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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Feb 25. 2023

졸업 후기

잠을 설쳤다. 지나가는 하루쯤으로 여기려 했건만 자리잡은 의식은 확고했다. 너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니다! 너는 이제 사회인이다! 애새끼짓 그만하고 어른답게 굴어라! 학생 신분을 조금이라도 더 유지하고 싶어 괜히 새벽까지 게임을 투닥거렸다. 할 것도 마땅히 없는데 퀘스트창을 만지작거리고, 이미 아는 장소건만 캐릭터를 데리고 또 모험하는 등... 그럼에도 어김없이 아침이 왔고, 학교에 가서, 졸업장을 받았다. 주마등은 딱히 없었다.


심신의 온 신경은, 나를 보호해줄 최소한의 보호막이 드디어 사라졌다는 사실에 집중되어 있다. 철들고 싶지 않다는 얄궂은 본능이 학생증을 방패 삼아 이리저리 폴짝거리곤 했는데, 이제는 민낱으로 세상에 내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크게 앞선다. 나의 나이브함을 곱게 봐줄 이 있을 것인가? 순수하고 엉뚱한 의지를 개성으로나마 수용해줄 것인가? 혹 아둔함이 통상적인 경계를 넘나들지는 않을 것인가? 세상과 본인을 향한 의혹은 끝이 없다.


그러나 일말의 안심되는 점은, 이 나이가 되도록 몽상의 즐거움에 아직도 기민해서, 자신만의 문법으로 세상을 재해석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 문법에는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들지 않는 것도 있어서, 받을 것은 받되 고치고 싶은 것은 적절히 투쟁해서 번안할 것이니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성하는 게 인생의 전부라 믿을 만하다. 무어가 됐든 재밌게 살려는 마인드가, 무슨 역병마냥 주변 사람들에게 퍼지고, 모든 어려움을 즐거움의 원석 삼아 연금할 용기 및 실력을 갖추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성인이 아니겠는가! 줄곧 나의 이상은 순수 따위를 향했다.


졸업장은 새로운 퀘스트에 불과하다. 이제 너의 무기를 감추지 말고 드러내라는, 그것으로 불합리에 맞서 싸우고 세로토닌을 널리 퍼뜨리라는 이번 삶의 의뢰다. 주저 끝에 나는 수락 버튼을 눌렀다. 대체 누구가, 당최 무엇이 앞으로의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조금 주인공처럼 이야기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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