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과 멋 | 철마다 잘 살구, 살구.

제철 살구로 오는 친구의 편지

by Ggockdo



제철 음식은 잘 살라는 자연의 정기구독 메시지이다. 요리 연구가 임지호 선생님은 제철음식이 제철에 필요하기 때문에 내 주변에서 자라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제철 음식을 지나치면 나에게 자연이 매년 보내는 올 해의 정기구독 응원 메시지를 읽지 않은 것 같아서 이상하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나에게, 자연에게, 또 사는 일에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 제철엔 꼭 제철을 읽고 넘어가야 한다.


수많은 제철 음식 중, 유별나게 꼭 먹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살구'열매다. 살구는 참 모호한 것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오는 소식인 딸기, 여름이 보내는 응원인 수박과 옥수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자두나 포도, 사과와 같이 또렷한 맛과 색을 가지고 있지 않다. 게다가 단단하지 못하고 금방 물러 버리는 가냘프고 순한 맛은 흐리멍텅한 제철 음식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처음부터 생살구를 즐겨 먹은 것은 아니었다. 제철이 아닌, 말린 살구부터 맛을 알기 시작했다. 말린 살구는 건포도나 크렌베리처럼 옹졸하게 작지 않고 건무화과처럼 씨가 씹히는 번거로움이 없는 말갛고 깨끗한 인상을 가졌다. 씨를 빼고 통으로 말린 쫀득한 건살구는 통통한 육질을 가지고 있어서 씹는 맛도 충분하고 달기도 적당했다. 이에 당분이 닿아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는 건포도 같이 않게 대담한 육질과 온순한 단 맛을 가졌다. 말리면 대부분 주름이 지는 과일들과 달리 건살구는 주름도 많지 않다.

건살구는 두 개만 먹어도 배가 금방 불렀다. 가격이 아주 저렴하지는 않아도 한 주먹씩 먹어도 배가 고픈 건포도와 달리 살구는 두어 개만 먹어도 포만감이 컸다.


나에게 고급 초콜릿에 버금가는 사치품이던 건살구는 늘 터키 상점의 물건이었다. REAL마트(코스트코와 같은 단독 건물의 대형 마켓)의 1층에는 터키 부부가 운영하는 반찬가게가 있었다. 건살구가 주종목은 아니었다. 애초에 과일은 그다지 즐겨 취급하지 않는 곳이다.

가장 인기가 많은 반찬은 갖가지 종류의 올리브 절임이었다. 까만 올리브, 초록 올리브, 알이 큰 것, 작은 것, 페타 치즈가 섞인 것, 딜과 바질이 섞인 것, 후추와 양파가 섞인 것, 작은 청어가 함께 섞인 것 등, 올리브 코너는 늘 북적였다. 올리브 절임은 투명한 가판대 아래에 아이스크림처럼 큰 박스에 가득 담겨 있었고 그 앞은 늘 기름으로 번들거렸다. 바로 옆 가판대는 짭자름한 간식이 될 수 있는 반찬을 팔았다. 고추와 케이퍼가 들어간 매운 캐슈넛 볶음이나 마늘과 함께 익힌 새우 절임 따위를 무게로 달아 팔았다.

그리고 계산대에 가까운 작은 가판대에 말린 과일과 달짝지근한 간식을 팔았다. 호두를 넣은 곶감처럼 아몬드를 가운데 넣은 대추야자는 가장 인기 있는 간식이었다. 그 집의 대추야자는 유독 달았다. 피스타치오와 몇 가지 기성 제품들이 촘촘하게 쌓여 있는 코너에서 대추야자가 가장 큰 위용을 떨쳤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잘 나가지 않아 조금 뻣뻣하게 말라 있는 건살구가 있었다. 터키 주인 내외는 건살구에 인심이 후했다. 애초에 사가는 손님도 없고 그 가게에서 가장 존재감이 희미한 나머지 주인내외도 자주 잊어버리는 품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검고, 번들거리고, 향이 강한 상점의 모든 물건들 끝에 고아하게 혼자 은은한 색채로 자리 잡고 있는 건살구가 늘 한눈에 보였다. 유달리 통통하고 껍질은 조금 말라 있는 건살구가 과연 터키의 물건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짭잘하고 달콤한 개성 강한 반찬과 함께 진열되어 있는 밍밍한 색의 살구는 가끔 꿰다 놓은 보릿자루같이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그 살구에서 내 마음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터키사람도 이방인이고 나도 이방인인데, 그중에서도 내가 훨씬 더 이방인인 마음. 개성 강한 향을 풍겨내는 터키의 짜고 단 반찬과 달리 혼자 밍숭한 색을 내고 구석에 끼여 있는 살구는 내 피부색과 비슷했고 묵묵했고 그러나 통통한 육질을 가진 것처럼 나름대로 단단한 내면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달에 한 번, 정작 마트 안에는 들어가지도 않으면서 Real 마트 1층 로비에 있는 터키상점의 살구를 샀다. 터키 주인 내외는 내가 살구 사는 것을 좋아했다. 아마 그 가게의 골첫거리를 처리해 주는 게 고마웠던 모양이다. 가끔 안에 아몬드가 들어간 대추야자를 하나씩 서비스로 주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대추야자를 그 자리에서 먹고 건살구는 종이봉투에 담아 집까지 걸어갔다. 1시간가량 걸리는 거리를 걸어야만 내 입 안은 대추야자의 단 맛을 겨우 지워냈다. 그래야만 건살구를 먹을 수 있었다.


