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Life BGM 2 12화

LifeBGM | 불확실한 아름다움

김호철 앙상블 Uncertain Beuty

by Ggockdo


우리 세대 예술가들은 지난 세기와 다른 역경을 견뎌내는 중이다. 주디스 버틀러가 주장했듯(「지금은 대체 어떤 세상인가」) 세계는 코로나 이후 집단 우울증에 빠져 있으며 인공지능과 비대면의 형식으로 전달되는 예술에 중독되어 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아니, 실은 나쁘다고 내 속은 단언한다. 왜냐하면 인간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서사에 대한 깊은 회의' 도 어쩌면 같은 결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절된 우리들, 서로 연결되지 못하는 서사들, 쇼츠처럼 극도로 분절된 짧은 서사와 실제 우리 생명이 가지고 있는 길고 긴 생의 서사의 갭 차이가 벌어질수록 대체 어떤 이야기를 써야한단 말인가!


모든 것을 다같이 넣고 함께 분쇄된 믹서기 속의 부스러기같다. 당근의 형태를 알 수 없고 딸기의 형태를 알 수 없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고유성이나 형태가 짧게 분절되어 곧 자아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심각한 위기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실제로 내년에 예정된 세계적인 전시와 예술의 주제가 '사라지는 것'에 연관된 이유일 것이다.

믹스 분쇄된 정체불명의 부스러기를 헤집으며, 우리 세대 예술가들은 분명한 어떤 것을 잡아내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예술가들은 그렇다. 어느 때에는 일부로 파쇄하고 해체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반대로 해체되고 분쇄된 가루로 흩날리는 정체불명의 존재들을 다시 뭉치고 빚어내야만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갑작스럽게 공연 소식을 듣게 된 김호철 앙상블의 공연 <Uncertain Beuty>에서 젠틀레인의 베이시스트인 김호철은 말했다.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그래도 우리 예술가들은 아름다움을 나름대로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고. 바이올린 두 대와 비올라, 첼로의 스트링 밴드와 혼 세션, 기타, 피아노, 드럼 콘트라베이스의 앙상블로 펼쳐진 그의 마지막 곡, Uncertain Beuty는 그의 말을 선율로 풀어낸 명곡이었고, 분절된, 물리적 거리를 감내한 형태가 아닌 코 앞의 무대에서 실연되었다. 많지 않은 관객들 앞에서 불꽃처럼 타고 사라져 버리는, 고유한 뉘앙스로 실컷 쏟아내고 사라지는, 불확실한 아름다움.


불확실한 아름다움은 두 가지의 층위를 가졌다. 하나는 '아름다움이 불확실하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불확실함 속에 있는 아름다움'이다. 김호철 앙상블의 공연은 두 가지 층위의 혼재 속을 헤쳐나가는 다양한 소리들이 보이지 않는 미감을 만들어 냈다. 그런 것은 반드시 무대를 마주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친구와 공연을 보고 KFC 이층에 앉아서 11시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크리스마스가 코앞인데 공연 좌석은 많이 남았고, 명동이나 광화문 등지에도 인파가 얼마 되지 않는 이 기이한 크리스마스의 어려움에 대해서, 이런 크리스마스가 올 수 밖에 없었던 일년의 고단함을 이야기했다.

프랑스 영화 <마에스트로>에느 클래식 지휘자 아버지와 아들이 등장한다. 아버지보다 실력도 명성도 높은 아들이 라 스칼라 상임으로 가게 된 소식을 성이 같은 아버지가 받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그러나 실제로는 앨범으로만 명성과 경력을 쌓은 아들 지휘자와 앨범실적은 없지만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해 온 아버지의 대조적인 예술관이 숨겨져 있다. 아들은 라 스칼라 초연에서, 진짜 관객 앞에서 실제 지휘를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아버지와의 화해를 통해 두 부자 지휘자가 함께 무대에 오르는 다소 판타지적인 결말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공연예술에 대해서는 시사하는 점이 크다. 코로나시기를 거쳐 뭍으로 올라온 예술가들은 실연이 아닌, 이중 삼중 매체로 변환된 형태로 작품을 전달하는 방식에 익숙하다. 심지어 무용 또한 그래서, 코로나 이후의 무용공연은 화각과 움직임 작고 잘게 쪼개진 경향이 있고 음악 또한 그렇다. 카메라 앞에서의 연주는 자기 세계에 빠져들기는 좋지만 재즈 본연의 맛처럼 청중과 소통하는 맛은 확실히 줄어든다.


여러가지 이유로, 직접 찾아가는 공연관람의 형태의 수준이 낮아지고 관객은 외면하고 점점 무대 앞에 앉는 감상자는 줄어들고 있는 작금에도, 김호철의 말처럼 '불확실함 속에서 나름의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수고'를 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의 손에 실제의 무게와 실제의 감각으로 아름다움이 빚어지고 있다.

음악은 울리고 나면 사라진다. 공연예술은 기록장치의 발달이 없었다면 그저 기억으로만 전수된다. 그러나 분명한 감각이 있다. 우리의 형이상학적인 아름다움은 여전히 유효하고 일부분은 완전한 형이상학의 체계인 인공지능에게 전수해 버렸지만 형이하학적인, 직접 맞닿는 아름다움은 오로지 육신과 감각기관을 통해서 느껴지는 고유의 것이다.


다양한 앙상블 구성의 공연에서 연주자들은 부지런히 무대를 오갔다. 실력이야 말할 필요 없는 신동진 드러머, 신명섭 색소포니스트, 심규민 피아니스트, 김호철 베이시스트, 임경은 보컬리스트도 그렇지만 몇 안되는 분초를 위한 스트링을 위해서도 참 많은 인원이 무대를 올랐다. 기획의 눈으로 보면 효율적이지 않은 구성이다. 그러나 무대에 많은 선율이 겹쳐질수록 기묘한 감동이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공연의 의미가 인기나 명성에 연연해 하지 않을 수는 없으나,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점점 더 불투명해지는 세상에서,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름다움이 없다면 우린 뭐가 될까요? 우리 재능과 헌신으로 꿈과 엮어서 창조해낸 예술 작품들은 인간에게 영감과 위안을 주죠. 그들은 마치 성당처럼 등대처럼 우뚝 솟아 있어요. 가엾은 인류에게 긍정적인 본보기가 되리라는 희망에서요. 희망은 언제나 승리합니다." -영화 <댄싱베토벤>중에서-


불확실한 아름다움은 희망이 되고, 희망은 언제나 승리할 것입니다.



아직 음원이 없는 Uncertain Beuty 대신 Invisible Things로 대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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