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꿈꾸는 리얼리스트 May 10. 2020
그가 20년 만에 돌아왔다. 서울이라는 이 거대한 도시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와는 33년 만의 재회다.
그와 나는 대학교 신입생 시절 같은 고향 출신의 동기이자, 이성친구이다.
나는 서울 근교에 사는 그가 20년 만에 발을 딛는다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의 야윈 뺨이 먼저 내 시선 속으로 들어왔다.
그는 심하게 야위었고, 나는 어색하게 쪘다.
“안녕? 오랜만이다.”
“아하, 그래. 반갑다.”
서로 얼굴은 웃고 있는데 웃음 뒤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한다.
스무 살 그때 그 봄처럼 우리는 같이 전철을 탔다.
내가 이끈 나의 단골 가게에서 저녁을 먹고, 그가 20년 만에 제일 가보고 싶다는 카페 ‘브람스’를 찾았다. 정확하게 전철 안국역 옆에 ‘브람스’는 있었고, 우리는 커피 한 잔을 나누며 추억을 곱씹었다.
나는 올해로 방송작가 30년, 그는 7년을 출판사에서 일하고, 자신의 출판사를 차린 뒤 3년 만에 폐업을 했다고 한다. 한 종교계 유명인사의 책을 냈다가 빛을 보지 못하고, 그때 그 종교계에 있었던 예상치 못했던 사건 때문에 친구의 출판사는 완전히 망했다고 했다. 그다음 이야기부터는 더 자세히 나누지 못했지만, 상심한 마음을 다 잡을 겸 친구는 그즈음 산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우리는 마치 어제 만났던 사람들처럼 30년간의 공백에도 아랑곳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애들은?”
“없는데? 결혼도 안 한 내가 아이는 무슨?”
“정말?”
“그럼 정말이지. 넌?”
“응, 사내놈 하난데 군대 갔다 왔다.”
“벌써?”
“그러게 말이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는 그가, 어떻게 산에 갈 결심을 했는지, 진짜 머리를 자르고 승려생활을 하다가 돌아왔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다만, 다시 가족과 합치면서 산을 떠나와 서울 근교의 한 작은 도시에 정착하며 살고 있다.
다른 친구에게 소식을 들은 나는 수소문해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왜, 이제 나타난 거야?”
무색한 질문인지 알면서도 반갑고 아쉬운 마음에 툭 뱉었다.
“지금이라도 나타났잖아?”
그렇다. 반항기 가득했던 젊디 젊었던 대학 신입생 문학청년이, 도를 닦는 수행자 같기도 하고, 속세를 떠났던 자연인 같은 모습으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이다.
“너는 그동안 뭐했는데?”
“나? 계속 프리랜서로 살다가 얼마 전 취직했어.”
“그래? 축하한다.”
축하받을 일인지 모르겠다. 사실이지, 작가 생활이 나쁘지는 않다. 다만, 프리랜서 생활이 하도 굴곡이 많으니 선택하게 된 첫 직장. 다행히 적성에 맞는 편이라 즐겁게 일하고 있지만, 계약직이고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시 프리랜서로 되돌아올 한시적 직장인이다. 그래도 요즘, 처음 해보는 나의 직장생활이 스스로도 대견하고, 새삼스럽게 즐겁다.
“나 셀러리맨이라고. 삼십 년 만에 셀러리맨으로 변신한 나, 좀 멋지지?”
나는 친구 앞에서 스무 살 여대생으로 돌아가 괜히 응석을 부려본다.
“그렇구나, 나는 산에서 20년 살다가 오니 어색한 거 투성인데, 너도 30년 프리랜서 청산하고 직장인이 되었다니 어쩌면 나보다 더 큰 변신 아니냐?”
“듣고 보니 그렇네.”
우리는 하하 웃는다.
차 한 잔 하면서 흘낏 쳐다본 그의 옆모습은 스무 살 그대로였다.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빛의 속도로 지나온 30년. 나도 변했을 거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펄떡펄떡 뛰어다니던 내가 눈에 잡힐 듯한데 지금 나이 먹어서 직장인으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이고, 작가로서도 아직 할 일이 많아 보여 나를 응원해주고 싶다고 했다.
다시, 친구를 배웅하러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숱하게 시외버스터미널을 통해 배웅하고, 마중하고, 혼자, 따로 또 같이 여행을 떠나기도 했지만, 30년 만에 친구를 만나고 헤어지는 길은 더없이 허전하면서도 잊을 수 없는 시간이 될 것만 같았다. 먼 길을 돌아온 만남, 하지만,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 우리의 얼굴은 서로 닮아 빛났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누님과 오라버니처럼 얼굴엔 주름이 패고, 한풀 꺾인 기상은 예전 같지 않지만, 마음은 스무 살 청춘 그대로, 서로의 눈빛에서 묘한 여유와 풍요가 느껴지기도 한다.
누가 출발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했던가? 젊은 날의 초상이, 빛바랜 추억이 되어가고 있지만, 너와 나의 시선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청춘이다. 시공간을 뛰어넘은 우정, 그리고 출발 앞에서 너는 나와 함께 웃는다. 나는 손을 흔들며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잘 돌아왔어, 친구! 다시 출발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