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주운 생각들 6| 오늘도 꽃 되기 글러먹어도.

오늘 피지 않는 꽃을 서운해하지 않는 마음을 위해.

by Ggock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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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 먹은 세상에 산다. 희망은 예의가 없다. 공손하게 오지 않아서 불철주야 기대해도 뒤통수만 보여주고 약 올리기 십상이다. 그래도 무례한 희망의 급습을 바라며 산다. 어물쩡 살다가 또 봄이 되었다. 봄이라고 꽃들이 아주 당연한 듯이 구는 게 얄밉다. 아마 태어났고, 노력하는 삶이니 화려하게 피어야 당연하다고 말하는 듯해서, 상대적으로 초라한 글러먹은 세상이 품는 못된 마음씨를 배운 모양이다. 그렇게 세상처럼 살지 말자도 하면서도, 꼭 못된 짓은 빨리 닮는다.


저마다 꽃 피기 기다리는데, 오늘도 꽃 되기는 글러 먹었다. 풍속과 온도, 습도도 글러 먹었다. 내 꽃을 위해 갖춰야 할 최소한의 환경은 오늘도 오지 않았다. 오히려 피지 않기를 바라는 어느 수상한 저주의 집단이 있는 것처럼 세상은 돌아간다. 어차피 거리에 핀 꽃들은 다 거세당한 식물이다. 세상은 꽃을 피우더라도 거세한 것만 허락한다.


오늘 내가 꽃이 되지 않아도 누군가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라고, 고돼서, 혹은 갖은 이유로 변명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진달래와 철쭉을 구별하지도 못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꽃이 오늘 아니라 내일 피면 어떻고 또 한 겨울에 피면 어떠냐고 심드렁한 표정을 지어주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꽃 되기는 글러 먹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삶의 매무새와 속의 썩어 문드러진 물컹한 안쪽이 울고 있나? 아무도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서 내가 말해야 한다. 말해야만 한다.


내가 오늘 꽃을 피우지 않는 건 세상이 글러먹었기 때문이야. 햇빛이 부족하기 때문이야. 또 너무 건조하기 때문이야. 꽃을 모조리 따 가려는 불손한 무리들의 범죄활동을 예방하기 위해서야. 아직 붉은 물이 부족하기 때문이야. 야들야들한 꽃잎에게 너무 위험한 세상이기 때문이야.

하지만 꽃을 피우고 싶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야. 어쩌면 나는 봄이 아니라 다른 계절이 피는 꽃일지도 몰라, 왜 겨울에 피는 복수초나 동백도 있고 백 년에 한 번만 피는 꽃도 있잖아. 그렇지만 실은 오늘은 꼭 내 꽃이 피었으면 했다.


실은 꽃이 내가 아니므로, 누군가 나를 눈치채 주었으면 했다. 꽃은 일 년 중 며칠만 피는데, 꽃이 져도 그 자리에 매화가 벚나무가 히야시스가 수선화가 개나리가 진달래가 나무로 있다는 걸 사계절 내내 눈치채 주었으면 한다. 세상은 늘 꽃만 기억해서 온갖 꽃 축제를 열고 꽃 대가리 따다 머리통에 얹고 춤을 추는데, 나도 그 기쁨에 일원이 되었으면 했다.


내 기쁨의 근원은 꽃이 아니고, 우리는 오늘 꽃 되기 글렀어도 여전히 굳건한 가지에 물을 올려야만 한다. 누군가의 다리 살갗을 긁지 않고도 너, 거기 있구나, 눈치채 줄 때까지 버텨야 한다. 그것이 비록 꽃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험난하고 고되더라도. 꽃을 사지 말고 잎을 사는 사람은 채소장수뿐이지만 과일이 아니면 사과나무인지 복숭아나무인지 구분도 못하는 무식쟁이 도시인이라도 괜찮다.


오늘도 꽃피우기 글렀지만 하루를 누리기엔 충분하다. 신의 손길은 바람 타고 가로로 세로로 불고 하늘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푸르게 뻗었다. 괜찮긴 하지만, 부디, 내 꽃이 내일은 피기를, 모레는 피기를, 어느 때고 피어나기만 한다면 꼭 피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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