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빵, 빵 1
쌀과 밀의 문제가 아니다. 밥이 주식인 나라에서 쌀은 '음식'의 반열에 올라 있지만 밀과 빵은 '간식'의 자리가 더 친숙하다. 강원도 바다 자락에서 나고 서해 바다 자락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쌀의 사람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빵의 사람이기도 해서 밥과 쌀의 이중국적자가 되었다.
빵에 대한 소문은 익히 옛날부터 들어왔다. 크림과 과일 따위의 달콤한 것들과 친한 사이인 빵에 대한 소문은 아이들에게는 '헨젤과 그레텔'의 마녀의 집 같은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빵, 하면 디저트를 먼저 떠올리고 카페에 가면 커피보다는 디저트가 중요한(단순히 입가심으로 전락하는 커피의 권위!) 세대다. 버터와 설탕이 들어간 파티지에르, 달콤한 빵이 바로 '빵'의 정체성이라는 소문을 물리치고 딱딱하고 소금간이 들어간 밥형 빵의 실체를 언제 알게 되었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빵의 사람'들이 늘 내 주위에 있었다,
나에게 시를 가르친 세 명의 스승이 있었다. 한 명은 파계승이고 한 명은 아프리카의 소식을 풍선처럼 매달고 떠다니며 사랑을 건져내는 시인이었고, 한 명은 보들레르를 읽게 한 빵의 사람이었다. 스승은 우리를 가르치는 중에도 다른 대학의 프랑스어과를 다니며 불어를 익히는 중이었고 우리에게 보들레르 전집을 읽고, 낭독하고 필사히게 했다. 우리의 수업은 축축하고 냉기도는 지하층의 작고 외진 교실이었다. 열명 남짓이 들어 찬 작은 교실에서 그러나 우리끼리 참으로 행복했던 것은, 후미진 곳에서 피어나는 보들레르 시의 감흥과 각자 쓴 시를 교환해 읽고 서평 하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눠 마시고 먹던 음식에 있었다.
스승은 수업에 혹독한 인상은 남기지 않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는 샐러드빵이나 와인을 가져와 함께 나눠 먹고 마시며 시를 읽게 했다. 우리는 제습기의 윙윙 거리는 큰 소리를 들으며 종이컵에 싸구려 와인과 스승이 만들어 온 빵을 먹으며 『악의 꽃』을 다 읽었다. 스승이 먼저 선을 보이자 둘러앉아 수업을 듣던 학생들도 가끔 먹고 마실 거리들을 챙겨 왔다. 시를 배우기 전에 요리를 배웠던 언니는 김치통에 한가득 잔뜩 감자샐러드를 해 오기도 했고 각자 프랑스 빵집에서 맛있다는 바게트나 버터를 사 왔다. 나는 종종 시드르(사과주)나 싸구려 마트 와인을 사들고 가거나 원두커피를 내려갔다. 음료 담당인 셈이다.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 핵심은 바로 거기에 있다. 이것이야말로 그대의 어깨를 짓누르고 그대의 허리를 땅으로 굽히게 하는 무서운 시간의 중압을 느끼지 않게 하는 유일한 과제이다. 쉬지 않고 취해야 한다.
무엇으로냐고? 술, 시, 혹은 도덕, 당신의 취향에 따라. 하여간 취하라.
Il faut être toujours ivre. Toue est là : c'est l‘unique question pour ne pas sentir l'horrible fardeau du Temps qui brise vos épaules et vous penche vers la terre, il faut vous enivrer sans trêve. Mais de quoi? De vin, de poésie ou de vertu, à votre guise. Mais enivrez-vous.
(샤를 보들레를Charles Pierre Baudelaire, <취하시오Enivrez-vous> 중)
우리는 보들레르의 조언대로 늘 취해 있었던 것 같다. 보들레르의 퇴폐적 낭만과 미식으로 취해 있었다. 그때 우리는 서울 등지에서 드물게 자리 잡고 있는 몇몇 '진짜 빵집'의 장소를 공유했다. 그러나 나는 프랑스의 블랑제리보다 독일빵이 더 좋았다. 더 구수하고 더 거칠고 더 치밀한 빵이다.
독일문화원 로비 매점에서 팔던 브로트Brot는 아주 내 입맛에 딱 맞았다. 저녁 수업 들어가기 전, 매점이 문 닫을새라 뛰어가 샀던 캐제브로트Käsebrot 와 슁켄브로트Schinkenbrot는 먹어도 먹어도 늘 더 먹고 싶은 것이었다.
