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꼼한 잡담 2 |
어렸을 때는 해야 할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더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어느 정도의 선만 지키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지지하는 편이었다.
공부해야 하는 시간, 숙제를 해야 하는 시간을 빼고 나면
친구들과 해가 넘어가도록 골목길을 다니며 놀았다.
골목에 모인 우리들은 뭐가 그리 놀 거리가 많았는지.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담 넘어 아이들이 ‘00아 노올자~’ 부르면
나가 놀고 싶어서 어쩔 줄 몰랐다. 숙제는 듬성듬성 마치고. 가로등 밑에서 또 뭔가를 열심히 하면서 보냈다.
학년이 올라가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해야 하는 일을 마쳐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데, 해야 하는 일은 도대체 끝날 줄 모른다.
사회에 나와서는 해야 하는 일을 넘어서서 ‘더’ 해야 하는 일이 생겼고,
이제는 남이 얹어 준 일을 처리하느라 하루가 모자라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일을 잊어버린 듯하다.
누군가 ‘뭘 하고 싶으세요?’라고 물으면 대답이 선 듯 떠오르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인지, 해야 하는 것인지 뒤엉켜 버린 삶.
조금은 슬퍼졌다.
하고 싶은 이유가 해야 하는 이유로 바뀌지 않는 일상이 무기력해질 때 즈음.
‘여전히 버티고 있는 당신 덕분에 다행이라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들으니
위로가 된다.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을 포기했지만
타인으로부터 알게 되는 내 삶의 의미다.
아직 쓸모 있는 인생으로 여겨주는 당신 덕분에 내가 다시 용기가 난다.
해야 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은 아니지만,
해야 하는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님을.
평범하게 버티어 온 날들이 누군가에게는 의미였으며,
나 또한 누군가의 살아내는 일상에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해야 하는 일을 또 한다.
밀린 글을 쓰고, 밀린 사람을 만나고, 또 내일을 준비한다.
연휴의 시작이지만, 이 시간에 미리미리 해 두지 않으면 안 될 일을 처리한다.
이 또한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될 것임에
예전과 다른 책임을 느끼면서 말이다.
덧붙임,
요즘엔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낯선 문화와 음식, 그저 사진으로 만 보았던 곳으로의 여행, 그리고 광활한 대지를 달리는 운전.
낯섦이 무기력의 세포를 살아나게 하는 경험을 한다.
그래서 그런가.
날아가는 비행기만 봐도 설레고, 인천공항이라고 쓰인 표지판에도 마음이 설렌다.
해야 할 일들에 여유가 생기는 날,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