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고 말간 두부의 빛
동해 겨울바다를 마주하고 태어난 나에게 흰 빛은 두 가지였다. 차가운 소금밭같이 쌓이는 흰 눈과 모락모락 흰 김이 올라오는흰 두부. 두 흰 빛은 강릉과 주문진의 겨울에서 배우는 하얀 절경이었다. 두부는 값싸고, 쉽게 구해지는 것이었고 대단한 요리가 필요없는 쌀밥 같은 것이었다. 겨울에 눈이 내리는 것같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두부가 특별한 식재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고향에서 떠나 사는 지금, 숱한 두부 전문점과 마트의 두부를 보며 샐쭉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두부 요리가 나오기만 하면 늘 과식을 하게 된다.
두부는 특별한 공장이나 작업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집에 딸린 헛간이나 비닐하우스 같은 작고 옹졸한 장소에서 들끓었다. 해가 아직 뜨지 않은 한겨울에도 어느 집 뒷마당이나 밭 한 쪽에서 고소한 김이 피어오르면 거기가 두부를 끓이는 곳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숨두부라고 불렀다. 평양사람이던 외조부도 그렇게 불렀고 평양서 내려온 자들이 터를 잡은 아바이 마을 근처에서도 그렇게 불렀고 그들 덕분인지 아니면 지역 방언인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숨두부라고 불렀다. 아직 틀에 넣지 않은 몽글몽글한 두부는 꼭 숨 쉬는 것 같이 김을 내뿜었고 한 숨 자고 방금 일어난 아이의 체온같은 따끈함이 있었다. 어쩌면 고 뽀얗고 곤한 숨이 하얗게 굳으면 꼭 저럴 것 같았다.
부들 부들하게 흔들리는 숨두부는 틀에 넣기 전에 먼저 한 바가지 떠서 뚝배기에 담고 물을 조금 더 넣고 끟이다 볶은 김치나 깨간장을 올려 먹었다. 숨두부는 특별한 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술술 들어갔다. 나는 양념도 하지 않은채로 바가지로 떠 놓은 숨두두를 호록, 마시는 걸 좋아했다. 짭자름하고 고소한 물에 숨두부 덩어리가 크게 들어와도 혓바닥으로 입천장을 한 번 눌러주면 금새 입안에서 으스러져 녹았다. 목구멍에 뜨끈한 숨두부가 넘어가면 영하로 내려간 한겨울 아침에도 저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틀에 굳혀 나온 두부는 하루를 넘긴 적이 없었다. 바닷물 간수와 밤새 불린 콩으로 만든 두부는 그 날 만들어 그 날 먹었다. 바다가 매일 다르고 파도도 매일 다른 것처럼 두부도 매일 새롭게 끓였다. 하루 넘긴 두부는 가끔 들기름에 통째로 구워 할아버지들의 막걸리 안주가 되었다. 나는 술을 먹지도 않으면서 들기름과 산초가루를 뿌려 구운 두부를 좋아했다. 낮은 온도의 들기름에 노릇하게 튀겨진 두부의 겉은 쫄깃하기도 하고 바삭하기도 해서 바깥만 뜯어먹다가 나중에 부드러운 속살이 나오면 그 때서야 간장양념을 찍어 먹었다.
두부를 만드는 할머니들은 피부가 하얗고 고왔다. 팔십이 넘는 할머니들도 퉁퉁 불은 손이라도 콩을 불리고 두부의 김을 쏘인 얼굴은 잡티 없이 뽀얗고 맑았다. 그래서 나는 두부의 흰 빛이 정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할어버지들이 난폭하게 굴어도 술주정을 하고 살림을 박살내도 새벽마다 두부를 만들던 할머니들은 끝까지 곱고 희었다.
