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들
이모는 영 요리에는 재능이 없었다. 목발을 짚는 대신 손에 온갖 재주가 다 실린 이모가, 요리만큼은 제 맛을 내지 못한다는 걸, 본인도 쉽게 인정하기 싫어했다. 하지만 유달리 나를 예뻐했던 이모는 엄마 대신 돌봄이 필요할 때마다 우리집에 있어주곤 했다. 이모는 볶음밥과 스프, 약밥과 식혜를 자주 만들었다. 약밥과 식혜는 추석과 설날 즈음에 밥솥을 이용해 달게 만들기만 해도 어린 내 입맛에는 그럭저럭 충분했다. 문제는 볶음밥과 스프였다. 이모의 볶음밥은 기름 투성이에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 '무미無味'를 알았다. 하지만 스프는 꽤 맛이 좋았다. 물론 그 스프는 오뚜기 3분 스프가루를 물에 개어 끓인, 맛이 없을 수 없는 요리였다.
가을 즈음, 부모님이 단체로 볼일을 보러 가신 날이었다. 나는 급식을 먹지 않았다. 급식은 좀처럼 지금까지도 적응할 수 없는 식사형태 중 하나다. 미지근한 금속 식판에 한꺼번에 음식을 담아 다같이 일렬로 앉아서 먹는 급식은 효율로는 최대겠지만 좀처럼 맛과 멋을 지키기에는 어려운 형태다. 나는 급식을 신청하지 않고 간단한 도시락을 들고 다니거나 종종 학교 앞에 오는 트럭에서 부리또를 사먹었다. 부리또 트럭은 학교 매점 아저씨의 질투로 한 학기만에 없어졌다. 나는 파나 양파, 당근 등의 부속물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오로지 고추장과 물엿과 물로만 만든 매점 떡볶이를 사먹었다.
그 날은 도시락도 싸들고 가지 않았고 용돈도 챙기지 못한 날이었다. 유달리 짜증이 나 있었다. 대신 낙관적이었다. 점심시간에 여차하면 친구에게 피자빵이라도 사달라고 하거나 맛없는 떢볶이를 얻어먹을 요량이었다. 그런데 경비아저씨가 나를 찾았다. 이모가 오셨어.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모르겠다. 어깨와 상체에 비해 가늘고 힘이 없는 다리를 끌며 목발을 짚어 애써 여기까지 온 것이 화가 났었을까? 친구들에게 부끄럽다는 철없는 감정은 절대 아니었다. 이미 내 친구들은 이모를 다 알고 있었다. 단지 내가 유달리 까칠한 고등학생이었고 밥을 먹지 못해서, 또는 가을이라서 기분이 좋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모는 오뚜기 야채스프를 끓인 것과 기름 범벅 볶음밥을 들고 학교 앞에 찾아왔다. 나는 나가서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 한마디 없이 뒤돌아 교실로 돌아갔다.
평생 동안, 이미 하늘로 떠난 이모를 떠올릴 때 가장 죄스러운 순간이 있다면 어쩌면 그 가을일 것이다. 가을 햇볕이 따갑도록 뜨겁고 운동장 모래가 건조하게 일어 먼지냄새가 났다. 은행의 꼬릿한 냄새, 슬슬 붉게 떨어지기 시작한 단풍잎이 있었다. 이모는 손에 든 도시락 가방을 그대로 든 채 한동안 멀어져가는 나를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이 장면은 마치 내가 그 날의 장면을 멀리서 관찰하고 찍어 간직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번들거리는 교복 스커트가 씰룩거리며 학교 건물로 들어가고 체육복을 걸친 몇 무리의 여고생들이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장난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모는 학교 정문 앞에서 나를 한동안 쳐다본다. 표정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마 그다지 슬픈 표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내 몸에 들썩일 정도로 크게 한숨을 쉬고 집으로 향해 걸어가는 모습은, 마치 가을같은 것이었다.
학교 담장은 우리집으로 향하는 길로 나있어서, 하필, 나는 이모가 목발을 짚고 다리를 끌며 천천히 걸어나가는 장면을 보았다. 이미 나는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흔한 청소년기의 반항심과 허세가 이모에게 달려가 사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모는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걸어가고 있었다. 목발과 허벅지 사이에서 스프와 볶음밥이 들은 도시락 통이 덜그럭 거렸다. 아직도 나는 가을 학교 정문을 지나칠때면 그 소리와 장면이 떠올라 가슴이 죄듯이 아프다.
