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의 온도
클라우스 유와 나는 어딘가 찰리 채플린의 소품같은 구석이 있었다. 유는 채플린의 중절모고 나는 채플린의 단추 정도쯤이었다. 우리는 어설픈 독일 행정소속에서 벗어나 추운 한국 겨울에 불시착 해놓고 하하, 호호 기이하게 웃었다. 아마 노량진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정확히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독일 맥주에 길들여진 우리는 으슬으슬 떨리니까, 당연히 맥주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장갑이 없었고 유는 있었다. 유와 나는 장갑을 하나씩 나눠끼고 장갑 낀 손으로 맥주병을 잡았다. 우리는 노량진에서부터 신도림역까지 걸었다. 걷는 내내 코끝이 시렸고, 손이 시렸고, 계속 맥주를 사서 마셨다. 편의점이 많아서 다행이야. 나는 그 때 네덜란드의 과일맛 맥주를 처음 마셨다. 춥고 달고 시원하고, 속에서 천불이 활활 탔다.
본래 냉면은 겨울에 먹는 음식이라고 했다. 글쎄, 건조하기 때문에 시원한 국물이 더 입맛을 당긴다는데 잘 모르겠다. 겨울의 아이스크림은 늘 감기의 위험이 도사리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여름의 차가운 음식보다 한겨울의 차가운 음식은 어딘가 더 맛있는 구석이 있다. 아마 용기가 포함된 맛일게다. 겨울 동치미는 그런 것이다. 찬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창문 틈새와 녹아가는 뜨거운 장판 위에 차려진 밥상 위 동치미는 동치미의 온도다 그것은 차갑다거나, 춥다거나, 시원하다고 설명할 수 없는 온도를 가졌다.
동치미의 온도. 한 겨울 맥주의 온도. 나는 그것을 겨울 바다의 온도라고 생각한다. 얼지 않는 바다의 겨울 온도는 새파랗고 차가울 것 같지만 물 속에선 생각보다 따뜻하고 그러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애매하고 모순적인 파랑의 온도를 좋아한다.
내 고향은 겨울에 눈이 무척 많이 오는 바닷가를 가졌다. 눈이 쌓인 모래사장과 시퍼런 겨울 파도를 보고 있으면 클라우스 유와 동치미를 담아 먹는 흰 그릇을 떠올린다. 나는 어느 유명한 미국인 행위예술가처럼 동해의 겨울 바다물을 떠다 서해에 가져가 뿌리고 서해의 바닷물을 가져가 동해에 뿌려주고 싶었다. 동해는 눈이 많이 내리지만 생각보다 포근했다. 바다의 소금기가 모래사장의 눈을 서서히 녹이고 공기중에도 눅눅한 짠 맛이 돌아 대기가 잘 얼지 않았다.
오죽헌이 있었던 동네 뒤쪽에는 귀향살이를 한 남성 문인들의 수공예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강릉의 자수와 수공예는 보통 여성적인 다른 지방의 것과 다르게 남성 문인들이 명맥을 이어 힘차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대쪽같은 겨울파도와 동치미의 온도를 가졌다.
누빔무명천 위에 수 놓은 남성 문인들의 자수는 따뜻하지 않았다. 나는 사람이 잘 찾지 않는 지방박물관의 썰렁한 온도를 이겨내기 위해 수척한 학예사와 힘껏 수다를 떨었다. 그는 추위에 질려 있기 보다 한기에 질려 있었다. 그것은 소외와 외로움의 한기였다. 마치 그가 귀향살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도 자수를 놓을 수 있을까? 나는 감히 물어보지 않았다.
형이상학적인 남성문인들의 자수를 보고 나오는 길목에 낡은 카페가 있었다. 직화로 볶은 커피 탄 내가 그득했다. 볕은 따사로웠지만 온도는 쌀쌀맞았다. 이런 구석진 곳까지 찾아오는 관광객은, 겨울이면 다 끊겨버린다. 카페는 불도 켜 놓지 않고 있었다. 내가 그 곳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작은 화목 난로 불빛이 안에서 조그많게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털모자와 털장갑을 한 주인은 나를 위해 화목난로 앞에 의자와 작은 테이블을 끌어다주었다.
문 밖에서 닭이 한 마리 돌아다녔다. 닭은, 자주 유리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화목난로는 너무 뜨겁거가 너무 빨리 식어버리는 오른쪽과 왼쪽을 만들고 닭은 자꾸 나와 눈이 마주쳤다. 주인은 커피와 구운 가래떡을 내어주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쩌면 그 닭이 주인은 아니었을까.
커피는 금방 식었다. 카페 안은 여전히 코트를 벗을 수 없는 온도를 가졌고 불 꺼진 형광등 3개와 불켜진 형광등 1개를 안고 묵묵히 겨울을 견뎌내고 있었다. 나는 그 속에 잠식당한 채 한참 앉아 있었다. 차갑게 식은 커피는 아무리 화목 난로 앞에 놓아보아도 데워지지 않았다.
나는 식은 커피의 온도가 좋았다. 겨울과 대항해 너무 따뜻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겨울에 완전히 노출되지는 않은, 최소한의 저항 속에 묵묵히 식어가는 커피의 차가움은 겨울 바다 파도와 같고 또한 귀향온 누빔 살림 살이에 자수를 놓는 남성 문인들의 견녀내는 힘과 같았다.
주인은 나무 냄새를 풍기며 들어와서 화목난로에 장작을 두 개 더 넣었다. 여긴 여행오셨어요? 원래 고향이에요. 지금은 일가친척도 없지만. 왜 겨울에 왔어요. 바다는 겨울에 봐야죠. 맞아요. 그는 옅게 웃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이 취미삼아 만든 작은 목공 조각을 주었다. 얼마 뒤면 내 생일이었다. 나는 겨울 바다를 벗삼아 태어나서 눈을 덮고 울음을 울었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식은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차가웠고, 적당한 온도였다. 오래간만에 클라우스 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겨울에 바다 보러 가세요. 겨울 바다의 온도는, 그 날의 맥주처럼 적당하고 동치미처럼 속을 식혀 줄 거에요.
동치미 무같은 카페 주인의 목공 조각이 꼬꼬댁,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