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과 멋 | 온도를 먹다 1

따뜻한 토마토

by Ggock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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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다. 시원하다. 뜨겁다. 따끈하다. 뜨끈뜨끈하다. 미지근하다. 음식의 온도에 유독 예민해지는 계절이 온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를 마시는 사람과 으슬으슬해지는 저녁에 뜨거운 국물요리를 찾는 사람이 공존한다. 그들은 메뉴가 아니라 온도를 먹는다.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


식은 음식은 서러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차갑거나 시원한 것이 아니라 뜨거워야 하는 것이 식었기 때문이다. 식은 음식은 때가 지난 것, 기회를 놓친 것, 가장 맛있을 때를 떠나보낸 것이다. 음식을 해 본 사람은 따뜻할 때, 식기 전에 음식을 내놓기 위해 애써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로 나는 배달을 한 번도 시켜 본 일이 없다. 음식이 식어서 오는 건 음식에게 서운하고 나에게 서운한 일이기 때문이다.

식탁에 반듯하게 차려 놓은 음식이 식어가는 광경은 상상만 해도 슬프고 비참하다. 여인들의 슬픈 삶은 그런 식으로 자주 그려진다. 식구들의 저녁을 때에 맞춰 열심히 만들어놓고 한없이 기다리다 음식이 식어버리는 이야기. 가득 차고 식은 식탁의 슬픔은 마음의 온도를 얼어붙게 만든다. 실제 음식의 온도와는 상관없는 음식이 주는 마음의 온도.


나는 자존감이 높았다. 아니, 낮았나? 모르겠다. 불안정한 시기였다. 갑자기 높았다 갑자기 낮았다. 이유도 몰랐다. 암, 이유도 없이 기복이 있어야 진짜 감정기복인 법이다. 뚜렷한 원인이 있는 것은 원인을 고치거나 수정하면 되지만 그럴만할 겨를도 없는 불분명하게 뚝 떨어지는 감정의 너울이 내 속에 있었다.

나는 마음을 다스리려 인사동에서 삼청동, 광화문의 거리를 쏘다녔다. 너무 걸어서 다리가 질질 끌릴 때까지 걷는 게 상책이었다. 마음과 신체는 기이한 방법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몸이 소진되면 자연스럽게 마음도 소진되기도 한다. 볕이 좋은 초겨울이었다. 늦가을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볕은 가을볕이고 바람은 겨울인 즈음이었다. 인사동은 별 게 없었다. 몇 개의 작은 미술관을 들여다보았지만 시큰둥했다. 삼청동 초입에는 벽에 영사기로 오래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쏘아주는 카페가 있었다. 나는 들어가지 않았다. 볕이 아직 좋은 한 낮이라 애니메이션은 처량할 정도로 옅었다. 뜨거운 볕 속에서 흐리고 미지근한 애니메이션의 온도는 내게 적절치 않았다.

나는 먼 길을 돌아 광화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지금은 없어진 우드 앤 브릭 베이커리 분점이 있었다. 나선모양 계단과 그 아래에 와인창고가 보이는, 2층짜리 건물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광화문점은 생크림 케이크를 할인해서 팔았다. 나는 흰 생크림만 단정하게 발린 할인 케이크를 노리고 있었다. 기분을 올리기에 그보다 적합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심사가 꼬인 나는 볕이 유난히 늦게까지 따스한 그날, 툴툴거리며 먼지가 날리는 광화문 사거리를 걷어차며 걸었다. 좋은 날과 좋은 볕을 걷어차고 있었다. 광화문의 우드 앤 브릭은 아주 붐비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붐볐다. 유난히 그 지점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나선형 계단 때문인지도 모르고 빵 외에 별도로 올리브류나 작은 프레세코, 와인, 버터와 치즈를 따로 팔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몇 테이블은 벌써 잔 와인을 시켜놓고 간단한 사퀴테리가 들어간 샌드위치와 치즈를 먹으며 수다 떨고 있었다. 나는 그런 낯선 환경 속에 눌리고 납작해져 굴곡이 큰 감정기복을 진정시키며 두리번거렸다.