인스턴트에 불과했지만 이모의 스프는 특식이었다. 어묵이나 스프같은, 인스턴트 음식은 쉽게 허용하지 않는 엄마의 식탁에서는 볼 수 없는 일탈거리였다. 더군다가 이모와 외조모가 살던 동네 근처에 있는 멋진 경양식집에서는 함버그 스테이크를 시키면 이모가 끓인 스프와 똑같은 맛을 내는 스프를 줬다. 그 집도 역시 오뚜기와 거래를 했던 것이다. 등대라는 이름을 가진 경양식집은 그리스섬을 연상시키는 하얀 외관과 전형적인 2000년대 경양식집의 인테리어를 하고 있었다. 판판하고 낮은 그릇에 담긴 오뚜기 스프를 이모는 더 진하고 더 많이 끓여 주었다. 때때로 가루가 뭉쳐서 덩어리져 있기도 했다. 나는 그것마저 완자처럼 맛있게 입안에서 굴리다 씹어 먹곤 했다.
스프는 가을의 맛이 난다. 그 가을의 먹지 못하고 버려진 스프가 아니더라도 약간 걸쭉하고 크리미한 스프가 어울리는 쌀쌀한 바람이 돌기 때문이다. 이모의 오뚜기 스프가 더이상 특별하지 않은 나이가 되어서는, 추수감사절마다 늙은 호박으로 끓이는 스프나 죽에 입맛을 다셨다.
추수감사절의 꾸밈새는 늘 늙은 호박이 중심에 있는 법이다. 매 해마다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저마다 어떤 수확물을 가져올 것인가를 이야기 할 때, 나는 누가 늙은 호박을 가져올 것인지만 유심히 귀기울였다. 아무래도 할머니들이 가져오는 호박이 맛이 있었다. 세월의 지혜는 무시할 게 아니라서 할머니들이 골라오는 늙은 호박은 때깔도 좋고 나중에 속을 파 보았을 때 달큼하고 풋풋하고 단단한 육질을 자랑했다. 한번은 고모가 늙은 호박을 가져왔다. 겉보기에는 예뻤지만 호박의 멱을 땄을 때, 속은 이미 다 스러져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그 이후로 늙은 호박은 연륜이 있는 사람의 안목을 믿기로 했다.
늙은 호박으로 만든 죽이나 스프는 단호박과는 아주 맛이 다르다. 발랄하거나 튀는 맛은 아니라서 가끔은 간이 덜 된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늙은 호박은 슴슴하고 되직하고 묵직하다. 수더분한 가을의 맛이 난다. 호박의 맛은 가을의 환희다. 쓸쓸하고 쌀쌀맞은 가을에 유일하게 푸근하고 느긋한 환희다.
커다란 호박은 엄마가 자르지 못한다. 늙은 호박을 잡을 때에는 꼭 아빠가 식칼을 잡았다. 계절마다 아빠는 한번씩 부엌에 섰다. 여름엔 수박이었고 가을엔 호박이다. 호박이 갈라질 때 나는 소리와 수박이 갈라질 때 나는 소리는 비슷한 듯 달랐다. 즙이 가득한 수박이 갈라지는 소리는 끈적하고 흘러내리며 가볍게 쩌억 하고 갈라진다. 하지만 호박이 쪼개질 때는 훨씬 더 둔탁하고 메마르고 묵직한 소리가 난다. 나는 호박을 토막낼 때 들리는 묵직한 쩌억, 하는 소리와 소리 이후에 나는 달큼한 풋내를 좋아했다. 그리고 섬유질 사이에 엉겨붙은 호박씨를 골라내고 씻고 말려서 볶아 먹는 것도 좋아했다. 직접 호박 안에서 거둔 호박씨는 껍질에서 호박의 겉냄새까지 났다. 몇 알밖에 되지 않아도 동그란 씨의 테두리를 이로 뜯어낼 때 솟아나는 침은 수백개의 호박씨를 까먹은 것처럼 양이 많았다.
독일에서는 호박을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잘 붓는 체질인 나는 가을이면 늘 늙은호박 스프나 죽을 먹으며 가을의 맛을 즐기는 한편 겨울의 붓기를 예방했던 것이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호박이 눈에 뜨지 않았다. 어떤 호박은 너무 맛이 없었다. 수상한 점박이 무늬가 있는 훗카이도 호박은 너무 무르고 땅콩호박은 느끼했다. 나는 김장김치나 쌀밥, 떡볶이는 그립지 않았지만 가을의 환희를 주었던 늙은 호박 스프는 늘 그리웠다.