건살구는 씹자마자 바로 맛이 느껴지는 친절한 과일은 아니다. 건포도나 건자두는 봉투를 열자마자, 입 안에 넣자마자 강하게 '나, 포도!, 나, 자두!'를 외치는데 살구는 유독 조심스럽다. 나는 예의 있는 살구의 맛이 참 좋았다. 살짝 새콤하고 달달한 맛이 나지만 적어도 다섯 번 이상은 씹어야 살구 특유한 향이 올라오는 이 젠틀한 맛의 과정이 좋았다. 입 안에 들어와서 다 삼켜버리기까지 건살구가 내 입에서 천천히 침을 흡수하고 잘게 쪼개져 충분히 불어나 맛을 내고 목구멍으로 들어가 버리는 과정이 제법 긴 것도 좋았다. 꼭 인내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때로는 건살구를 씹어 삼키는 것만큼 인내가 달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씹었다.

한강진 근처, 언덕길에 작은 카페가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아련한 곳이다. 카페의 양 옆에는 큰 살구나무가 있었다. 나는 우연히 6월 말, 언덕베기 중간에 수줍게 감춰져 있는 카페 창가에 앉아 때 이른 열기에 뭉그러진 낙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들은 살구였다. 낭창하게 떨어져 짓무르고 아스팔트에 짓이겨진 살구는 한창 뜨거운 오후 두 시의 햇볕에 지글거리며 상큼하고 단 내를 풍겼다. 나는 내가 커피를 마시고 있는지 살구를 마시고 있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생 살구는 건살구보다 훨씬 강렬하고, 연약했다. 카페 앞과 옆, 할 것 없이 사방이 짓무른 살구 천지였다. 살구들은 이상한 방식으로 나를 가두는 결계를 쳤다. 열린 창 밖, 바람도 한 점 없는데 살구향이 밀려 들어와 코피가 날 것 같았다. 나는 헛 아지랑이를 보았다. 벌건 대낮에 함부로 밀려드는 저 질퍽한 결계가 나를 여름으로 이끌었다. 이제 여름이구나. 살구나무 잎이 저렇게 푸르고 무겁게 휘정거리고 다 익어버린 살구가 하염없이 뚝 뚝 떨어져 내려 얼룩지는데, 어느 철이기에 계절은 이리도 잔인하게 살구를 살라버리고 있는 것인가. 내가 기억하는 살구의 연한 맛과는 다르게 제철의 살구는 이렇게까지 저돌적이고 폭력적이다.


언젠가, 가장 친한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나의 건살구에 대한 독특한 애정과 함께 생살구로 넘어가 여름이 슬슬 오기 시작하면 살구를 꼭 먹어야 한다는 것, 생살구를 발견하면 만 원어치 사서 살살 잡고 반으로 쪼개 갈라 먹는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제 살구는 5월 말부터 6월이면 다 나와버린다. 제철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고 살구는 그 여름의 낙과보다 더 단단하고 덜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어느 날, 집으로 택배가 하나 도착했다. 살구 두 팩이 들어 있었다. 농장에서 직접 올라 온 살구는,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보낸 것이었다. 살구는 아직 탱탱하고 단단하고 가느다란 솜털이 있어 보드라웠다. 나는 살구를 나무 쟁반에 담아 거실 한복판에 놓아두고 공들여 아껴 먹었다. 친구의 마음이 내 마음에 이상한 결계를 쳤다. 이제부터 몰아 쳐 올 한여름의 난폭한 일들을 미리 막아주는 최전방을 꾸렸다.


몇 해 째, 올해도 어김없이 살구가 왔다. 나는 무척 지쳐 있었다. 글이 이렇게 어려울 수가 없는 때였다. 계절 감각이 없어질 만큼 고민한 날들 끝에 살구가 왔다. 살구는, 잘 살라는 말로 왔다. 친구는 몸이 아팠고 우리 모두에게 잘 살자는 말만큼 할 말의 전부인 게 없었다. 조금 일찍 수확한 살구는 그동안 온 살구들 중에 가장 알이 작았고 후숙 해 먹으라는 농장주인의 메모가 첨부되어 있었다. 나는 살구들을 나무 쟁반에 옮겨 담아 언제나 그렇듯이 거실 한복판에 놓았다. 떼굴 떼굴한 살구알이 옹기종기 모여서 눈물겨웠다. 몸이 아픈 친구가 잊지 않고 보내준 살구는 이제 괜찮으니 잘 살자구, 라는 말로 읽혔다.

살구같은 우리, 무르고, 작고, 올해 유난히 작은 살구같은 우리, 여름 오기 전에 제철의 축복을 나누자는 말로 읽혔다. 나는 살구 두 개를 씻어 반을 갈랐다. 단단한 씨를 빼내고 꽤 두꺼운 육질을 씹었다. 생 살구의 육질은 도톰하지만 부드럽고 예의 있게 서서히 내 입 안을 상쾌하게 점령했다.


생 살구를 꼭 먹어야 하는 이유는 사실 대단치 않다. 한여름이 오기 전의 말이라서 그럴 뿐이다. 너무 더워지기 전에, 미리 오는 안부와 걱정이라서 그렇다. 누군가는 설익은 자두나 설익은 매실같이 밍밍한 맛이라 제철을 쉽게 잊을 수도 있지만, 살구, 잘 살라는 당부로 오는 친절한 걱정을 먹지 않으면 예정된 무더위를 어떻게 인내하겠나.


올 해의 살구. THANKS FOR KJ.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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