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나에게 관심 갖지 않은지 몇 년 되어간다. 처음에는 이름 붙이고, 어디든 데려가려 하고, 조금만 더러워져도 씻겨주려는 완벽한 주인이었다. 나는 그를 품으며 그가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그의 체취가 내 안에 남았을 때 나의 존재 의미가 뚜렷해졌다. 나는 온전히 그를 위한 것이라고, 그에게 바칠 여생이 온전히 행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나는 자연히 나이를 들었고 이전처럼 힘을 낼 수 없었다. 가끔은 진단을 받아야 할 정도로 이상이 생겼고 지출은 오로지 그의 몫이었다. 그는 나를 이름 아닌 대명사로 부르기 시작했다. 기대와 실망을 거듭하다 서로 귀하게 여기지 않는 평범한 결말이었다. 한편 그를 유혹하는 거물은 나날이 늘어갔다. 겉도 속도 나보다 뛰어난 것뿐이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젊음이 즐비하다는 것이다. 오랜 정이나 추억도 새로움 앞에서는 장사 없었다.
나는 슬픔인지 불안인지 모르는 부정적 감정을 이기지 못 하고 기행에 이르렀다. 마지막으로 그의 관심을 끌어보기 위해 다른 것인 양 연기하기로 했다. 나는 옆 자리와 번호판을 바꿔 달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번호가 꽤 비슷해서 멀리서 봐도 헷갈릴 법하다. 그러나 첫 번호판을 받고 감격에 겨워 입맞추던 그였다. 그에게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남아 있기를 바랐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나 달라진 거 없어?"였다.
그가 나타났다. 매일 같은 자리를 차지했기에 한 번 헤매지 않고 곧장 나를 찾았다. 능숙하게 삽입해 나를 열어젖히고 몸을 덥혔다. 나는 멍하니 움직였다. 그의 손놀림, 발놀림, 시선 하나 다른 것이 없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꿈같던 하루가 마무리되고 그는 집으로 돌아갔다. 진작 이름을 잃은 나는 이제 수많은 대명사 중 나를 구분할 최소한의 기준마저 잃어버렸다. 나에 대한 그의 관심은 그저 관성적이고 기능적인 것이었다. 나의 감정은 오로지 슬픔에 잠식되었다. 녹슨 배기구들은 나의 감정에 동화하듯 물방울을 떨궜다.
사랑도 수명도 이렇게 마무리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