인천이라도 두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서해바다를 낀 장소의 두부는 맛이 달랐다. 수돗물도 그냥 입대고 마시던 고향과 달리 물맛도 달랐고 풍경도 달랐지만 가장 달랐던 것은 두부였다. 두부는 이상하게 숨이 들어 있지 않았고 플라스틱 용기에 넣은 조막막한 제품은 터무니없이 비쌌다. 동네 야채상에서 파는 손두부에도 숨은 들어 있지 않았다. 비린 맛이 난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콩비린내를 배웠다.
도시의 두부는 숨두부를 거치지 않는 듯 했다. 짭자름하게 끓은 물 속의 숨같이 들어 있는 숨두부 없이 만들어진 두부는 딱딱하고 쉽게 뭉개지지 않았고 그리고 비렸다. 나는 두부의 숨을 무시한 두부의 맛을 도무지 인정할 수 없었다.
숨없는 두부를 먹고 살던 즈음, 계간지「창작과 비평」에 실린 구효서 작가의 <소금 가마니>를 보았다. 좋아하던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가 등장하는 것도 좋았지만 내가 잘 알고 있는 두부에 대해 나오는 게 좋았다.
집에는 세 개의 소금가마니가 있었다. 언제나 세 가마니였다. 부엌 뒤쪽 어두운 헛간에, 그것은 반걸음의 간격을 두고, 신방돌 모양의 단 위에 나란히 모셔져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뱃구레가 꺼지는 그것은, 높이로 보나 좌대 위에 놓여 있는 모습으로 보나 영락없는 삼존불이었다. 그래서 모셔져 있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있던 것이다. 때로 새로운 소금가마니로 바뀌긴 했지만 내 눈엔 그것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각각의 소금가마니 밑에는 흰 사기보시기가 놓여 있었다. 사기보시기 안으로 누런 간수가 뚝뚝 떨어져내렸다. 헛간은 늘 어두웠다. 장독대 밑을 흐르는 수맥이 헛간을 관통하고 있어서 습기로 가득했다. 장마철이 아니어도 소금가마니는 잘 녹아내렸다. 눈물처럼 간수를 흘렸다. 쌀가마니와는 달리 소금가마니는 묵은 짚으로 성글게 짠 것이었다. 간수는 어둠과 습기를 한껏 빨아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거였다. 간수는 누구나 좋아하는 맛있는 두부를 만들어냈다. 특히 어머니가 만든 두부는 근동에 유명했다. 가족을 먹여 살린 것은 어머니의 두부였다. 서늘한 어둠과 츱츱한 습기, 그리고 적막. 어쩌다 헛간에 들어가면 그 수꿀한 기운이 목덜미를 기분 나쁘게 핥았다. 한동안 어둠과 습기에 꼼짝없이 붙잡혀 오스스 떨다 온힘을 다하여 냅다 뛰쳐나왔다. 짜고 쓰디쓴 간수는 그런 헛간에서 나오는 거였다. 그런 간수가 매번 따뜻하고 고소하고 말랑거리며 하얗고 맛있는 두부를 만든다는 사실이 내겐 신기했고 요상했다. 염천에도 소름이 돋는 헛간. 찌는 더위를 피해 들어갈 법도 했지만 식구들은 좀처럼 그곳을 드나들지 않았다. 어머니만의 피서장소였다.
어머니는 난리 뒤에도 두부만 만들었다. 나무 함지에
콩을 불리고, 밤새워 맷돌을 돌리고, 간수를 부어 가마솥에 끓였다. 삼발이 위에 널판을 얹고, 숨두부 가득 든 마대자루를 눕혔다. 겉모양을 내기 위해 스무 개의 연꽃무늬 와당을 마대자루 위에 나란히 엎고, 다른 널판을 덮은 뒤 맷돌로 눌렀다. 어머니는 잠자고 일어나 아
이에게 젖을 먹이고 두부를 만드는 게 일이었다. 숨쉬는 일처럼 묵묵히.
