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할아버지들

by 초봉

나의 조부모님은 나에 대한 사랑이 극진하셨다. 큰집의 큰아들이 낳아 준 사내녀석이 귀엽지 않은 조부모가 어디 있으랴. 그 덕에 나는 조부모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부족함 없이 자랐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녀석도 큰집의 큰아들이 낳아 준 첫째로, 그것도 사내녀석이라 조부모 특히, 할아버지들의 사랑이 매우 극진하다.

할아버지들은 녀석을 매우 사랑하신다. 녀석이 태어난 날 300km가 넘는 거리를 한걸음에 달려오셨고, 지금은 그보다 더 먼 400km를 수시로 오가신다. 친할아버지는 녀석을 만나는 날에는 담배도 피지 않으시고, 기차로 버스로 5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를 군말없이 오신다. 그것도 주머니에 녀석의 용돈으로 줄 잔돈을 가득 채운채로. 또, 2G폰만 고집하시던 외할아버지는 녀석의 사진과 영상을 보기 위해 스마트폰을 꼭 끼고 다니시며, 녀석이 먹을 신선한 과일을 때때로 보내주시기도 한다.

하지만, 녀석에겐 이토록 좋은 할아버지들이 우리 부부의 육아에는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다.

먼저 400km도 마다않고 오가는 친할아버지부터 보겠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보내주는 영상이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으면 "왜 우리 손자 영상은 없냐", "너희는 대체 뭐하는거냐"라고 우리부부를 닥달하시고, 녀석이 우는 영상을 보내주면 "우리 손자 울리지마라" 등등 질책을 하신다. 또한, 수시로 영상통화를 해서 녀석이 자고 있으며, 소리를 계속 질러 녀석을 깨우고는 전화를 끊으신다. 이정도는 약과다.

내가 어릴적 무척 바쁘셨는지, 애기를 보는 것이 매우 서투시다. 그래서 애기를 잘다루는 외할아버지를 따라하다 애를 바닥에 내동댕이 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어느 날은 우리부부가 식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 애를 봐주신다기에 고맙다고 생각했는데, 거의 한시간 동안이나 조용한 것이었다. 그러고는 "오늘 녀석이랑 내가 뉴스를 봤어. 꼼짝도 안하고 잘보더라"며 녀석에게 또 다른 세상을 구경시켜 주시기도 했다.

녀석의 외할아버지는 애기를 참 잘안다. 와이프가 어렸을 적 했던 행동과 녀석을 비교하며 '다음에는 ㅇㅇ을 할 것이다'라고 예측을 하시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잘 안다는 함정에 빠져 한 번씩 하시는 행동이 우리부부의 가슴을 철렁철렁 내려앉게 만든다.

뒤집을 생각이 1도 없는 녀석을 '곧 뒤집을 것이다'라는 이유로 하루에 50번을 뒤집는가 하면, 영상에서 녀석이 과일젖꼭지에 넣어 과일을 먹는 것을 보시고는 뷔페에서 보이는 모든 과일을 녀석의 손에 쥐어주고 계셨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물도 안마시는 녀석에게 사이다를 맛보여줌으로써 녀석에게 '톡'쏘는 경험을 하게도 해주셨다.

'매일 영상만 보며 얼마나 손자가 그리우셨을까. 그렇게 실제로 보니 연예인을 보는 것만큼 반가와서 했던 행동이겠지.'라고 생각하며 이해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들은 할아버지가 떠난 후 우리 부부가 얼마나 힘들지는 잘 모르실 것이다. 그 또한 우리 부부가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침에 녀석을 보고 속으로 한마디 되뇌었다.
'내리 사랑이라고, 나도 나중에 너의 자식이 나오면 프로야구 중계 3시간 같이보며, 사이다 먹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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