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숫자가 주는 희비(喜悲)

by 초봉

녀석은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우리부부에게 숫자로 많이 인지되었던 것 같다.

"임신 4주차세요"
"이제 크기가 2cm 정도 되네요"
"출산일은 아마 9월 19일 정도 되실 것 같네요"

정작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녀석의 사지가 멀쩡하고, 모든 감각이 제대로 작동하는 '정상'이라는 단어였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녀석의 잠자리 뒷척임과 짜증이 늘어 와이프는 녀석을 데리고 어린이 전문 한의원을 방문했다. 열이 많고 가슴에 화(?)가 조금 있어 제대로 못자는 것이니 시원하게 해주고, 죽력액이라는 목초액 비슷한 것을 처방해주셨다(쪼그만한 놈이 가슴에 무슨 화가 있는지...). 죽력액이나 목초액을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냄새가 아주 고약하다. 그리고 그것을 몇 번 먹으니 녀석도 냄새에 취한 것인지 정말 약효가 있는 것인지 많이 뒤척이지 않고 잠도 그런대로 잘잤다.

어린이 전문 한의원이다 보니 녀석의 키, 몸무게 정도를 측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애가 100명 중 11번째로 크네요. 몸무게는 100명 중 29번째로 많이 나가구요. 18살 때 예상키는 180.5cm네요"
라고,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양가 친척을 둘러봐도 180cm를 넘은 아이가 없었는데, 어쩌면 녀석은 그 기록을 깨줄지도 모른다. 그 사실에 우리부부는 잠시 즐거워 하기도 했다. 하지만 녀석은 이제 갓 5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비슷한 또래의 애들과 비교를 당한다는 생각이 들어 많이 씁쓸하기도 했다. 녀석의 크기가 어찌되었든, 몸무게가 얼마나 나가든 '건강하기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초심을 조금은 잃지 않았는가도 생각을 해본다.

나중에 녀석이 어딘가에서 시험을 보고 왔을 때,
"녀석아, 아빠는 점수는 궁금하지 않아. 단, 최선을 다한거 맞지?"
라고 물어보는 아빠가 되겠다고 또 한 번 다짐을 해본다.

※ 최근 머리가 많이 빠져 스트레스를 받는 아내는 화를 다스리는데 좋다는 녀석의 죽력액을 몇 방울 씩 먹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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