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신도, 모도의 기억
대학생이면 여기저기 친구들과 쏘다닐 법도 했는데 왜 나는 조용했을까. 대신 빵을 전달해 주던 친구와 단둘이 여행은 두 번 갔다. 한 번은 내 고향인 동해바다였고 한 번은 인천의 섬바다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때, 우리는 김기덕 영화에 빠져있었고 김기덕 영화 『시간』의 촬영지이자 외딴섬이며 조각이 해변에 널려 있는 세 개의 섬이 나란하다는 정보를 입수했던 것이다. 마침 건너 건너 아는 집도 있었다. 운전면허도 없이 버스와 택시를 번갈아 타고, 그마저도 없는 길은 뙤약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하염없이 걸었다. 섬의 여름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렬했다. 친구는 애써 씩씩한 내 뒤에서 비척대며 붉은 원피스를 입고 느적느적 걸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샌들을 신고 있는 발이 벌겋게 익어가며 점점 느려졌다.
세 개의 섬을 걸어서 건너 다닐 수 있다는 말만 무작정 듣고 우리는 하염없이 걸었다. 당시에는 구글 지도라던지 위치 애플리케이션이 딱히 발달하지 않았을 때라, 우리는 물어 물어가고 감으로 길을 찾았다. 마당에는 선인장과 다육식물이 옥숙수키만큼 자라 있었다. 나는 제라늄과 오이가 심긴 밭 너머 어느 집 마당에 무성하게 돋아난 손바닥 선인장을 보고 낙담했다. 시원한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의 선선한 여름을 상상하던 모든 계획이 틀어져버렸다.
우리는 게다가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었다. 목이 말랐지만 김이 다 빠진 콜라 반 병이 전부였다. 낚시로 인기가 많은 곳이라고 했으니 적어도 수퍼마켓이나 식당정도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다. 버려진 그물과 찌들, 뭉개진 떡밥이 볕이 바싹 말라가고 있었다. 섬과 섬 사이를 건너는 건지 사막에서 사막으로 건너는 건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드문 드문 차가 다니는 도로 옆은 버려진 수풀과 부서진 부표가 굴러다녔다. 열기에 모든 것이 다 일렁였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걸었다. 친구의 밀짚모자는 점점 더 시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말할 기운으로 더위를 좀 더 참아내면서 굴곡진 야트막한 언덕을 넘었다. 돌담틈으로 옥수수 한 무리 떼가 집 지키는 개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옥수수를 뛰어넘어 저 편에 바다가 여름해를 거부하는 강렬한 장면이 보였다. 시간은 오후 두 시 반을 갓 넘어가고 있었다. 눈이 멀 정도의 빛, 해수면과 여름해가 만난 자리에 일렁이는 그 빛들은 마치 소금알갱이들처럼 까끌거리고 지글거렸다. 청동 조각상들이 여기저기서 녹지도 못하고 프로메테우스처럼 붙잡혀 있었다. 구경은 금방 끝났다. 우리는 불을 덜 켠 콘크리트 카페로 들어갔다. 김기덕 감독이 머물렀었다는 카페 내부는 어두웠다. 나는 그 어두움이 좋았다. 활활 타는 섬을 넘어 걸어 들어간 카페 한편 자리가 우묵하고 어둑한 것이 안식처처럼 느껴졌다.
김기덕 감독은 오미자 냉차를 마셨었다고 했다. 우리에게도 같은 것이 주어졌다. 사실 그것과 커피 두 개밖에 메뉴가 없었다. 가격은 제법 비쌌지만 달고 시원한 오미자 냉차는 눈물 날 만큼 맛있었다. 우리는 꽤 오래 내부에 머물렀다. 영화는 잊은지 오래였다. 우리는 그저 창 밖에서 서로 노려보고 있는 바다와 햇빛이 얼마나 격정적으로 해수면을 발광시키는지 오래 구경했다.
카페 사장은 우리에게 트럭을 소개해주었다. 여러 경로를 돌아 우리가 잠을 자러 가야 할 지인의 집 2층까지 갈 수 있었다. 트럭의 뒷자리는 이글거리는 볕에 한바탕 익어 있었지만 그래도 점점 저녁이 차 오르고 있어 꽤 괜찮았다. "저녁거리는 있고?" "없어요. 수퍼마켓이 있을 줄 알았는데." "고기라도 사 갈겨?" "그러면 좋죠."
