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과 멋 | 성스러운 쌀, 성미聖米

마음 가마니에 채우는 쌀.

by Ggock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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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옛날 시골 교회에는 '성미'라는 것이 있었다. 작은 화장품 파우치 크기의 가마니-그것은 틀림없는 가마니의 형상이었다. - 에 성미聖米라고 붉은 글씨가 박혀 있었다. 헌금과 함께 내기도 하고 어떤 형편이 어려운 집에서는 헌금대신 쌀을 그 가마니에 담아 성미를 냈다. 성미는 교회 안쪽에 있는 쌀독에 가지런히 부어져 비축되었다. 모인 쌀은 어려운 이웃에게 쌀인 채로 베풀어지거나 절기마다 나눔의 밥으로 익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쌀독보다 키가 작고 바닷가 시골 교회에서 천지 모르고 뛰어다닐 때, 나는 손에 무언가를 꼭 쥐고 다녔다고 한다. 엄마가 손에 뭐가 들어있냐고 물으면 손바닥을 펴서 성미 가마니에서 떨어진 쌀알 몇 개를 내밀며 자랑했다고 한다. 하도 그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교회 바닥이나 의자에 떨어진 쌀알을 주웠던 일이나 주운 쌀알의 뽀얀 빛깔이나, 그것을 입에 넣고 한참을 굴려 생쌀이 침에 불려질 때까지 머금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또, 노란빛의 성미 가마니가 쌀독에 쏟아지는 광경을 기억한다. 하얗고 반질반질한 쌀알은 꼭 진주알처럼 촤르르, 윤기 있는 소리를 내며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어린 나는 내 키보다 큰 옹기 독에 매달려 흰 빛으로 굴러다니는 쌀알에 손을 넣고 싶어 했다. 지척에 있는 해변 모래보다 굵어도 손에 닿는 촉감은 그보다 더 뽀송뽀송하고 고왔다. 그 빛깔은 시골 교회에 모이는 이웃들의 귀중한 기도였고 마음이었고 자기가 내어줄 수 있는 최고의 온정이기도 했다.


사실, 성미는 밥을 하면 그다지 찰지고 맛있는 밥이 못된다. 품종도 제각각이고 어떤 쌀은 묵은쌀이며 또 어떤 쌀은 정미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게다가 쌀독의 아래로 갈수록 오래 짓눌린 쌀이어서 아무리 숨 쉬는 옹기 항아리여도 아래로 갈수록 쌀맛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러 집에서 각자의 사정을 담은 채로 모인 성미로 큰 솥에 지은 밥은 좀처럼 솜씨 좋은 당번이 담당해도 맛을 맞추기 어렵다. 하지만 그 쌀밥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별로 넉넉한 반찬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절기마다 내놓은 쌀밥을 두 번, 세 번씩 가져다 먹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린 나는 어쩌면 성미로 지은 밥이 '가나의 혼인잔치 포도주'-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기적 중 하나로, 가나Gana 지역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가 된 기적이다. - 와 같은 신령한 솜씨가 베풀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도시 교회에선 성미가 그다지 애정있는 제도가 아니었다. 쌀독은 옹기 항아리가 아니라 플라스틱 통이나 재활용 천가마니 같은 곳에 담겼다. 쌀밥에 미련 있는 사람도 많지 않아 쌀은 늘 남았다. 나는 쌀에 기도와 정성을 담지 않는 세련됨이 서운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렇다는 게 아니고, 번듯한 지폐가 들어간 종이봉투보다 내토록 쓸 수 있는 천으로 만든 작은 성미 가마니에 쌀이 들어가 볼록해진 모양새가 훨씬 복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성미 가마니가 비워지고 난 뒤에 그 가마니 가득 축복이 베풀어질 것만 같은 뜬금없이 따뜻한 기대도 있었다. 양손으로 받들듯 쥔 성미 가마니의 쌀알만큼 미천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우리의 일생이나 엄청난 대의의 기도 따위는 넘볼 수 없는 작고 사소한 쌀알 같은 기도들이 떼굴 떼굴 뽀옇게 굴러 신의 앞까지 당도한다는 사실이 어쩐지 눈가를 시큰거리게 만들기도 했다.

내 기억 속에 있는 '성미를 든 여인들'은 성경이야기에서 들은 소박한 여인들의 모습이거나 베르메르의 그림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의 무드를 가지고 있었다. 허름한 옷을 입었지만 작고 영롱한 진주 귀걸이를 가진, 그만큼 뽀얀 마음과 기도를 가진 사람들.


