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18시간의 기차여행

열번째 날

by 꼼마

드디어 출발



대기실에서 밤을 지새웠다. 사실 의자에 누워서 자기는 했는데 불편해서 계속 잠이 깬다. 혹시나 해서 4시쯤 기차 시간을 확인해보니... 또 연착이다! 6시에 출발한다더니 10시 반에 출발이란다...

후... 인도... 무려 14시간 연착이라니!

어찌저찌 하다보니 일요일 저녁을 마지막으로 3일 동안 씻지를 않았다...(절대 내가 씻는 걸 싫어해서 그런 건 아님!)



플랫폼에서 탑승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또 연착됐다... 후.... 11시 45분 기차다 이제.

20시 35분 > 06시 > 10시 30분 > 11시 45분

총 15시간 10분 기차가 지연됐다...



기차역은 피난 가는 사람들이 가득이다. 큰 짐을 멘 사람들도 많고 별의별 보따리를 들쳐 멘 꼬마 아이들 까지.


기차가 들어오자마자 역은 금세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사람보다 더 크고 많은 짐들이 기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사람 앉을자리 빼고는 다 짐으로 가득 찬다. 우리가 탄 sleeper클래스 기차는 침대 기차 중 가장 저렴한 기차다. 총 6명이 한 구역에 배정되고 맨 윗 침대와 아래 침대는 항상 펴져있지만 중간 침대는 접혀있어서 자기 전에 펼쳐야 한다고 한다. 보통은 1층 침대에 다 내려와 앉아있다.


어느덧 짐은 객차를 가득 채운다. 그것도 모자라 화장실 앞에까지 짐은 찬다. 저 안엔 뭐가 들어있을까?


우리의 sleeper열차는 non AC로 더울 땐 선풍기로 열을 식히나 보다. 근데 진짜 심각하게 꺼멓다...




18시간의 기차 여행



11시 45분에 출발한다던 기차는 12시 35분이 되어서야 출발했다. 총 16시간 지연이 발생한 것! 이제야 드디어 인도를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겠다.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짜이, 음료수, 과자 등을 팔러 돌아다닌다. 역에 잠시 멈출 때엔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기차에 타고 한차례 호객행위를 하고 지나간다.


어제 저녁부터 제대로 먹지 못해 뭔가를 먹고 싶긴 하지만 먹었다간 온갖 질병에 걸릴 것 같아 꾹 참는다.


곽씨는 참 잘잔다. 짐을 맡겨뒀는데 내가 가방에서 과자를 꺼내가도 세상만사 모른 채 잠을 잔다. 어찌 보면 부럽기도...


기차엔 위대한 생존력의 친구, 우리들의 바퀴벌레 친구들이 후두두둑 돌아다닌다. 사실 별 감흥이 없다

'내 얼굴에만 안 올라오면 되는 거지 뭐...'

하... 근데 어느 순간 내 침낭 속에 들어와 있다... 후헿헿 침낭 속에 바퀴벌레가 돌아다니고 있다. 우헿헿.... 소름 끼쳤지만 뭐 어찌하리... 그냥 손으로 툭 쳐서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집에 가면 꼭 빨아야지 내 침낭... 그래도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침낭아...


3일을 세수도 안 하고 아무데서나 거지꼴로 지내다 보니 인도인이 되어가는 느낌! 손톱 아래엔 꼬질꼬질하게 때가 껴있고 수염은 제멋대로 자랐다. 머리는 기름으로 떡졌고 손등은 갈라졌다. 좀 더 노력하면 인도인 타이틀을 획득한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가 기차를 돌아다니면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쏟아진다. (착각 아님) 진짜 솔직히 부담스러운 시선... 무슨 감정이 담긴 시선인지 의아하다.



갑자기 여장을 한 남자가 기차에 들어온다. 여장을 진짜 못했다. 화장하고 여자 옷 입은 게 다다. 그리고는 당당하게 돈을 내놓으란다. 돈을 안 주면 그 남자 고추를 만지며 달라고 한다. 실제로 곽씨는 그 여장 남자에게 고추 만짐을 당했다!!!! 으아!!! 곽씨가 당했다!!!!


듣기로는 돈을 주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돈을 준다고 한다. (아래 좋은 참고 자료가 있다. http://m.kofice.or.kr/c30_correspondent/c30_correspondent_02_view.asp?seq=3828&page=3&search2=인도)



벌써 8시다. 델리에서 출발한 지 8시간째. 배가 고프다... 마침 저녁 도시락을 팔며 돌아다니는 아저씨에게 도시락을 하나 샀다. 100 루피면 꽤나 비싼 편이다. 배가 고파 그런지는 몰라도 정말 맛있다. 인도에서 먹어본 카레 중 가장 한국의 카레와 비슷한 맛이랄까? 근데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 카레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저 아저씨의 시꺼먼 손으로 만들어진 카레일까?'


해가 지자 급격히 어두워진다. 기차 속 사람들도 하나둘씩 잠을 잔다. 어떤 사람은 표를 끊지 않았는지 침대 아래 짐을 넣는 곳에 들어가 바퀴벌레가 많이 나올 것 같은데도 잠을 자고 있다.


인도는 뿌연 회색이랄까. 심라를 제외한 인도는 항상 뿌얳다. 안개인지 먼지인지는 모르지만 뿌옇다. 그리고 그 뿌연 회색 속에 흰색부터 검은색까지 명암이 져있다. 다채로운 색이 있기는 하지만 빛을 잃어 탁해진, 그런 다양함이다.


우리는 우리의 기준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보인 그대로를 받아들이기에 고장 난 카메라처럼 왜곡된 장면을 얻어간다.


찰리 채플린이 말한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오,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이 와 닿는다.


인도 여행의 중반부를 보내는 지금, 인도는 매력적이지만 슬픈 도시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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