우리는 트럭에 짐짝처럼 실려 운전대 안쪽에서 들려오는 고함 같은 질문에 고함 같은 대답을 질렀다. 섬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고요해지고 있었고 우리는 고함을 질러야만 머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트럭은 꼬불거리는 작은 길목을 걸어(시골 섬길의 길은 트럭도 걷게 만든다. 절대 달릴 수가 없다.) 다 허물어져 가는 한옥채 앞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한옥채는 을씨년스러울정도로 작고 퀴퀴했다. 내 품에 딱 들어오는 사이즈의 낡은 나무 간판에 양조장釀造場이라고 적힌 글씨도 갉아먹혀 있었다. 집 안쪽은 불빛 하나 없이 캄캄했다. 꼭 토굴같이 서늘하고 어두웠다. 그리고 허물어진 담에 끼어 있는 창고에 희미하게 불이 들어와 있었다. 뜬금없는 그 창고는 마치 교통사고로 창고 한 칸이 담을 들이받아 처박힌 것 같았다.
창고의 유리문을 두들기자 한참만이 허리가 잔뜩 굽은 할머니가 어렵게 걸어 나왔다. 할머니는 낡은 두건으로 머리를 두르고 오래된 앞치마를 한 채로 오랫동안 방치당한 것 같았다. 왜소한 체격과 달리 굽어있는 등에 튀어나온 꼽추 뼈와 손바닥은 크고 두툼했다. 우리는 고기를 사러 왔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대꾸도 없이 한편에 놓인 커다란 냉동고에서 비닐봉지를 꺼냈다. 얼마나 오래 거기서 얼어 있었는지 검정 봉다리 밖으로 서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냉동고 옆에는 빈 막걸리병과 주전자가 쌓여 있었다. 친구는 막걸리가 있느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여전히 대꾸가 없었다. 우리는 잠자코 냉동 삼겹살의 냉기에 의지해 기다렸다. 어둑한 집 안채로 들어간 할머니는 아무 소리도 없이 적요하게 움직여 술냄새를 풍겼다. 구수한 모주와 누룩의 향기였다.
헌 사랑채 안에서 어떻게 저런 구수한 향이 익어가는지 모르겠다. 나는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 상상과 이야기를 만들어 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친구가 감격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가 시도인지, 신도인지, 모도인지도 잘 구분이 가지 않는 어느 섬에 혼자 고요히 익어가는 술을 따르는 소리만 쪼르르, 들렸다. 어둑한 안 채에서 어떻게 그런 뽀얀 모주가 태어날 수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할머니보다 먼저 서서히 어둑한 안채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다가오던 흰 모주는 어쩐지 환영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갓 뜬 쌀뜨물같이 뽀얗고 신선한 모주를 쥔 할머니의 손이 닿았던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여름인데도 선선한 손등과 손가락의 주름 질감은 지금껏 어떤 것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느낌을 전달했다. 할머니는 다른 한 손에 검은 봉다리를 하나 더 들고 있었다. 우리는 이만 원 값을 치렀다. 생수 한 병과 모주 한 병, 냉동 삼겹살 2인분과 야채 조금이었다. 우리는 그게 비싼 건지, 싼 건지 계산할 틈도 없이 트럭이 올랐다. 친구는 갓 뜬 모주를 소중히 안고 있었다. 낮동안 익어있던 뻘건 얼굴이 조금씩 모주처럼 희어 지고 있었다.
트럭이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더위가 갑자기 가셔 멍했다. 하늘은 그새 별들이 송송했다. 어쩌면 우리는 저 산당같이 생긴 양조장을 통해 잠깐 다른 시대를 건너갔다 온 것은 아니었을까?
삼겹살은 여전히 꽝꽝 얼어붙어 있었다. 우리는 지인의 집 2층에서 조용히 고기를 굽고 몇 점도 먹지 못했다. 너무 오래 얼어 있던 삼겹살은 빳빳하고 질겼다. 여기가 섬이라서 그런가 봐, 우리 내일은 회를 먹자. 한여름인 것도 잊은 채 우리는 내일의 끼니를 약속했다.
모주는 술맛도 나지 않을 만큼 달고 시원했다. 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는 내 몫의 컵에 담긴 것을 홀짝이며 갑자기 시원해진 여름밤을 질겅였다.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섬과 여름과 허름한 양조장에 대하여. 그리고 지금은 앓고 있는 친구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