교회의 쌀알에 여인들만 관여된 것은 아니었다. 도시의 작은 개척 교회의 이웃은 가난하고 늙은 이웃이 꼭 있었다. 특히 할아버지들은 '혼자 남은 생을 버텨낸다'는 듯이 살면서도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올 때만큼은 꼭 새로 세탁한 옷을 입고 근사한 자신을 잃지 않았다. 교회는 유일하게 다정한 밥친구가 있는 곳일 때가 많았고 부엌은 오래전 중세의 교회가 그랬듯이 먼저 덜어 놓은 반찬을 꼭 들려 보내곤 했다. 그러면 할아버지들은 꼭 겸연쩍은 얼굴로 소중하게 반찬을 쥐고 총총거렸다. 나는 그 뒷모습에서 자주 목구멍이 졸리는 듯한 먹먹함을 느꼈다. 어떤 사랑은, 가득 입에 문 밥 한 숟가락처럼 이렇게 먹먹하고 목이 메인다.

할아버지는 기초 수급자였다. 낡은 옷이라도 깨끗하게 다려 입고 와서 살림의 누데를 티 내지 않았다. 일주일 만에 여러 사람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이따금씩 흥분해 옛날이야기를 장황히 늘어놓기도 했다. 때때로 난처했고 또 재미있었다. 성미를 포함해 교회의 쌀로 차려진 밥상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베풀어지는 온정이었고 모두가 마음 넉넉히 굴었다. 튕기지도, 마음 곱게 먹지 않지도 않았다. 할아버지는 일 년에 한 번씩 쌀가마를 들고 왔다. 기초수급자에게 배급되는 정부미였다. 혼자 버텨내듯 살아서, 그다지 쌀이 줄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10킬로짜리 성미였다. 헌금을 내는 일이 적은 할아버지 마음의 빚이었을 것이고 밥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밥 한 공기의 온정이었을 것이다. 교회는 마다하지 않았다. 대신 김장철 김치나 명절 떡이나 그 밖의 가마니에 넣을 수 없는 시간과 마음을 채워주었다.


도시의 교회는 시골의 교회보다 의외로 훨씬 형편이 어려웠다. 성미가 점점 잊혀지는 것과 함께 도시의 교회는 밥친구가 되어 줄 기회도 잃고 쌀밥으로 이웃과 함께 시간을 나누기도 어려웠다. 쌀을 비롯해 굳이 재화가 아니더라도 형편과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때와 너무 멀어진 것만 같았다. 텅 빈 쌀독과 텅 빈 사람들 자리는 논밭을 밀고 들어선 미분양 상가건물처럼 삭막하고 냉정한 입맛이었다.

형편이 조금 좋은 교회에서 연말에 쌀을 샀다. 사정이 좋지 않은 텅 빈 도시 교회에 선물과 함께 한 가마니씩 성미로 들어갔다. 쌀 소비도 줄고 모이는 사람도 적은데 무슨 소용인가 싶어도, 실은 다들 알고 있었다. 그것은 쌀이 아니라 성미, 성스러운 쌀이고 기도이고, 생쌀알떼같은 우리네 삶이 굶주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쌀밥을 지어먹으니까, 쌀밥같이 굴자는 목 메이는 흰 마음이다.


가끔 성미를 나누어 먹었던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온다. 졸지에 고아가 되어 쌀밥과 반찬을 몇 년씩 타먹은 사람도 있고 일주일 한 번씩 밥친구를 하다 먼저 하늘로 간 이웃의 아들 딸도 있다. 잘 되어서, 잘못되어서, 어쩌다, 멀어진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그들이 잊지 않고 가끔 연락하는 것은 아무래도 성미로 지어먹은 밥을 나누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가끔 『최후의 만찬』이 아니라 『매주의 쌀밥』을 나누던 그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고된 일주일을 보낸 뒤, 빈 주머니 대신 밥 한 끼 먹을 만큼의 쌀 한 줌을 덜어 오던 사람들의 손을 떠올린다. 배운 데 없고 적을 둔 데 없어도, 쌀밥 지어먹는 삶이 거기에 있고 삶을 향한 간절함이 그곳에 있다. 끼니의 가장 밑바닥, 쌀에 성스러움이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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