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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Aug 28. 2020

사랑으로부터의 회복

1.

    사랑이 한편으로는 다시는 경험 못 할 환희와 벅차오름을 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 맞먹는 수준의 비애와 가라앉음을 준다는 것은 명백하며, 또한 당연하다. 사랑이 치러야 할 깊디 깊은 비용이 없다면 억지로라도 사랑을 해서 나쁠 것이 전혀 없으며, 반목 없는 세계가 영원한 평화를 이룩하는 것도 꿈만 같은 일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러하지 아니한 우리의 세계는 사랑에 결코 지 않은 비용을 부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당연하다 하는 것은 슬픔이 있어야만 사랑이 의미있고, 그 역 역시 성립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오직 사랑으로 넘쳐난다면 사랑은 없는 것과 다름 없다. 과유불급은 비단 물질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2.

    사랑의 시작과 끝에 대한 이야기는 차고도 넘친다. 알랭 드 보통이 지적하였듯 우리는 사랑의 시작에 대해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너무 많이 알고 있다. 모든 연인이 공통적으로 받을 질문은 언제 만났어 어디서 만났어 어떻게 고백했어 따위의 온갖 하였어뿐이며, 지금은 어때 앞으로는 어떨 것 같아 따위의 해, 할이 들어가는 말들은 아니다. 이런 지적은 사랑의 끝에도 별 다름 없이 적용된다. 어떻게 헤어졌어와 같은 물음은 흔치 않으나 언제 헤어졌어 왜 헤어졌어 정도의 물음이 통용되고 있으며, 이 또한 하였어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결국 이야기로 전해지는 사랑은 시작과 끝뿐이다. 이야기의 중간이나 책을 덮은 이후의 이야기는 관심을 받기 어렵다.


3.

    끝난 이후에 대해서는 시간이 약이라는 정도의 처방이 성행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사람이 가지는 기억력의 한계를 되풀이하는 말에 불과하다 할 것이어서 처방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방기에 가깝다. 출혈이 언젠가는 멈출 것이니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마음이 만큼 강하지 못 하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갈라진 틈을 메우기 위한 마음을 갖추지 못 하면 마음은 쉽게 정렬되지 않는다. 마음만이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음은 굉장히 위험한 속성을 가진다. 파괴하자고 마음 먹으면 한없이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다.


4.

    결국, 적극 장(章)을 끝마치는 일이 필요하다. 마지막 문장까지 머금었다 한들 책장은 스스로 넘어가지 않는다. 시간에 맡기고자 함은 단지 그 문장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책의 부패를 기다리자는 것이다. 그러나 문장뿐만 아니라 온 책 함께 낡아가게 되어 나중에는 무엇을 새로이 적으려 하여도 책이 온전히 버티지 못 할 것이다. 어떤 즐거운 이야기 슬픈 이야기 낯부끄러운 이야기든 적을 공간이 넓게 남았음에도 백지로 남기는 것은 주인으로서 몹시 아쉬운 일이다. 그것이 설령 사랑 이야기가 아닐지라도 의미없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애당초, 사랑 자체가 흔한 일은 더더욱 니었던 것이다.


5.

    사랑이 쓰는 이야기는 유독 진한 펜으로 적히는 편이어서 자주는 잊고 싶지 않아 꾹꾹 눌러담기도 하였고 가끔은 잉크통을 엎어버리는 충동에 휩싸였던 적도 있었다. 그리하여 책 전부가 앞 이야기의 번짐을 담게 되는 상태가 되어버린 문제가 있다. 뒷 이야기를 적을라손 하여도 종전의 흔적이 때때로 발견된다면 적잖이 당황하고, 이야기를 멈추고 싶은 순간도 맞이할 것이다. (자주 그랬다.) 그러나 시간보다도 더욱 빠르게 잔흔을 지우는 것은 책장을 꾸준히 펄럭이는 것이고, 오랜 시간 뒤에 그때의 잉크 자국을 발견하였을 때, 곁의 누군가에게 이 자국은 내가 무려 이십 몇 살이었을 즈음에... 정도의 짧은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게 된다면, 이제는 그로부터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스스로를 토닥일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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