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개발자의 퇴사 일기
2017년 10월, 방향 없는 열정만 가득했던 26살의 기계공학과 학생인 제가 메디블록에 인턴으로 입사했어요. 개발 인턴이 아닌, 그냥 엑셀을 다루고, 숫자를 세는 잡무가 제가 하는 일이었어요. 인턴 기간이 끝나고 대표님께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두 대표님이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흔쾌히 기회를 주셨어요. 그렇게 2018년, 개발 공부를 시작했고 3월 즈음 메디블록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개발에 전념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메디블록에 들어오기 이전에 개발자는 제 선택지에 없었어요.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코드와 씨름하는 제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았거든요. 그런 제가 개발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인턴 기간 느꼈던 두 가지 때문이었어요. 첫 번째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두 번째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개발이라는 산을 정복해 보자!' 였어요.
2018년 3월, 개발을 시작하며 두 가지 원칙을 세웠어요. '1년 동안 다른 선택지는 고민하지 말자', '후회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그리고 미칠 듯이 노력하자'.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저 자신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어요. 2019년 3월, 후회 없이 도전했지만, 아직 프로그래밍이 무엇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어요. 그렇게 스스로와 1년을 재계약했어요. 2020년 3월, 어느덧 한 사람 몫을 해내는 개발자가 되었습니다.
제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어요. 개발 리더가 되기 위해 프로그래밍에 매진하거나 회사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이었기에 제가 존경하는 리처드 브랜슨, 손정의 두 분에게 여쭤보았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 그분들의 대답은 명쾌했고 저는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어요.
사실 퇴사 이후에 무엇을 할지는 결정하지 못했어요. 그 때문에 부모님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이 퇴사를 만류했죠. 전례 없는 경제 위기 속에 아무런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눈앞에 불구덩이가 뻔히 보이는 데도 맨몸으로 달려드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에요. 저도 그 부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곧바로 퇴사 시점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퇴사 시기에 대한 장단점을 표로 정리해 보았어요.
결국 쌓기는 어렵고 잃기는 쉬운 '신뢰'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기로 했어요. 그렇게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와 인수인계를 마무리할 때 즈음으로 퇴사 시기를 선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