왜 그날은 그다지도 따스했을까. 태양의 기울기가 아주 적당했다. 나는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고 짭조름한 그린 올리브가 들어간 트위스트 된 작은 핑거브레드 하나와 세일하는 흰 생크림 케이크,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나름대로 올리브브레드는 식사였고 케이크는 후식이었다. 단촐한 밥과 거창한 후식. 주객이 전도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매장은 훈훈했다.

나는 유리에 새겨진 영문 글씨들이 햇볕을 받아 그림자로 선을 휘갈기는 것을 보고 있었다. 창가는 따뜻해서 금방 잠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작은 올리브 브레드는 금방 삼켰고 케이크도 금방 녹아 사라졌다. 남은 것은 따뜻한 아메리카노 반 잔이었다. 그것은 햇볕 아래에서 조금씩 온기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보다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주석 쟁반에 담긴 채 창가에 놓여있는 탐스러운 일곱 개의 토마토였다. 토마토는 한 주먹에 쥘 수 없는 큼직한 엉덩이를 치켜들고 뒤집혀서 쟁반에 얌전히 엎드려 일광욕을 즐겼다. 여섯 개가 원을 그리며 눕고 가운데 조금 작은 토마토가 딱 맞게 들어가 앉아 있었다. 일곱 개의 토마토는 붉고 크고 단단하고 볕은 받아 윤기를 내는 주석 쟁반 위에서 금빛 볕을 온전히 즐기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 토마토들보다 더 따뜻한 온도를 가진 음식을 본 일이 없다. 나는 충분히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계속 일곱 개의 토마토가 볕에 골고루 따끈하게 익어가는 것을 한참 바라보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붉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바람이 점점 볕을 몰아내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저녁이 멀지 않았다. 직원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와서 토마토 쟁반의 온도를 체크했다. 단단하고 포동포동한 살을 눌러보고 적당히 익었는지도 체크했다. 저녁 요리, 아마도 카프레제 샐러드에 쓸 토마토인 듯싶었다. 나는 여전히 직원의 손길을 얌전히 받고 있는 순둥한 토마토 궁뎅이 일곱 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직원은 나를 힐끔 봤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토마토 쟁반을 들고 들어갔다. 토마토가 있던 자리에 마지막 볕이 떨어졌다. 나는 서운했다. 기껏 따뜻한 온도를 발견하고 먹고 싶었는데 나는 접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직원은 어쩌면 내 낯빛을 눈여겨보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앳된,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내내 겨우겨우 온기를 유지하고 있는 아메리카노를 붙들고 창가 자리에 풀 죽어 있는 뒷모습을 봤을지도 모른다. 직원은 나에게 다가와 가운데 있었던, 조금 작은 토마토를 한 알 건네주고 말없이 들어갔다. 나도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빵집에서 토마토 한 알을 선물 받을 확률은 좀처럼 계산을 시도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나는 토마토는 손에 쥐었다. 따뜻했다. 따뜻한 토마토라니. 그다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조합이다. 그러나 그 토마토는 토마토가 아니라 볕에 오랫동안 일광욕을 즐긴 평온하고 태평스러운 과실이었고 바코드와 가격이 매겨지지 않은 상품 이전의 물건, 물건 이전의 마음이었다.

나는 토마토를 오랫동안 쥐고 있었다. 볕이 다 꺼지고 완전한 저녁이 될 때까지 있었다. 세일코너가 동나고 이제 빵들은 들어가고 저녁 레스토랑 손님들만 와인을 고르며 나선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토마토에서 볕의 온도는 잘 빠지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쥐고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에서도 손에 쥔 채로 서울역까지 걸었다. 춥지 않았고, 배가 고프지 않았다. 나는 온도를 먹었기 떄문이다.


서울역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토마토를 조금씩 베어 먹었다. 쉴 새 없이 도착예정 시간이 바뀌는 전광판은 차가웠고 그 아래에 서서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는 남자의 코가 빨갰다. 내 빨간 토마토는 따뜻했다. 볕을 잔뜩 받고 무료로 선사된 그날의 토마토의 온도는 몇 도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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