절친한 친구는 마침 독일식 빵집 근처에 살았다. 친구는 학교에 올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Käsebrot를 두 개 사서 종이봉투에 잘 싼 다음, 내가 수업을 듣는 교실 층의 비상구 계단에 숨겨 놓았다. 인문대 비상구 계단의 층과 층 사이, 창문 문턱 한켠은 그 친구 덕분에 먼지 없이 깨끗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그 장소가 친구와 나의 비밀 교환처였던 것이다. 친구는 종종 당근이나 방울토마토 같은 생야채를 같이 넣어주었다. 약속한 시간이 되면 나는 옥타비오 빠스를 읽다가, 랭보를 읽다가, 릴케를 읽다가도 몰래 나가서 비상구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비상구계단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얼른 창문틀 틈에 끼어 있는 갈색 종이봉투를 집었다. 너무 배가 고픈 날에는 그대로 비상구 계단에 앉아 빵을 해치웠다. 딱딱하고 간간한 빵 사이에 에담Edam치즈 한 장이 끼여 있을 뿐인데 그 심플하고 고소한 맛은 좀처럼 쉽게 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빵봉투를 회수하고 같은 자리에 다른 음식을 놓아두었다. 역류성 식도염이 있는 친구를 위해 만든 마죽이나 마전, 가끔은 샐러드거리나 코코넛으로 만든 비스킷 따위였다. 서로 공부하기 바빠 일주일에 한 번 얼굴을 볼까 싶었던 시기였지만 친구가 끼워 넣었던 독일빵은 친구의 마음만큼 고소하고 따뜻했고 온갖 지식을 집어넣느라 단내 나던 입안을 채워주던 소중한 양식이었다.
친구는 내가 독일행 비행기를 타던 날 공항까지 찾아와서 울었다. 그리 오래 있다 올 것도 아니었는데, 그것에도 친구는 아쉬워했다. 나는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친구가 늘 사다 주었던 케제브로트Käsebrot를 찾았다. 그것은, 너무 흔한 것이었다. 나에게는 흔치 않았던 것이 여기에서는 발에 차이도록 많았다. 이상하게도 조금 상실감이 들었다.
나는 어떤 마음에서인지 케제브로트Käsebrot를 사 먹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나에게는 유일했던 친구 마음의 원형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대신 나는 호박씨가 위에 뿌려진 프레첼과 삼각형 모양으로 구운 라우겐에겐Laugeneken을 사먹었다. 집 근처에 문 연 새 빵집에서 아침마다 50세트에 팔던 것이었다. 나는 학교에 가는 길에 들어 50센트짜리 호박씨 프레젤과 50센트짜리 커피를 사 먹었다. 갓 구운 호박씨 프레젤은 호박씨가 반들반들해 질때까지 구워져 호박씨 기름이 프레첼 표면을 덮었다. 짭조름하고 고소한 프레첼은 씹으면 씹을 수록 더 고소했다. 빵집 주인은 하루고 거르지 않고 아침을 사먹는 나를 위해 가끔 치즈를 조금 올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 그 빵집이 오픈 할인을 끝내고 가격을 올리자 그 뒤로는 사 먹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독일은 빵이 주식인 나라고, 어디나 빵이 있었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형편이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저렴한 빵이 있었고 같은 빵이라도 지역에서 유명한 베커라이의 것은 더 맛있고 비쌌다. 나도 어느 날은 15센트짜리 마트의 브뢰첸Btöchen을 사 먹다가도 어느 날에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저명한 베커라이의 빵집에서 6유로짜리 메어콘브로트Mehrkornbrot를 사먹었다.
그리고 오후 4시쯤이 되면 빵집이 문을 닫으며 남은 빵을 자루에 담아 내놓았다. 노숙자들은 자루의 빵을 무상으로 얻어먹었다. 아무도 자신이 3-4유로에 주고 산 빵이 4-5시간 후에 무료로 풀리는 것에 불만을 갖지 않았다. 상대적인 경제원리와 나눔의 정서 가운데 주식인 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심지어 자루에 담긴 빵은 하루 뒤 아침에 공원의 새들에게 뿌려진다. 공원과 호수의 환경 담당자는 하루 전날의 빵이 담긴 빵자루를 들고 새벽에 등장한다. 벌써부터 오리나 거위, 비둘기, 갈매기들이 빵자루를 쪼아대며 뒤따르는 모습은 정말로 어느 유럽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장면 같다. 졸린 눈으로 적당한 자리에 자리 잡은 담당자가 빵자루를 열어 전날의 빵을 아무렇게 뜯어 뚜리면 이름 모를 새들이 달라붙어 빵을 쪼아 먹었다. 덕분에 호수에 살던 백조는 <백조의 호수> 발레에는 절대 등장할 수 없을 만큼 육중하고 비대해져 있었다.
아침 조깅의 백미는 바로 그 장소에 있었다. 새들도 먹어도 될 만큼 조미가 되지 않은 딱딱하고 건강한 빵, 흔한 빵, 새들과 나눠먹는 주식인 빵이 아침 햇살 아래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까지 구경하는 것만큼 낭만적인 게 없었다.
-빵빵빵 2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