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편찮으실 때부터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예대 문창과를 나오고 33년 만에 방통대에 편입했다. 국문과로.
재미가 있었다. 공부에 대한 목마름도 있었고.
3학년 때는 스터디를 했고 4학년때는 성적관리를 해서 성적이 그런대로 잘 나왔다. 마지막 학기가 제일 좋았으나 대학원 입시와 맞물려 4학년 1학기 성적이 반영되었다. 과제를 해놓고 참고문헌 수정하느라 늦게 보내서 창이 닫히는 바람에 대체시험을 본 적도 있었고 시험보다는 리포트를 잘 썼다. 사지선다는 기출문제를 보고 공부를 해야만 했다.
어쨌든 지루하지 않게 시간은 흘렀고 드디어 대학원 입학. 막상 대학원에 가려니 생각했던 사립대학교는 학비가 비쌌다. 고심 끝에 두 군데 시험을 보고 다 됐으나 과기대로 갔다. 국립대였고 면접분위기도 더 좋았기 때문이다.
입학생은 석사 둘, 박사 한 명이었다. 학기 중에는 열심이었고 새 일이 잘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기존에 하던 모니터링과 가끔 들어오는 일 신경 써가며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다. 역시나 시간은 빨리 흘렀고 금세 기말과제. 소논문을 써야 하는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가슴이 옭죄 오는 걸 경험하면서 겨우겨우 마무리를 했다. 초고 올리고 발표 때 내 실력이 어느 정도 가늠이 되었기에 한계도 느꼈다. 종강 후 일주일 만에 성적이 나오고 나는 안심했다. 교수님들이 노력의 흔적을 보았는지 성적을 생각보다 잘 주셨다. 특히 A+ 주신 교수님은 아직 지도 교수님을 선정하지 않았는데 후보 중 한 분이었고, 나는 나의 경험을 살려 다큐멘터리로 논문을 쓰려고 하기에 교과목 전공 선택이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희곡이나 영상. 시나리오 중 정할 것이기에 전공에 가까운 과목(영상. 시나리오연구)이 A+가 나와 더 기분이 좋았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간다. 내가 대학원에 왜 왔지? 생각해 본다. 박사까지 생각하고 왔으나 벌써 휘청거린다. 생각보다 시간이 길어질 것 같으니 긴 시간 동안 뭐 먹고살아야 되나 싶다. 꾸준히 일도 들어왔으면 하지만 내 맘대로 안 되는 부분이 있고. 일주일간 생각을 많이 했다. 늘 하던 고민이지만 조금 더 구체적인 전략을 짜야한다. 여기서 포기하지 말자. 열심히 하라고 A+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다시 긍정적으로 내 인생을 설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