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Life BGM 2 05화

LifeBGM | 나는 무대용 음악을 들으며 걷는다

christophe zurfluh

by Ggockdo



lifeBGM이 삼십 회를 넘겼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서른다섯 번째 BGM을 듣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장르의 영화나 연극이었나요? 누군가는 이 삶이 누구나 다 비극이라 하고 누군가는 희극이라 하고 누군가는 별 볼일 없다고도 합니다. 때로는 극적이지 않기도 하고 가끔은 아주 극적인 하루이기도 했습니다.

어느새 영화를 보지 않은 지 삼 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영화를 볼 필요가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습니다. 우리 인생이 영화처럼 의미와 상징과 웃음과 울음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엔 오로지 음악만 남을 뿐입니다. 누군가 흘리고 닦지 않은 커피자국처럼.


영화 OST를 들으며 걸으면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이 영화가 되고 오페라를 들으며 걸으면 오페라가 됩니다. 연극은 애석하게도 딱히 정해진 OST가 없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셰익스피어를 오마주한 음반들을 듣거나 낭독된 배우의 목소리를 들으며 4차선 도로 한복판에 멈춘 신호대기 버스 안에서 연극을 펼치곤 합니다. 이렇게까지 감성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고요? 모르는 말씀입니다. 자기의 마음 쓰기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이성과 지성과 감성을 모두 갖고 태어나고 그중 무엇이라도 부족하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부족하다면 열심히 연습해서 배워야 하는 법입니다. 그러니 이런 lifeBGM 따위 유치한 감성짓이라고 비야냥 거릴 때 낭비되고 있는 당신의 타고난 마음 한편에 안타까워하십시오.

나는 무대용 음악을 들으며 걷습니다. 무대용 음악 중에서도 무용음악을 듣습니다. 무용음악은 몸과 움직임을 염두에 둔 음악이라서 목적 없이 걸을 때 아주 유용합니다. 특정 주제나 가사가 있는 음악이나 앉아서 감상하던 음악들과 달리 움직이는 몸을 염두에 둔 음악이라 그렇습니다.


무대용 음악은 아무것도 없는 빈 무대에 특정 장면과 움직임을 유도합니다. 음악이 어떤 유도를 하는지 귀 기울여 듣는 건 제법 섬세한 운동을 하는 일입니다. 이 음악 속에서는 어떻게 어떤 걸음을 걸어야 하지? 손은 어떤 모양이어야 하고, 발가락은 어떤 모양이어야 하나, 또는 고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대단한 움직임을 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실은 대단한 움직임입니다만, 당신이 걷는다는 것 말입니다. 시내를, 아파트 단지를, 버스 정류장을 스쳐, 지하철 역사 계단을, 환승 통로를, 횡다보도를, 그 밖의 여러 가지의 장소를 걷는다는 것은 대단한 움직임입니다. 잘 단련된 일상의 움직임들, 의도하지 않았지만 하늘거리며, 힘 있게 걷는 움직임은 지금 그곳에 과분합니다.


여러분은 늘 그곳에 과분한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로 저는 마치 가사와 명확한 주제가 사물처럼 놓인 노래들을 그다지 권하지 않습니다. 그런 음악에서 여러분은 늘 청중이나 관중이나 그 밖의 수동적인 자세로 그곳에 박히게 됩니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이 늘 움직이는 생명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또한 그러한 움직임으로 모든 곳에 과분하게 굴어 모든 영역을 장악하고 지배하기를 바랍니다.


무대용 음악은 다소 웅장하거나 장엄합니다. 또는 희극적입니다. 몸의 움직임이 가능하게 만든 리듬들이라 저절로 걸음이 작품처럼 움직입니다. 크리스토프 저플루는 발레단을 위한 음악부터 모던, 컨템포러리 무용의 무대용 음악을 많이 작곡했습니다. 어떤 것은 오케스트라가 들어가 서정적이고 무드 위주이지만 어떤 음악은 일렉에 드문 멜로디가 담긴 비트만 있는 곡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모든 곡을 앨범째로 통째로 들으며 걷기를 추천합니다. 트랙이 바뀔 때마다, 무대가 바뀔 때마다 여러분의 걸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한 번 느껴보십니다. 어떤 트랙에서는 진취적이고 성난 사람들처럼 걷다가 문득 방향을 바꾸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또 어느 구간에서는 잠깐 멈추고 싶기도 합니다.

우리는 연극을 하지는 않지만, 제 생각엔 무대를 분명히 밟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움직이고 걷고 살아가는 것이 분명한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가끔 멍하게, 무대용 음악을 들으며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내 시야의 한 평만 한 그곳이 어떤 무용극의 무대라는 걸 깨닫습니다. 나는 여러분도 그것을 잘 알고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모든 장소의 움직이는 존재고, 그것만으로 모든 장소를 무대로 만듭니다. 여러분은 숨쉽니다. 여러분은 걷습니다. 어깨를 움츠립니다. 어깨를 추켜 올립니다. 여러분은 손가락을 튕깁니다. 여러분은 두리번거립니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넘어질 뻔합니다. 무거운 것을 들고 힘겹게 걷습니다. 멈춰 섭니다. 그러다 다시 걷습니다. 그런 식으로 여러분은 계속 움직입니다.


무대용 음악을 들으며 걸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조금 실감이 나실 겁니다. 내가 살아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좀 더 극적으로 그 감각을 느끼며 걸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뱃속이 들끓고 음악에 따라 걸음이 빨라질 때, 가사와 주제 없이도 뱃가죽이 발발 떨리는 사연이 그렇게 대단치는 않아도 분명하게 여러분의 몸에서 땀처럼 배어 나오는 걸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퇴장. 오, 모든 곳에 과분한 움직임들.






*추신


안녕하세요. 작가 곡도, 박은혜입니다. 얼마 전, 제가 창작지원금으로 작은 에세이집을 냈습니다. 그저 나는 글쓰는 사람임을 기억하기 위해 조금씩 적는 것을 봐주신 분들 중 몇 분께 무료로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원하시는 분들은 댓글이나 혹은 작가 제안하기의 메일을 통해 연락주시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책의 정보는 아래와 같습니다. 현재 인디펍과 알라딘에 올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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