컬을 거부해 오던 자에게 너무 어렵고 무거운 소리였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살았다. 그 생애를 놓치고, 목소리를 놓치고.
때때로, 나는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 모든 것을 놓치고 싶지 않다. 어제는 안소니 잭슨의 부고가 올라왔다. 얼마 전엔 마이크 워포드가, 짐 맥날리가, 쉴라 조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 척 맨지오니의 부고가 있었다. 나는 대가들의 시간을 과신하고 갑자기 낙심과 두려움이 떤다. 내가 그들의 시간을 놓쳤다.
박성연 선생님의 시간을 놓치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고맙게도 기록을 하고 기억을 하고 영화를 만들었다.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상영관은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이미 추억에 잠겨 있었다.
반가운 이름과 얼굴들이 있었다. 임인건 선생님, 이영경 선생님, 차현 선생님, 성기문 선생님... 다행히 나도 그분들을 거쳤다. 나는 내가 놓친 음악들을, 그 시간대를 무척 아쉬워하며 깊게 잠겼다. 휠체어에 앉은 채 노래하는 박성연 선생님의 녹음 현장과 목소리를 보고 들으며 여기저기 깊게 잠긴 울음이 훌쩍였다.
임인건 선생님이 그 앨범을 기획하고 펀딩 할 때, 나도 참여했었다. 그 앨범 재킷에는 후원자 명단이 있고 거기엔 내 이름이 있다. 나는 내 이름 석자가 남겨진 앨범을 떠올리면서 그 무렵 두려워했던 목소리를 듣는다. 고목의 껍질을 긁어다 불쏘시개를 내는 타닥, 타닥, 타는 소리.
야누스는 두 얼굴이고 욕망이다. 나는 박성연 선생님이 어째서 야누스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 가게도 잘 모른다. 손님이 아무도 없었던 날의 자정에 홀로 불을 끄고 계단참을 오르는 선생님의 모습도 모른다. 하지만 비슷한 모습은 안다.
홍대 놀이터에서 뒤를 돌아 골목으로 들어가면 워터콕, 또는 솔라라 불리는 재즈카페가 있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재즈 베이시스트 차현 선생님이 운영하시던 곳이다. 지금도 여전히 있는 합정역 부근의 재즈다, 라는 트럼페터 김예중 선생님이 운영하는 재즈카페도 있다. 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여러 날을 그곳에서 목격했다. 1부, 2부, 3부, 연주자의 숫자는 9명을 넘어가는데 듣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 공허한 장소의 울림을 안다.
나 홀로 듣던 때도 많았다. 나는 일부러 꼭 두 잔을 시켜 먹었다. 두 명인 채 하고 싶었다. 그것이 두 얼굴, 야누스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도 야누스였다.
30-40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침묵과 공허가 자리하고 있었다. 나만 홀로 사람으로 자리를 지켰다. 그 무대에서 연주했던 많은 연주자들이 재즈를 포기하거나 음악을 포기했다. 나는 그만두기 전까지 그들이 서서히 지쳐가는 연주를 들었다. 그 연주들은 갑자기 화를 낼 때도 있었고 조율이 되지 않은 피아노와 형편없는 무대에서 김 빠진 콜라로 연주되던 때도 있었다.
흥망성쇠는 실력과 비례하지 않는다. 재즈라는 장르는 물론 한국에서 한번도 성공을 거둔 일이 없다. 어쩌면 나는 한국재즈란, 북적이는 미국 뉴올리언즈의 춤추는 흑인들의 엉덩이와 발재간이 트럼페터의 입으로 새어 나오는 리듬이 아니라, 텅 비어도 공중을 울려내는 정서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재즈는 늘 사랑받는 장르가 아니어도 묵묵히 울린다. 박성연 선생님의 목소리처럼. 디바 야누스 클럽처럼.
잠깐 주목을 받다가도 아무도 재즈 연주자의 재즈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재즈는 계속 연주된다. 그것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나는 푼돈을 받는 많은 한국의 재즈 연주자들의 연주 소식을 보며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를 떠올린다.