-구효서 <소금 가마니> 중-
우리 집에도 작은 소금 가마니가 있었다. 동해와 남해 근방에서 얻어온 소금을 가마니채로 받쳐 놓고 간수를 오래 빼었다. 간수가 빠진 소금은 희고 달았다. 나는 소설을 통해 두부와 간수의 관계를 배웠다. 두부의 흰 빛은 소금의 흰 빛이고 소금의 흰 빛은 바다의 흰 빛이라는 것도 깨우쳤다.
소설을 읽은 후에 엄마와 함께 강릉을 찾아갔다. 아직도 그 곳에 살고 있는 아빠의 제자는 두부를 만들어 파는 장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고 매일 아침마다 갓 만든 뜨뜻한 숨두부를 먹는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희고 고운 두부빛이 서린 자신의 장모님을 자랑했다. 나는 그걸 귀담아 들을새도 없이 제대로 숨들여 나오는 두부를 허겁지겁 먹었다. 허겁지겁 두 모를 다 먹어도 그 두부는 체하지도 않고 꿀떡 꿀떡 다 내려갔다.
그 다음 해에도 엄마와 함께 또 강릉을 찾았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마을 어귀와 해변이 온통 희었다. 우리는 다리 무거운 줄도 모르고 주문진으로 걸었다. 내가 태어난 작고 허름한 2층집 근방이었다. 아직도 1층에 있던 꽃집이 그래로고 낡은 건물은 더 낡았고 눈도 그 때만큼 많았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들어가는 한 아주머니가 우리를 보고 멈췄다. 우리는 잠깐 뜸을 들였다. 그리고 성큼 성큼 다가갔다. 엄마와 아주머니는 반갑게 껴안았다. 내가 아직 어릴 시절, 나를 알던 사람이었다. 나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낡은 옷으로 추위를 막으며 걷던 아주머니는 내 아이일 시절을 기억하며 눈시울을 붉혀주었다. 나는 자랐고 아주머는 낡았다. 나는 조금 미안한 마음에 언 발을 꼼지락거렸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주머니를 뒤져 오만원권을 건네 주셨다. 한사코 거절하는 엄마와 민망해하는 나를 두고 황급히 도망가는 아주머니를 붙잡지 않았던 것은 환하게 웃던 흰 빛 때문이었다. 그 분의 형편에 오만원이면 일주일도 넘게 살 수 있는 금액이지만 어린 시절 숨두부를 끓여 호호 불어 먹던 말랑한 기억이 그만큼 소중했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아무것도 모르고 두부나 받아 먹던 나에게 그만한 정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와 나는 오만원으로 곰치국과 숨두부를 아침으로 먹었다. 그래도 돈이 남았다. 나는 그 날 눈내린 바다에서 밀려오던 간수를 기억한다. 희게 부서지는 파도에 슬금슬금 녹아내리던 눈밭은 간수를 내리는 소금가마니 같았다. 내 고향은 거대한 소금 가마니를 가지고 있구나, 거기서 나는 간수로 밤새 불린 콩을 맷돌에 갈아내는 힘이 태어난다.
습기에 숨이 막히기 시작하면 <소금가마니>의 간수가 흘러나오는 헛간을 떠올린다. 내 고향의 거대한 소금가마니와 다른 고단한 두부의 흰 빛을 떠올린다. <소금가마니>의 어머니는 고단한 일생의 간수로 두부를 끓여내는 삶을 살았고 우리네들의 어머니들이 그랬으며 또한 내 고향이 그랬다.
고향에서는 끓는 콩물에 간수를 넣는 걸 '숨 돌린다.'고 부른다. 두부의 흰 빛이 나오는 순간이다. 습기에 몸이 불어 간수가 흐르는 계절을 살고 있더라도, 그 순간에 드는 숨을 놓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흰 두부의 빛은 간수가 드는 순간, 고단한 삶이 맛있어지도록, 몽글몽글해지도록 울음 참는 날이 있다면 두부를 먹자. 숨두부를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