호박은 김장에도 들어갔다. 슬슬 늦가을과 초겨울 즈음이 되면 호박김치에 쓸 늙은 호박을 선별해 따로 뫼셔 둔다. 그 호박은 정말로 '뫼셔'진다. 꽃병이나 화분이 있을 만한 자리에, 서늘한 자리에 엉덩이를 펑퍼짐하게 깔고 앉은 늙은 호박은 사랑방 손님처럼 가을 한 철을 집안에서 난다. 그리고 김장날이 되면 호사를 다 누린 늙은 호박은 가을의 풍취를 내어주고 거침없이 토막나 김치 사이에 달콤함을 묻는다.
가을마다 오뚜기 스프 사건과 호박 스프를 먹어버릇해서 그런가, 시월이 넘어가면 스프를 곧잘 사먹는다. 감기기운이 있거나 계절 변화때문에 몸살이 나면 미네스트로네를 꼭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 이탈리아 쉐프님이 큰 병에 담아 주는 뜨리파를 아껴 먹는다. 미네스트로네와 뜨리파는 둘 다 토마토 맛 스프다. 겸손한 야채들의 스프인 미네스트로네와 양(소의 위)이 들어간 보양식인 뜨리파는 토마토라는 공통점이 있어도 절대 섞어 먹지 않는다. 미네스트로네는 가벼운 한 낮의 가을 스프라면 뜨리파는 가을 밤의 스프인 탓이다.
아주 조그마한 그 이탈리아 식당은 이름도 모른다. 이상한 일이다. 그 동네에서 2년을 살았는데, 아직도 이름을 모른다. 거주할 때는 한 번도 거들 떠 보지도 않았는데, 여행객으로 갔을 때에는 나도 모르게 홀린듯 들어갔다. 4인용 테이블 두 개는 이미 차 있었고 길게 나 있는 10인용 테이블만 있었다. 나는 10인용 공용 테이블의 한 자리를 안내받았다. 그 테이블은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이 겸연쩍게 모여 앉아서 스프그릇에 코를 박고 먹었다. 감기가 걸린 내 코는 연신 훌쩍였고 직원이 마침 하이쭝(라디에터) 옆에 안내해준 덕에 점점 콧물에 내 정신이 녹아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미네스트로네와 작은 치즈 피자를 시켰다. 음료수는 시키지 않았다. 차가운 건 입에도 대기 싫었다.
미네스트로네는 한 가득 담겨 나왔다. 잠깐 여기가 독일인 것을 잊고 있었다. 독일은 무엇이든 다 크다. 이탈리아보다 최소 1.5배는 더 크다. 내가 알던 스프 양의 두 배가 되는 넉넉한 양의 미네스트로네는 깍지콩과 당근과 감자가 같은 크기로 잘게 들어가 있었다. 간간히 베이컨 조각과 닭가슴살 조각도 보였다. 당근은 손가락 모양으로 나오는 핑거캐롯임이 틀림이 없었다. 샐러리가 간간히 씹혔다.
감기 때문에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아야 하는데, 미네스트로네는 너무 맛있었다. 내 앞 테이블 남자에게도 미네스트로네가 서빙되었다. 그는 고개를 지나치게 많이 숙이고 거의 턱을 스프그릇에 가져다 댄 채 쉬지 않고 스프를 떠먹었다. 내가 반 쯤 먹었을 때 그는 벌써 빈 그릇에 스프 스푼을 쩔그렁 거리며 얹었다. 우리는 그 때 딱 한 번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내 스프를 보고 입맛을 다셨다.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나는 내 미네스트로네를 뺏기지 않기 위해 스프 그릇을 내 가슴 앞에 한껏 끌어다놓고 정신없이 퍼먹었다. 그렇게 빨리 먹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가을을 그렇게 빨리 해치울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런데 이제는 가을이 그렇게 쉽게 가버린다. 올 해의 가을은 그 남자가 미네스트로네를 먹던 속도만큼 빠르게 간다. 스프는 오랜시간 동안 끓이고 천천히 후후 불어 먹어야 하는데 좀처럼 그럴 시간을 주지 않는다.
나는 마치 그 가을의 미네스트로네 식사처럼 내 가을을 가슴팍 앞까지 끌어다놓고 정신없이 퍼먹는다. 추워서 등이 저절로 말려 요새를 만들어 주니, 내 가을을 뺏기진 않을 것 같다. 늙은 호박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호박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오뚜기 스프를 내어주는 경양식집에 가야겠다. 그리고 내 가을을 사정없이 먹어치우며 조금이라도 겨울을 준비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