재즈는 한국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장소에서 자라났다. 디바 야누스 자체였던 박성연 선생님이 그 장소를 오래 지켰다. 그렇게 있었으니, 마치 마을의 수호를 담당하는 산당나무처럼 우뚝 서서 여성 재즈 보컬과 재즈 연주자들을 불러 모았으니, 점점 그분의 음색이 고목나무껍질같이 되었을 것이다.
바람이 부네요, 춥진 않은가요.
영화를 보는 많은 이들이, 음악을 듣는 이들이 대답한다. 바람이 불고 춥습니다. 아직도 재즈를 연주하고 사랑하는 이들은 한이 있어서, 한기를 돌려 흥을 만들어 냅니다.
많은 상처에 얼어붙던 내 마음을 감싸던
그 목소리.
재즈 보컬리스트 웅산은 그렇게 회고했다. 또한 많은 이들에게 그랬을 것이다. 산다는 건, 신비한 축복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많은 상처에 얼어붙는 한기 도는, 텅 빈 객석이다. 나 혼자 관람객이던 많은 클럽 공연들이 바람에 스치듯 기억을 지나가면 살이 애린다. 얼음과 정적과 허공을 가르고 깨던 재즈 연주자들의 음악들이 거기에 있었다.
재즈는 영상과 앨범으로는 풀이되지 못하는 즉흥과 무대의 풍미가 있다. 마주 봐야 한다. 재즈는 대화이고 방백이다. 우리는 그것을 참 많이 잊고 산다. 코로나 이후, 멀리 떨어져 버린 사람들, 인터넷망에 의존한 마음들 대신 공석이 거기에 그대로 있다.
마음을 열어요 그리고 마주 봐요
처음 태어나 이 별에서 사는 우리 손잡아요
조롱과 조소가 넘쳐나는 세상에게 남긴 목소리를 듣는다. 나는 이제야 가사를 들었다. 그것은 글이나 말이 아니라 목소리고, 노래고, 바람Wish이었다. 귀담아들은 적 없었던 노래들과 달리 박성연 선생님의 노래는 가사와 음악이 아니고 나무와 나뭇잎처럼 너무나 당연한 맞댐이었다. 나는 같이 영화를 보고 있던 친구의 손을 잡고 싶었다. 수줍어서, 그러지 못했다. 친구는 나와 서울재즈콰르텟 재결성 공연과 이로 란탈로 슈퍼 트리오 같은, 기념적인 공연을 같이 봤었다. 우리는 퍽 오래되었고 서로 마음을 알지만 사느라 바빠서 마주 보기가 힘들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스크린을 봤다. 하지만 이 노래를 함께 듣는 순간, 우리는 마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춥지 않습니다. 대답하고 싶다. 먹먹한 가슴은 서서히 뜨겁게 젖고 내 옆에는 친구가 있고, 그리운 시절들과 서러웠던 빈 객석들의 공허가 있다. 그런 모든 것을 품고 노래하는 디바 야누스는, 웃고 있었다. 우는 소리와 웃는 얼굴의 디바.
그 무렵의 재즈 연주자들, 1세대와 2세대들은 앨범이 제대로 없는 경우가 많다. 내가 존경하고 수많이 들었던 선생님들이 연주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나는 그 대신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녹음해서 밤마다 수없이 들었다. 그렇게 들었던 많은 연주들이 나에게는 재즈다. 지지직거리고 웅얼거리는, 바람 든 마음들.
디바 야누스의 시절을 아는 사람은 이제 많지 않다. 그래도 영상이 남아 있어 다행이다. 공허했던 울림과 기억이 남아 무엇을 하겠느냐, 한다면 바람이 부는 박성연 선생님의 고목 같은 노래를 들려 드리리라. 춥지 않으냐고 묻던 물음은 선생님 자신이 추웠기 때문인 것을, 그 쓸쓸함과 빈 좌석을 품은 디바의 노래를 들려 드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